73. 미디어 제국을 건설한 도쿠마 야스요시(德間康快)

작성자갑진|작성시간26.06.19|조회수10 목록 댓글 0

73. 미디어 제국을 건설한 도쿠마 야스요시(德間康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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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물에 대한 평가

 

도쿠마 야스요시(徳間康快)는 일본의 저명한 기업가이자 영화 제작인으로, 출판과 영상 콘텐츠 산업에서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다.

그는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에서 태어나 즈시 카이세이 중학교(逗子開成中学校)를 거쳐 와세다 대학 상학부를 졸업하였다. 젊은 시절에는 일본 공산당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나, 1943년 요미우리 신문사에 입사한 후 1946년 연합군 점령 당국의 공산당 숙청으로 인해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이후 마츠모토 시게하루(松本重治)의 민보(民報) 사회부 차장으로 근무했으나 1948년 연합군 당국의 공직 추방 및 신문사 폐간으로 직업을 잃는 시련을 겪었다. 1949년 출판사 진선미사(真善美社) 전무로 합류했으나 회사가 도산하였고 1950년 오가타 타케토라(緒方竹虎)의 소개로 신광인쇄(新光印刷)의 사장으로 취임하였다. 이 회사는 이후 일본사진 제판주식회사와 신광인쇄 공업주식회사를 거쳐 오늘날의 도쿠마 인무센터(徳間印務中心)로 발전하였다.

도쿠마 야스요시는 1954년 3월 동서예능출판사(東西芸能出版社)의 사장으로 취임하여 같은 해 4월 예능신문(芸能新聞)을 복간하였다. 1961년에는 종합 출판사인 도쿠마 서점(徳間書店)을 설립하였고 1967년에는 기존의 예능예능출판(芸能娯楽出版)을 도쿠마 서점에 합병시키며 기업의 규모를 키웠다. 1974년에는 파산 위기에 처했던 대영(大映) 영화사를 2억 엔에 인수하여 도쿠마 서점의 자회사인 대영 영화 주식회사(大映映画株式会社)로 개편하는 결단을 내렸다. 또한 애니메이션 산업의 선구자로서, 1985년 바람의 계곡의 나우시카 제작을 마친 미야자키 하야오, 다카하타 이사오 등과 함께 스튜디오 지브리를 설립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2000년 4월 1일에는 도쿄도 지사 이시하라 신타로의 초청을 받아 도쿄도 사진 미술관의 관장으로 취임하며 문화 사업에도 기여하였다.

교육 분야에서도 1984년 2월 자신의 모교인 즈시 카이세이 학원의 이사로 임명되어 활약하였다. 특히 1980년 발생한 교직원 등반 사고와 관련하여, 당시 학교 측이 교사의 개인 여행이라는 이유로 보상을 거부했던 상황에 개입하여 유족들과 원만한 화해를 이끌어 낸 일화는 유명하다. 도쿠마 야스요시는 이처럼 출판, 영화, 애니메이션, 교육 및 문화예술 전반에 걸쳐 폭넓은 활동을 이어오다 2000년 9월 20일 간 질환으로 향년 78세에 세상을 떠났다.

 

2 도쿠마 야스요시(徳間康快)의 명조 분석

 

도쿠마 야스요시(徳間康快)의 명식은 병화(丙火) 일간이 무술(戊戌)월에 태어난 식신격(食神格)이다. 그런데 년주의 신유(辛酉) 재성과 어우러져 식신생재(食神生財)의 전형적인 사업가 구조를 갖추고 있다. 재성이 식신에서 기인한 만큼 의식주나 서비스업종과 인연이 깊으며 무토(戊土) 식신이 갑목(甲木) 편인의 제복(制伏)을 받음으로써 교육, 방송, 미디어 계열의 확장성을 보여준다.

본래 식신생재가 강한 구조에서는 일간의 설기가 심하므로 신약해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이 명조에서 병오(丙午) 일주는 오오(午午) 형을 양인(羊刃)으로 하여 그 뿌리가 매우 견고하다. 여기에 갑목(甲木)의 생조까지 더해지니 일간은 건왕(健旺)하고 용신은 유력(有力)하다. 서자평(徐子平) 선생이 자평명리학(子平命理學)에서 귀격(貴格)을 판별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 강조했듯이 일주가 건왕하고 용신이 세력을 얻어 제 역할을 다하는 상태는 사주의 성패를 결정짓는 중대한 기운이다. 이 사주는 목화토금(木火土金)이 원만하게 상생하는 흐름을 보여 기신(忌神)은 적고 희신(喜神)이 많아 흉함보다 길함이 우세한 구조를 지닌다.

다만, 인생의 굴곡은 대운의 흐름 속에서 형충파해(刑沖破害)를 만날 때 드러난다. 특히 26세부터 시작된 을미(乙未) 대운은 술미형(戌未刑)으로 인해 목화(木火)의 입고(入庫)가 발생하며 일간이 갇히는 불미한 운세가 전개되었다. 구체적으로 28세 무자(戊子)년에는 자오충(子午沖)으로 양인충발(羊刃沖發)이 일어나 신문사 폐간이라는 직업적 시련을 겪었으며, 29세 기축(己丑)년에는 축술미(丑戌未) 삼형(三刑)이 완성됨으로써 출판사 진선미사(真善美社)의 도산이라는 어려운 시기를 맞이하였다. 이러한 사례는 일주가 아무리 건왕하더라도 대운에서 일간의 고지(庫地)를 자극하고 세운에서 형충이 가해질 때 현실적인 사업 환경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도쿠마 야스요시(徳間康快)가 64세 무렵 교육 및 문화 분야에 본격적으로 진출하여 활동한 것은 명식상 시주(時柱)에 자리한 갑목(甲木) 편인(偏印)의 작용력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일반적으로 사주에서 년주나 월주에 위치한 기운이 초년이나 중년의 사회적 환경을 주도한다면 시주(時柱)에 위치한 편인의 기운은 만년의 지향점이나 학문, 교육, 후학 양성 등 정신적이고 사회적인 기여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도쿠마 야스요시의 명식에서 갑목(甲木) 편인은 일간 병화(丙火)를 생조하여 지적 기운을 공급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 기운이 시주(時柱)라는 만년의 자리에 늦게 발현됨으로써 그가 인생 후반부에 교육 기관인 즈시 카이세이 학원(逗子開成學園)의 이사로 취임하여 활동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편인(偏印)은 전문적인 지식, 정신적인 가치, 그리고 비정통적이거나 남다른 교육 철학을 상징한다. 이는 갑목 편인의 기운이 현실적인 식신생재(食神生財)의 사업적 기틀 위에서 문화와 교육이라는 인문학적 가치로 승화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결국 64세라는 시점은 신묘(辛卯)대운 자체에서 시주의 갑목(甲木) 편인(偏印)이 더욱 유력하게 힘을 발휘하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이로 인해 출판과 영화라는 대중적인 콘텐츠 사업에서 축적한 역량을 교육과 문화예술 분야로 확장하며 그의 인생 후반기를 더욱 풍요롭고 의미 있게 마무리하는 동력이 되었다고 평가한다.

 

3 도쿠마 야스요시(徳間康快) 주요 연혁

 

1921년 (辛酉) 1세: 10월 25일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에서 출생한다.

1943년 (癸未) 23세: 요미우리 신문사(讀賣新聞社)에 입사한다.

1946년 (丙戌) 26세: 연합군 점령 당국의 공산당 숙청(레드 퍼지)으로 요미우리 신문에서 퇴사한다.

1949년 (己丑) 29세: 출판사 진선미사(真善美社) 전무로 취임한다.

1950년 (庚寅) 30세: 신광인쇄(新光印刷) 사장으로 취임한다.

1954년 (甲午) 34세: 주식회사 동서예능출판사 사장으로 취임한다.

1961년 (辛丑) 41세: 종합 출판사인 도쿠마 서점을 창립한다.

1974년 (甲寅) 54세: 파산 위기의 다이에이 영화사를 인수하여 자회사로 편입한다.

1984년 (甲子) 64세: 즈시 카이세이 학원 이사로 취임하여 과거 등반 사고 피해 유족과의 화해를 이끌어낸다.

1985년 (乙丑) 65세: 미야자키 하야오, 다카하타 이사오 등과 함께 길브리 스튜디오 설립을 지원한다.

1989년 (己巳) 69세: 제12회 일본 영화 아카데미상 특별상 기획상을 수상한다.

1998년 (戊寅) 78세: 제21회 일본 영화 아카데미상 회장 공로상을 수상한다.

2000년 (庚辰) 80세: 4월 1일, 도쿄도 사진 미술관 관장으로 취임한다.

2000년 (庚辰) 80세: 9월 20일, 간부전으로 사망한다.

2001년 (辛巳) 81세: 제24회 일본 영화 아카데미상 회장 공로상을 수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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