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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인물들

절망의 밤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멜 트라터(Mel Trotter)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01.25|조회수39 목록 댓글 0

절망의 밤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멜 트라터(Mel Trotter)

'강용원 교수의 글모음'에서 공유


멜 트라터(Mel Trotter: 1870-1940)는 오렌지빌(Orangeville, Illinois)에서 술집을 경영하던 집의 아들로 태어났다. 멜은 아버지가 너무 취해서 잔을 잡을 수 없을 때 아버지로부터 바텐딩을 배웠다. 젊은 멜은 이발을 배우기 위해서 집을 떠났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는 이발업에서 성공하여 그의 수입을 도박과 술에 사용하고 말았다.

큰 도시의 유혹을 피하기 위해서 멜은 1890년에 아이오와로 이주하였고 결혼해도 될 만큼 금주에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알코올 중독자와 결혼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여러 차례 바르게 살겠다고 약속했고 한번은 11개월간 술을 마시지 않기도 했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들의 출생도 술 마시는 일을 멈추게 하지 못했다. 10일간의 폭음 후에 집에 돌아와 보니 두 살 난 아들의 죽음 앞에서 아내가 울고 있었다.

아들의 장례를 치르고 그는 술집으로 향했다. 그는 실패로부터 알코올로부터 그리고 중독을 이겨낼 수 없다는 확실성으로부터 도망하기 위해서 시카고행 기차에 올랐다. 이제 그의 삶은 끝났다는 것을 알고 아무도 모르게 그의 삶을 끝내기로 하였다.

1897년 1월 19일 밤, 모자도 없고 외투도 입지 않은 멜은 마지막 술을 마시고 자살하기 위해서 구두를 팔았다. 그는 신발도 없이 미시간 호수를 찾으러 눈보라 속을 터덜터덜 걸었다. 미시간 호수에서 그는 그의 모든 슬픔을 영원히 빠뜨리기 위해 자살하려고 하였다. 알코올은 그를 추위에 근근이 견디게 하였다. 그는 어두워진 반 뷰렌 거리(Van Buren Street)를 지나다가 발을 헛디뎠다. 유일하게 불이 켜진 빌딩의 문으로 한 젊은이가 나와서 그를 일으켜 세우고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트라터는 따라 들어갔으나 거의 감각이 없어서 ‘태평양 정원 선교회’(Pacific Garden Mission)라는 표지판을 읽지 못하였다.

그 젊은이는 트라터를 ‘거리의 사람’들로 가득 찬 따뜻한 방에 앉게 했다. 선교회의 관리자인 해리 먼로(Harry Monroe)는 저녁 메시지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트라터를 보자 그의 이야기를 중지했다.

먼로는 큰 소리로 기도해야한다는 중압감을 느꼈다. “하나님 이 불쌍한 사람을 구해주소서.” 먼로는 그 자신이 그리스도를 만나기 이전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사실 그는 위조지폐를 만들던 사람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나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분은 오늘 밤에 당신을 구원하시기를 원합니다. 손을 올리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의 마음속에 그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십시오.”

트라터는 겨우 말을 알아듣고 그의 손을 올렸다. 그 안에 무엇인가가 일어나고 있었고 단순한 믿음으로 그분의 초청을 받아들였다. 그 순간 알콜중독의 사슬과 절망은 사라졌다.

트라터는 이후 43년을 과거의 자신과도 같은 거리에서 만나는 절망하고 잃어버린 남녀를 섬기는 일에 바쳤다. 그의 메시지는 단순하였다.

“하나님은 깊은 절망과 실패 가운데서도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그의 사랑은 가장 파괴된 삶이라도 바꿀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1905년에 안수를 받았고 40년 동안 그랜드 레피즈의 ‘구조 선교회’(rescue mission in Grand Rapids, Michigan)의 관리자로 사역하였다. 그의 선교회의 동역자들은 미국 전역에서 68개의 선교회를 설립하였으며 트라터는 국제적인 전도자가 되었다. 1935년에 그는 밥 존스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시카고에서의 절망과 어두운 밤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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