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예절 - 예배와 집회의 구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좋은 관계를 오래 유지하려면 무엇보다 예절(매너)을 잘 지켜야 한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부부사이에도 예절을 강조했다. 가장 오래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가까울수록 예절을 잘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죽은 다음까지도 좋게 지켜야 하는데 예배에서 예절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예배라는 말 자체가 하나님께 최상의 예절을 갖추는 뜻이 아니겠는가?
예배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자신의 매너를 다해 인사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우리가 높으신 어른을 만나던가 하면 예절에 신경을 쓴다. 누군가를 만난다면 그 대상에 맞게 옷도 입고 대화할 내용에 대해서도 상대에 맞게 준비하며 특히 여성의 경우 화장을 하고 엑세서리를 갖추는 것도 중요한 매너에 속한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문화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하는 일은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거룩한 예절을 갖추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하겠다.
최상의 예절을 갖추어야 할 예배가 도리어 하나님께 무례하게 되고 마는 이유들 중 하나는 예배와 집회를 구별하지 않는 지적 게으름 혹은 무지함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예배를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절을 갖추는 의식이라고 한다면 집회는 사람들끼리 모여 하나님 이야기를 하는 형식이다. 오늘 많은 이들이 사람들끼리 모여 하나님의 이야기를 하거나 노래하며 흥겹게 지내는 것도 예배라고 생각하여 공식예배조차 하나님 앞이 아니라 사람들끼리 모여 좋은 시간을 갖는 것으로 전락하고 마는 경우가 생겨났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우리가 예절을 갖출 때 만남의 대상에 따라 매너가 달라지게 된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준비하는 내용이 다르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 서는 것과 사람들끼리 모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스승이나 부모님을 만나는 것과 형제들과 만나는 것에는 서로 다르지 않은가? 그런데 오늘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와 사람들끼리 모여 하나님 이야기를 하는 집회 사이에 차이를 찾아보기 힘들어지게 되었다. 특히 열린예배라는 이름으로 예배가 하나님 앞이 아니라 사람들 중심이 되고 만 현실은 나에게 예배의 타락으로 보여진다. 예배의 초점이 하나님을 향하지 않고 사람의 만족을 향한다면 과연 누가 예배하고 누가 예배를 받는다는 말인가?
예배의 매너는 중요하다.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는 거룩하신 분 앞에 우리가 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죄를 용서하시는 분이시고 사랑이시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혹은 무례하거나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그것을 편리적 자유주의라고 부른다. 자기에게 편한 대로 해석하여 멋대로 하는 것이다. 무례하기가 짝이 없다면 참으로 불쾌하다.
하나님을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분이라고 고백한다면 그 분에게 맞도록 우리가 예절을 지켜야 한다. 예배는 우리가 그 하나님 앞에 나아가 죄를 고백하고 신앙을 고백하며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찬양하는 것이기에 그에 걸맞는 매너가 필요하다. 예배하는가? 집회를 하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