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의 대한 답변
[청년의 질문] : 나라에 내는 세금에도 감면이 있고 공제환불이 있는데 십일조에는 왜 없는 겁니까?
[목사님의 답변] : 헌금생활 중 가장 힘들고 부담스러운 것이 바로 십일조 헌금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수입 중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그것을 하나님의 창고에 들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바른 십일조를 하는 사람을 축복하신다고 말씀하시며 바른 십일조 생활을 하지 아니하는 사람을 저주하시겠다고 분명히 말씀하신다(말 3:8-12)
소득의 십분의 일을 뗀다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지금도 양복 한 벌을 새로 사려면 몇 번을 생각한다. 양복도 양복 나름이기는 하지만 나는 매달 양복 한 벌 값 정도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린다. 이제는 생활화되어 잘 의식을 못하지만 생각해 보면 만만한 액수가 아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보면 미쳤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그와 같은 일을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 하나님이 자신을 위하여 그와 같은 헌금을 하라고 하시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그와 같은 일을 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십일조 생활을 하는 것이 왜 우리에게 유익한 일이 되는 것일까?
성경은 모든 사망의 원인을 죄로 보고 있다. 그런데 성경은 그 모든 사망의 원인이 되는 죄의 원인을 욕심으로 보고 있다. “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그러므로 사망을 다스리려면 죄를 다스려야만 하고 죄를 다스리려면 욕심을 다스려야 한다. 욕심 중에슨 여러 가지 욕심이 있지만 가장 중심이 되는 욕심이 바로 물질에 대한 욕심이다. 물질에 대한 욕심을 다스릴 수 있다면 사람들은 그 밖의 욕심도 얼마든지 다스릴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물질에 대한 욕심을 다스리며 살라고 십일조의 법을 내신 것이다.
사람들은 물질을 축복이라고 생각하지만 물질은 축복이 아니라 은사이다. 예수님은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물질이 아무것도 아닌 것은 분명 아니지만 그것이 많고 넉넉하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은 분명 아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잘 믿는데도 가난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만일 물질이 축복이어서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면 예수 믿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가난한 채로 놔두실 리가 없다.
물질은 그러므로 축복이 아니라 은사이다. 은사란 특별한 사람에게 특별한 목적으로 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은사란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이며 하나님은 그 여러 가지 은사를 사람에 따라 달리 구별하여 주신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방언의 은사를 받으며 또 어떤 사람은 가르치는 은사를 받는다.
예수를 잘 믿는다고 해서 누구나 다 방언의 은사를 받는 것은 아니다. 다른 은사를 받았을 경우 그 은사를 못 받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물질도 그와 같은 것이다. 물질은 은사이기 때문에 믿는 사람이라고 누구나 다 받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은사는 누리라고 주시는 것이 아니라 쓰라고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물질을 바로 쓸 줄 아는 사람에게 물질의 은사를 주실 것은 분명한 이치이다. 십일조 생활을 한다고 다 물질의 은사를 받는 것은 아니나 십일조 생활을 바로 하지 않고서 물질의 은사를 받을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 물질에 대한 욕심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에게 물질의 은사를 주실 리는 없기 때문이다.
반듯한 신앙생활을 하기를 진심으로 원한다면 정직하고도 정확한 십일조 생활을 결단할 것을 권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나름대로의 십일조 원칙이 있다. 참고할 수 있기를 바란다.
첫째, 모든 돈은 십일조를 떼고 난 후에 쓴다.
모든 수입이 생길 때마다 제일 먼저 그것을 십일조를 계산하여 먼저 떼어 놓는 것이다. 즉 쓰고 남은 돈으로 십일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십일조를 떼고 남은 돈으로 생활을 한다. 십분의 일을 계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께 먼저 드린다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십일조 뿐만이 아니라 그 밖의 다른 헌금도 그 달 마지막 주일에 드리지 않고 매달 첫 주일에 드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둘째, 밥을 굶어도 십일조는 한다.
아직 밥을 굶으리 만큼 절박한 상황으로 몰려본 일이 없어서 정작 그와 같은 상황에 달하면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잘 모른다. 그러나 마음의 준비는 그렇게 하고 있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 평생 십일조를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셋째, 가능한 한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기 위하여 노력한다.
교인들이 사과 한 상자를 주어도 그것의 십분의 일을 드리려고 노력한다. 교인들이 명절에 구두표 한 장을 주어도 구두는 나중에 사신을 망정 그것의 십일조는 계산하여 반드시 그때그때 드린다. 통장에 이자가 붙으면 그 주일에 그것의 십일조도 드린다. 아버지가 물려주신 집이 하나 있는데 그것을 사고 팔 때마다 차익을 계산하여 십일조를 드린다.
이왕에 힘들게 드리는 십일조를 기왕이면 흠 없는 것으로 드리려고 나름대로 노력한다. 멀쩡한 과일이나 옷에 조금 흠이 있어서 제값을 못 받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그 만만치 않은 십일조를 드리면서 사탄에게 속아 흠이 있는 십일조가 된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온전한 십일조 생활을 권하고 싶다. 십일조는 구약의 법칙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온전한 십일조 생활을 하는 것이 옳다고 나는 확신한다. 십일조 생활을 통하여 모든 죄의 근원이 되는 욕심을 버리고 주를 섬기는 원칙을 연습할 수 있으며 물질의 은사를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철저하고도 온전한 십일조 훈련만큼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깊이 한 번 생각해보고 온전한 십일조 생활을 결단하기 바란다.
신앙기본으로 돌아가자
십일조는 기본적으로 가치의 상대화를 위한 훈련이기에 우리에게 유익하다. 돈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가치인데 우리는 그 돈을, 그 것도 수입의 10퍼센트를 십일조로 바침으로써 세상의 가치를 상대화한다. 우리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지만, 그것을 구체화하는 방편으로서 십일조를 바쳐 우리의 생명과 존재가 하나님께로 말미암음을 과시한다. 꽃 한송이 선물하기를 아까워하면서 “사랑합니다”를 되뇌는 남자의 프로포즈를 진심으로 받아들일 여자가 어디 있는가? 과연 재물이 있는 곳에 사랑이 있다.
....십일조 헌금에 대하여 한 가지 더 이야기할 것이 있다. 십일조 헌금은 자기가 등록하고 출석하는 교회에 내어 교회가 일하도록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사람들 중에는 십일조 헌금을 가지고 자신이 선교도하고 구제도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것을 잘못된 일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기는 하지만 구태여 구분을 하자면 소득의 십분의 일은 원칙적으로 하나님의 것이요 나머지 아홉만이 우리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일헌금이든 선교헌금이든 구제헌금이든 그것을 내가 하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돈으로 하지 않고 내가 쓸 수 있도록 허락받은 돈으로 하는 것이 옳다.
선교헌금이나 구제헌금도 출석하는 교회에 내서 교회를 통하여 선교와 구제를 하는 것이 좋지만 특별한 경우에는 자신의 생각과 판단에 따라 개인적으로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십일조만큼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하나님께 성별하여 드리는 것으로 끝이다. 그것을 이용해 다른 목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가끔 보면 자신의 십일조를 가난하고 어려운 교회에 보내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엄밀히 말하면 십일조가 아니라 선교헌금에 속한다. 가난하고 어려운 교회의 선교헌금을 자기 돈으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돈으로 한 셈이 된다.
‘일석이조’라는 말이 있다. 돌 하나로 새 두 마리를 잡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헌금은 일석이조의 정신으로 하면 안 된다. 십일조 헌금으로 십일조도 하고 선교도 하고 구제도 하는 식으로 헌금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십일조는 십일조로만 끝내는 것이 깨끗한 것이고 온전한 것이다.
교회생활과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참으로 여러 종류의 헌금을 하게 된다. 엄밀히 이야기하면 십일조는 헌금이 아니다. 그것은 내 것을 드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구별한 것뿐이기 때문이다. 십일조 외에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헌금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드림으로 하나님께 헌금을 다 드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은 생각이 아니다. 십일조만 드리고는 그것으로 주일헌금이나 선교헌금이나 구제헌금 등의 일을 다 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앞에서 십일조는 밥을 굶어도 하는 것이 옳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다른 헌금도 그런 정신으로 하면 좋지만 십일조 외에 다른 헌금은 형편에 따라 드릴 수 있다. 십일조 헌금은 액수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퍼센트로 드리는 헌금이다. 그러나 십일조 외의 헌금은 퍼센트가 정해져 있는 헌금이 아니다. 그것은 형편에 따라 1퍼센트가 될 수도 있고 90퍼센트가 될 수도 있다.
미국의 어떤 신앙 좋은 실업가가 하나님께 ‘십의 9조’를 드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소득의 90퍼센트를 하나님께 드리고 자기는 10퍼센트로 생활한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에도 그와 같이 생활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바란다. 그러나 정확히 이야기하면 ‘십의9조’를 드린다는 것은 틀린 말이다. 십일조를 드리면서 주일헌금이나 선교헌금, 그리고 구제헌금 등의 비율을 높이다 보니 소득의 90퍼센트를 하나님께 드리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바른 의미의 헌금생활은 십일조 외에 자기가 쓸 수 있도록 허락받은 십분의 9중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의 헌금생활을 잘 하는 분들이 되기를 바란다. 그 헌금 중에 주일헌금과 선교헌금, 그리고 구제헌금과 같은 것들이 있는데 앞에서 말씀드린바와 같이 형편에 따라 소득의 1퍼센트가 될 수도 있고 90퍼센트가 될 수도 있다. 여러분은 이와 같은 헌금생활을 열심히 잘 감당하여 소득의 90퍼센트 이상을 하나님을 위해 쓸 수 있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란다.
미국의 한 유명 대학의 유학생 감독관은 이런 말로 신입생들을 맞는다고 한다.
“유학생 여러분 돈이 말하는 겁니다. 여기선 돈이 중요합니다.”
그는 돈이면 다 된다는 천박한 물질숭배가 아니라 재정적인 성숙이 신용과 인격을 가늠하는 미국 사회의 분위기를 알려주는 말로 오리엔테이션을 마친다고 한다. 그렇다. 당신의 인격은 돈이 말한다. 당신이 하늘나라 은행에 입금한 돈이 말하는 것이다.
김동호 목사 <크리스천 스타트(규장)>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