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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 이야기

"아무도 오지 않은 생일파티"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6.06.20|조회수36 목록 댓글 0

"아무도 오지 않은 생일파티"

그는 80살 생일을 맞아 작은 파티를 열었다.
초를 켜고, 케이크를 준비하고, 의자를 20개나 놓았다.

그런데 아무도 오지 않았다.

아내는 10년 전에 세상을 떠났고, 자식들은 외국에 있었다.
친구들은 대부분 세상을 떠났다.
그는 혼자서 케이크를 바라보며 눈물을 닦았다.

"혼자네... 역시 나는 혼자야..."

그는 초를 불고, 케이크를 한 입 먹었다.
너무 달아서 더 슬펐다.

그런데 밤 10시가 되자,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었더니, 30대, 40대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선생님, 생일 축하합니다!"

그의 제자들이었다.
30년 전, 그가 가르쳤던 학생들.
그들은 케이크와 꽃, 그리고 두꺼운 편지 뭉치를 들고 있었다.

"선생님, 저희가 준비했어요.
한 달 동안, 선생님께 감사하는 편지를 썼어요.
선생님 덕분에, 저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그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었다. 이번에는 기쁨의 눈물이었다.

아무도 오지 않은 생일파티
내가 가장 외로웠던 그 순간이,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서울의 한 작은 빌라. 3층.
80살, 박 선생님.
그는 평생 학교 선생님으로 일했다.
40년 동안 수천 명의 제자를 가르쳤다.

그런데 지금은 혼자다.
아내는 10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아들은 미국에, 딸은 캐나다에 살고 있다.
연락은 가끔. 생일에도 전화는 없다.

박 선생님은 올해 80살이다.
그래서 작은 파티를 열기로 했다.
혼자지만, 그래도 의미를 두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케이크, 초 80개, 의자는... 20개면 되겠지.
아무도 안 오겠지만, 그래도 준비는 해야지."

그는 혼자서 케이크를 사고, 초를 꽂고, 의자를 늘어놓았다.
그리고 기다렸다.
오후 2시. 아무도 안 왔다.
오후 4시. 아무도 안 왔다.
오후 6시. 아무도 안 왔다.

그는 케이크를 바라보며 눈물을 닦았다.
"혼자네... 역시 나는 혼자야..."

그는 초에 불을 켰다.
그리고 혼자 생일 노래를 불렀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나~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가 끝났다.
그는 초를 불었다. 혼자.
케이크를 한 입 먹었다.
너무 달아서 더 슬펐다.
"이제 자야지... 내일도 일해야 하니까."

그런데 밤 10시.
초인종이 울렸다.
딩동.

박 선생님은 깜짝 놀랐다.
이 시간에 누가?
문을 열었다.

그런데 문 밖에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30대, 40대. 어떤 사람은 아이를 데리고, 어떤 사람은 꽃을 들고.

"선생님, 생일 축하합니다!"

박 선생님은 그 얼굴들을 기억했다.
30년 전, 40년 전, 자신이 가르쳤던 제자들이었다.

"어... 어... 너희들... 어떻게..."

첫 번째 제자가 말했다.
"선생님, 저는 김영수예요.
30년 전에 선생님한테 영어를 배웠어요.
선생님 덕분에 대학교 갔고, 지금은 회사 다녀요."

두 번째 제자가 말했다.
"저는 이지은이에요.
선생님이 제게 '넌 할 수 있어'라고 말해 주셨어요.
그 말 덕분에 포기하지 않았어요.
지금은 의사예요."

세 번째 제자가 말했다.
"저는 박철수예요.
선생님이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제게 과자를 주셨어요.
그때 너무 고팠는데, 선생님이 없었으면 못 버텼을 거예요."

제자들이 하나씩 나서서 인사했다.
박 선생님은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너희들... 어떻게 내 생일을 알았니?"

제자들이 웃었다.
"선생님, 저희가 페이스북에서 봤어요.
선생님이 '이번 생일에 아무도 없을 것 같다'고 쓰셨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모였어요.
한 달 전부터 준비했어요."

박 선생님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고맙다... 정말 고맙다... 나는...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제자들이 선생님을 일으켜 세웠다.
"선생님, 이제 파티 시작해요!
저희가 케이크도 새로 샀어요.
그리고 이것도 있어요."

제자들이 두꺼운 편지 뭉치를 내밀었다.
"선생님, 저희가 한 달 동안 쓴 편지예요.
각자 선생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적었어요.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했어요."

박 선생님은 편지 뭉치를 받았다.
손이 떨렸다.

그날 밤, 파티는 늦게까지 이어졌다.
제자들이 하나씩 추억을 이야기했다.

"선생님, 저 기억나요?
제가 시험에 떨어져서 울었을 때, 선생님이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야' 하셨어요.
그 말 덕분에 저는 다시 일어났어요."

"선생님, 저는 선생님이 매일 아침 일찍 나와서 교실 청소하는 모습을 잊을 수 없어요.
선생님은 말씀하셨어요.
'남을 먼저 배려하는 사람이 돼라.'
저는 그 말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선생님, 저는 선생님이 체육대회 때 저희 팀을 응원하던 모습이 가장 기억나요.
선생님은 '이기든 지든, 최선을 다하는 게 진짜 승리야' 하셨어요."

박 선생님은 모든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말했다.
"나는... 그냥 내가 할 일을 했을 뿐인데... 너희들이 이렇게 기억해 주다니..."

제자들이 말했다.
"선생님, 작은 것도 큰 감동이 될 수 있어요.
선생님은 우리에게 그걸 가르쳐 주셨어요."

파티가 끝나고, 제자들이 하나씩 돌아갔다.
박 선생님은 문 앞에 서서 그들을 배웅했다.
"조심히 가라. 또 오너라."

모두 돌아간 후, 박 선생님은 편지들을 읽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모두 감동적이었다.

그중에 한 편지가 특히 마음에 들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을 아버지처럼 생각했어요.
저는 아버지가 없어서, 선생님이 제게 아버지였어요.
선생님, 건강하세요.
저는 항상 선생님 편이에요."

박 선생님은 그 편지를 가슴에 품고 잤다.

그 후로, 박 선생님의 생일은 특별한 날이 되었다.
제자들이 매년 찾아왔다.
어떤 해는 10명, 어떤 해는 50명.
그들은 케이크를 들고, 꽃을 들고,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

박 선생님은 90살까지 사셨다.
마지막 생일에는 100명이 넘는 제자들이 찾아왔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제자들은 장례식장에 모여서 말했다.
"선생님은 우리의 스승이셨고, 아버지셨고, 친구셨다.
우리는 선생님을 영원히 기억하겠다."

가장 큰 스승은, 가르침으로만 기억되는 사람이 아니다.
마음으로 기억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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