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사람사는 이야기

존스 홉킨스 이야기

작성자경아네|작성시간15.09.30|조회수1,920 목록 댓글 0

 

존스 홉킨스 이야기


 

 

‘존스 홉킨스’하면 대부분 볼티모어에 있는 의과 대학 병원을 떠올린다.

존스 홉킨스 병원은 19년 동안 미국 최고의 병원 자리를 지킨 데다,

수술 시 장갑 착용,

백혈병 환자 골수 이식,

인턴 및 레지던트 제도 등을 최초로 시행,

의학과 전문의 양성 교육의 선구자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병원의 역사가

미국인 사업가 존스 홉킨스(1795~1873)의 기부에서 시작된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존스 홉킨스는 노예 500명을 거느리고

대규모 담배 농장을 하던 부잣집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부모님이 노예에게 자유를 주면서

홉킨스는 열두 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밤낮으로 농장 일을 거들어야 했다.

 

그러다 열일곱살 때부터

7년 동안 삼촌의 식료품 가게에서 일하며

경영의 노하우를 익힌 그는 형제들과 사업에 뛰어들었다.

 

버지니아, 오하이오 주까지

마차로 물품을 수송한 대가로 받은 위스키를 팔아 큰돈을 벌었다.

이후 철도 회사, 증기선 회사, 도매상점 등에

막대한 돈을 투자해 볼티모어의 상업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값비싼 물건을 사거나,

세계 명소를 여행하는 등,

자신을 위해서는 돈을 쓰지 않았다.

종교의 영향으로 검약한 생활이 몸에 뱄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는 아낌없이 베풀고 도왔다.

생전에 링컨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며 노예 해방을 외치고,

1873년에는 700만 달러를 기부하며

대학과 병원을 세워 달라고 유언을 남긴 것.

 

그는 천대받던 흑인을 위한 보육 시설 마련은 물론,

인종과 성별에 차별 없는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희귀 병으로 고통 받는 환자를 위한 치료법을

연구해 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 유언에는

어릴 적 못 배운 한과 더불어,

1832년 볼티모어에 황열병과 콜레라가 유행하면서

800여 명이 죽어 가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겼다.

 

부자들이 재산을 과시하기 바쁘던 시절에

“나는 부를 일구는 재능을 잠시 위탁받았을 뿐이다.

이런 재능 덕분에 쌓은 재산은 다음 세대를 위해 쓰여야 한다.”라며

전 재산을 기부한 홉킨스.

 

그가 떠난 지 백여 년이 되었지만

남을 이롭게 하려는 그의 뜻은 지금도 이어진다.

그의 이름을 딴 대학과 병원이,

오늘날 수많은 인재를 양성하고

사람을 구하고 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