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일본 컴퓨터 산업의 전문 경영인 야마모토 타쿠마(山本卓眞)

작성자갑진|작성시간26.06.20|조회수27 목록 댓글 0

74. 일본 컴퓨터 산업의 전문 경영인 야마모토 타쿠마(山本卓眞)

상관일간정관정관
상관비견상관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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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물에 대한 평가

 

야마모토 타쿠마(山本卓眞)는 1925년 일본 구마모토현 구마모토시에서 육군 장교인 야마모토 요시로와 후지에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후쿠오카현 출신이었으며 부친은 농가 출신이고 모친은 사족(士族) 출신이었다. 어린 시절 두 살 무렵 심한 소화불량으로 인해 의사들마저 포기한 위급한 상황에 처했으나, 모친이 한약재인 겐노쇼코를 사용하여 기적적으로 회복한 일화가 있다.

학창 시절에는 도쿄 고등사범학교 부속 중학교에 입학했으나 이후 군인의 길을 걷기 위해 육군 유년학교에 편입하였다. 1943년 육군 항공사관학교(58기)에 입학한 그는 1945년 졸업과 동시에 소위로 임관하였다. 만주로 파견되어 소련군에 맞서는 와카누 특공대원으로 배치되었으나 종전을 맞이하였다. 당시 시마다 야스야 중령으로부터 죽지 말고 살아서 돌아가 조국 재건에 힘쓰라는 훈시를 받은 것은 그의 인생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종전 후 복원한 그는 도쿄대학교 제2공과대학 전기공학과에 진학하여 1949년 졸업하였고 곧바로 후지통신기제조(현 후지쯔)에 입사하였다. 그는 이케다 토시오와 함께 전자계산기 개발에 매진하여 1954년 일본 최초의 릴레이식 계산기 FACOM 100을 완성하는 등 컴퓨터 공학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이러한 기술적 기반을 바탕으로 1981년 후지쯔의 사장 겸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랐다. 경영자로서 재임하는 동안 미국 IBM과의 저작권 분쟁 및 반도체·슈퍼컴퓨터 관련 무역 마찰 속에서도 한 치의 물러섬 없는 태도를 견지하여 투쟁하는 경영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1990년에는 이사회 의장직을 맡았고 이후 명예회장 및 고문을 거치며 일본의 정보통신 산업 발전에 공헌하였다.

말년까지도 일본의 정보화 추진 및 산업 표준화에 기여하며 활동을 이어갔으며, 2012년 1월 17일 향년 88세로 세상을 떠났다. 사후 그의 공로를 인정받아 종삼위에 서임되었다. 아울러 실형인 타쿠미가 전쟁 중에 전사했던 아픔으로 인해 평생 특공대 전몰자 위령 평화기념협회 회장 및 일본회의 부회장 등 유족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2 야마모토 타쿠마(山本卓眞)의 명조 분석

 

이 명조는 무토(戊土) 일간이 유월(酉月)에 출생하여 유축(酉丑) 합을 이루고 있으므로 상관격(傷官格)에 해당한다. 그런데 년간과 월간에 을목(乙木) 정관이 거듭 투출하여 중관(重官)이 된 것은 불미스럽다고 본다. 그러나 중관이 되면 오히려 상관이 긴요해지는 법이다.

중관은 곧 중살(重殺)과 다름없기에 이를 상관견관(傷官見官)으로 보지 말고 상관제살(傷官制殺)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이 사주는 중관을 제복하는 상관을 갖춘 구조로서 상관용관(傷官用官)으로 해석한다. 상관격에서는 본래 정관을 쓰지 않으나, 금수상관격이 아니더라도 중관이 되어 양관이 다투게 되면 반드시 상관으로 제복하여 하나를 남겨야 한다. 이 사주에서는 시간(時干)의 신금(辛金)이 월간의 을목 정관을 을신충(乙辛冲)으로 제복하여 년간의 정관을 남긴 구조이다. 하지만 년간의 을목은 지지에 뿌리가 없어 무력할 수 있으므로, 수(水) 재성운을 만나 재생관(財生官)을 이루어 정관을 살려내는 것이 발복의 조건이 된다. 고로 이 사주는 목(木), 화(火), 수(水)가 희신(喜神)이 되고 금(金)은 기신(忌神)이 된다.

 

3 대운별 발복 시점(大運別 發福 時點)

 

(1) 남방 화운(南方火運): 20세부터 40세 사이는 화(火)와 토(土)의 기운이 강한 시기로 사주에서 인수운으로 일간의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한다. 30세에 일본 최초의 릴레이식 계산기 “FACOM 100”을 완성하였다. 37세에 트랜지스터식 대형 범용 전자계산기 “FACOM 222”를 개발하였다. 46세에 과학기술청장관상을 수상하였다.

 

(2) 동방 목운(東方木運): 이 시기는 50세~70세에 해당하는데 관성(官星)인 목(木)이 강해지는 운으로 사주 내의 약한 정관을 보강하는 역할을 한다. 관성이 살아나면서 조직 내에서의 지위가 확고해지고 사회적 명예가 극대화되는 시기이다. 57세에는 후지쯔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하였다.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에 걸쳐 사장(社長)과 회장(會長)직을 수행하며 기업의 정보 사업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던 시기와 일치한다.

 

4 야마모토 타쿠마(山本卓眞)의 연혁(沿革)

 

1925년 (乙丑) 1세: 구마모토현 구마모토시에서 육군 장교 야마모토 요시로와 후지에의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1927년 (丁卯) 3세: 2세 때 소화불량으로 위독했으나, 모친이 겐노쇼코를 사용하여 기적적으로 회복하였다.

1943년 (癸未) 19세: 육군항공사관학교(58기)에 입학하였다.

1945년 (乙酉) 21세: 육군항공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하였다. 만주에서 복무 중 종전을 맞이하였으며, 8월 16일 시마다 야스야 중령의 생환 및 조국 재건 훈시를 듣고 복원하였다.

1949년 (己丑) 25세: 도쿄대학교 제2공과대학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후지통신기제조(현 후지쯔)에 입사하였다.

1952년 (壬辰) 28세: 이케다 토시오와 함께 전자계산기 개발에 착수하였다.

1954년 (甲午) 30세: 일본 최초의 릴레이식 계산기 FACOM 100을 완성하였다.

1961년 (辛丑) 37세: 트랜지스터식 대형 범용 전자계산기 FACOM 222를 개발하였다.

1970년 (庚戌) 46세: 과학기술청장관상(과학기술공로자 표창)을 수상하였다.

1981년 (辛酉) 57세: 후지쯔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하였다.

1989년 (己巳) 65세: 정보화 추진 공로로 통상산업대신 표창을 받았다.

1990년 (庚午) 66세: 후지쯔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하였으며, 동대경제간담회 대표간사를 맡았다.

1993년 (癸酉) 69세: 정보통신 보급 발전 공로로 우정대신 표창을 받았으며, 정보처리 학회 공적상을 수상하였다.

1995년 (乙亥) 71세: 전자정보통신학회 공적상을 수상하였다.

1996년 (丙子) 72세: 전자정보통신학회 명예 회원이 되었다.

1997년 (丁丑) 73세: 후지쯔 명예회장이 되었다. 또한 명예 대영제국 훈장과 훈일등 서보장을 수훈하였다.

2000년 (庚辰) 76세: 일본공업표준조사회 회장에 취임하였다.

2006년 (丙戌) 82세: 후지쯔 고문이 되었다.

2012년 (壬辰) 88세: 폐렴으로 별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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