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신앙의 인물들

양육 전문가와 그의 아들, 제임스 도브슨과 라이언 도브슨(James Dobson & Ryan Dobson)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11.14|조회수32 목록 댓글 0

양육 전문가와 그의 아들, 제임스 도브슨과 라이언 도브슨(James Dobson & Ryan Dobson)

'강용원 교수의 글모음'에서 공유

제임스 도브슨(James Dobson: 1936-)은 루이지애나 슈리브포트(Shreveport)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종교는 그의 삶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는 ‘말을 배우기도 전에 기도를 배웠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나사렛 교회가 그렇듯이 춤과 영화 관람은 금지되었다.

그는 포인트 로마 나사렛 대학(Point Loma Nazarene University)을 졸업하였으며 남캘리포니아 대학(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심리학 박사를 받았다. 그 당시의 대부분의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은 심리학을 좋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심리학자이며 저술가이며 라디오 방송자였다. 1977년 도브슨 박사는 유명한 ‘포커스 언 더 패밀리’(Focus On the Family: FOTF)를 시작하고 미국과 여러 나라의 부모들에게 어떻게 자녀들을 양육하고 지혜롭게 사랑할 수 있는 지에 대해 실제적인 조언을 제공하였다.

이런 이유로 도브슨 자신은 자기의 자녀양육에 어려운 일이나 힘든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도브슨은 그의 아들 라이언이 보여주는 삶을 통해서 그가 얼마나 자신의 말과 행동을 일치하도록 노력하는 사람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딸 다나(Danae)가 태어난 후 의사들은 도브슨과 그의 아내에게 아기를 더 가질 수 없다고 알려주었다. 하지만 더 많은 자녀를 원했던 도브슨 부부는 라이언(Ryan)을 자신의 첫 번째 책 『양육의 용기』(Dare to Discipline, 1970)가 출간되던 날에 입양하였다.

라이언이 충동적인 행동을 보이고 주의력이 매우 약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라이언은 아침에 잠에서 깨면 너무나도 배가 고픈 듯이 음식을 먹어치우곤 하였다. 도브슨은 라이언에게 문제가 있음을 알았지만 그 당시에 구할 수 있는 것은 진정제 정도였다. 당시 의사들이 생각한 것처럼 라이언의 행동은 청소년기에 접어들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도브슨은 아들의 넘치는 힘을 운동을 통해 분출하도록 노력하였다. 라이언은 학업성적도 그다지 좋지 않았고 대학교에 가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도브슨 박사는 아들이 일리노이주 올리브나사렛대학교에 진학하도록 설득하였다. 그는 아들이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라이언의 가장 친한 친구도 그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재정지원도 서슴지 않았다.

대도시에서 자란 라이언은 시골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고 대학생활에도 잘 적응하지 못했다. 도브슨은 학교를 그만두게 한 뒤에 콜로라도로 데리고 갔다. 아버지는 한 달 임대료와 함께 아파트를 구해 주고 아들에게 자립하라고 말했다. 서서히 용기를 얻은 라이언은 한번 더 대학에서 공부할 기회를 달라고 하였다. 라이언은 로스앤젤레스 근교에 있는 바이올라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라이언은 이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임을 알고 있었다.

라이언은 처음에 적응이 잘 되지 않아 절망하기 시작했고 상담을 요청하였다. 라이언을 상담했던 심리학자들은 라이언에게 수학과 언어에 장애가 있으나 천재에 가까운 지능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에게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가 있음을 말해 주었다. 드디어 라이언은 자신의 문제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 라이언은 심리적 압박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약을 복용하자 성적도 올라가고 1995년에는 대학을 졸업하게 되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어려운 시기에 부모님이 나를 얼마나 많이 이해해 주셨는지 모른다. 나의 학교 성적이 좋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내 성적과 관계없이 나를 사랑하셨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 라이언은 사회에 첫발을 내 디뎠다. 그가 대중 앞에서 연설을 잘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 외에 라이언은 어느 한 직장에도 오래 다니지 못하였다. 아버지는 2002년 아들에게 ‘가족을 위한 자전거 전국일주’라는 ‘포커스 언 더 패밀리’ 사역을 도와달라고 하였다. 이것은 라이언에게 의미 있는 일이었으며 아버지의 사역을 새로운 시각에서 보는 계기가 되었다. 라이언은 부모의 사랑과 지원 속에서 회복되었으며 작가와 연설가로서 성공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부모는 아들에게 기독교사역을 암시하거나 강요하지는 않았다. 다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소명을 잘 감당하라고 권면하였다.

라이언에게는 대중연설의 기회가 많아졌다. 2003년 그는 탬파(Tampa)의 위기임신센터(Crisis Pregnancy Center)에서 연설을 하게 되었는데, 연설에 앞서 그는 사람들이 자신이 아버지만큼이나 연설을 잘하기를 기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와의 연륜에서 큰 차이가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지난 3년 전과 비교하면 이미 자기가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하는 사람이 되었음을 발견하였다. 2003년 말 라이언 도브슨은 기독청년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강연자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라이언은 2003년에 자신이 쓴 책 『관용적이지 말라: 왜냐하면 어떤 것들은 매우 어리석기 때문이다』(Be Intolerant: Because Some Things Are Just Stupid)를 아버지께 헌정하였다. 어떤 이들은 아버지를 시야가 좁은 사람이나 성경만 아는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그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처럼 자신이 가진 모든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옳은 일을 실행하기를 원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나는 누가 뭐라고 하든지 간에 매일같이 옳은 것을 실천하는 아버지의 모습 속에서 관용적이지 않은 것을 본다. 아버지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라도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하신다. 사람들은 아버지를 핍박하고 방송에서 제외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그리스도를 위해 일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맡겨진 일을 묵묵히 하신다. 아버지는 쉬운 길을 택할 수도 있었다. 아버지가 도박 및 음란물 위원이었을 때, 우리 가족은 마피아로부터 살해 위험을 받기도 했다. ‘정말, 이젠 못하겠네’라고 아버지는 말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셨다.”

라이언은 저술과 메시지를 통해서 청소년 문화에 중요한 영향을 주고 있다. 장애를 지닌 아들을 양육하면서 경험하는 불확실성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도브슨 박사는 활력 넘치는 사역을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들에게 굳건한 기초를 제공해 주었다. 지혜롭고 성경적인 양육을 통해 도브슨 박사는 자신의 아들을 어둡고 불확실한 청소년에서 밝고 확신에 찬 청년으로 이끌 수 있었다. 이 아들은 아버지와는 또 다른 접근으로 청소년 사역을 잘 감당하고 있다.

도브슨 박사는 미국의 공적 생활에서 보수적인 사회적 입장을 대변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대변인 중 한 명이다. 그는 목사 안수를 받은 적은 없지만 뉴욕 타임즈는 그를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 지도자’라고 불렀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