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사람사는 이야기

공고생의 19살

작성자경아네|작성시간15.02.09|조회수12,495 목록 댓글 0

 

공고생의 19살

 

 

수능이란거 잘 모른다.

타지에서의 공장 야간 근무 후 잘 씻지도 못하고

아침에 가서 본 수능은

한 10분 풀고서는 푹 잠들었었다.

 

응원하는 풍경이며,

따라온 부모님의 모습이며,

반년은 교복을 못 봤으니 좀 낮설었다

 

도시락 싸와야하는건지도 모르고 왔다가 배고파서 개구멍으로 나와서는

밥먹고 들어갔는데 ; ;

나오면 안 되는거였다며 ??

 

펜도 오랜만에 잡아보는 거 같은데

재미있는 건 역대 수능 중에 우리 때가 제일 쉬웠다.

400점 만점에 298점

수능공부 하나도 안하고 나는 좀 했다.

 

13시간 근무는 기본이었던 공장생활.

그리 야간수당이며 잔업이 있어야

그때나 지금이나 맘에 와닫지 않는 4대 보험료는 나왔으니까........

 

필리핀 누나 방글라데시 형아들

베트남 누나들

말은 안통해도 우린 같은 일을 했다.

 

어느 날 회사는 돼지 한 마리를 잡았다

몇주년 기념. 뭐 그런거였던 같은데

방글라데시 형아들은 돼지고기를 못먹나보다

그래서 계란후라이 하나 해줄 수 없냐고 부탁을 드렸는데

귀찮아하시며 안해주시던 모습이 마음에 남았다

 

몇일 후

월급날이 왔는데

내 월급도 마찬가지만

베트남누나들 월급이 뭐가 잘 안맞았나보다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있지

프레스기계에 내 손가락이 눌렸는데

사회초년생이 뭘알겠는가

회사에서 다쳤다하면 안된다길래

병원에 그리 말했다.

그 작은 사고 하나가 회사에 미치는 영향을

그때는 몰랐다.

 

사회는 그랬다.

개인보다 회사가 먼저다.

나중에 이 일이 회사뿐만 아니라는게 아팠다

 

돈을 벌어야했다.

돈에 욕심은 없었다.

다만 지켜야할 게 있었다.

 

외국누나 형들도 나도 그때는 그게 다인 줄 알았다

짤릴까봐 누구하나 숨죽여 살았다

특히 베트남 누나들은 따지려해도

한국말을 잘 모르셨다

 

근데 그날. 그날은 달랐다.

과장의 옷깃을 붙잡고 고국어로 그렇게 서글피우셨을까.

옆에서 듣는데

뭔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근데 마음이 들리는건 말이 아닌가보다

 

"고향에 가족들이 기다리고있어요

적게나왔어요 제발 도와주세요

가족 보고싶어요"

 

14년.

다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다.

 

귤에 얼굴을 그리다보면

그 사람 얼굴을 하루종일 가장 오래보는 사람일 수 있다

그래서 아는 건 귤에 얼굴을 그렸더니

흑인도 백인도 황인도 얼굴색이 다 노랗터라

사람의 몸속에는 다 같은 '빨간피가 흐르더라

 

- 페이스북 김건희 글에서 -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