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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글판 2022년 겨울편 <어울린다>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12.31|조회수134 목록 댓글 0

광화문글판 2022년 겨울편

<어울린다>

 

진은영, 어울린다

 

너에게는 내가 잘 어울린다.

우리는 손을 잡고 어둠을 헤엄치고

빛 속을 걷는다

어울린다 / 진은영

 

너에게는 피에 젖은 오후가 어울린다

죽은 나무 트럼펫이

바람에 황금빛 소음을 불어댄다

 

너에게는 이런 희망이 어울린다

식초에 담가둔 흰 달걀들처럼 부서지는 희망이

 

너에게는 2월이 잘 어울린다

하루나 이틀쯤 모자라는 슬픔이

 

너에게는 토요일이 잘 어울린다

부서진 벤치에 앉아 누군가 내내 기다리던

 

너에게는 촛불 앞에서 흔들리는 흰 얼굴이 어울린다

어둠과 빛을 아는 인어의 얼굴이

 

나는 조용한 개들과 잠든 깃털,

새벽의 술집에서 잃어버린 시구를 찾고 있다 너에게 어울리는

 

너에게는 내가 잘 어울린다

우리는 손을 잡고 어둠을 헤엄치고 빛 속을 걷는다

 

네 손에는 끈적거리는 달콤한 망고들

네 영혼에는 망각을 자르는 가위들 솟아나는 저녁이 잘 어울린다

 

너에게는 어린 시절의 비밀이

너에게는 빈 새장이 어울린다

피에 젖은 오후의 하늘로 날아오르는 새들이

 

- 진은영 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문학과지성사, 2022

 

○ 광화문글판이 2022년 겨울편으로 진은영 시인의 시 ‘어울린다’로 새롭게 단장했다.

광화문글판 겨울편을 장식한 글귀는 “너에게는 내가 잘 어울린다. / 우리는 손을 잡고 어둠을 헤엄치고 / 빛속을 걷는다”이다.

 

○ 진은영 시인은 2000년 문학과사회로 등단했다.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우리는 매일매일' 등을 썼다. 현대문학상, 천상병 시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받았고 올해 백석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 겨울편 문안은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 위기를 함께 극복해 나가자는 희망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손을 내미는 작은 행동이 상대를 위로하고 든든하게 만들어주는 언어임을 되새기게 한다.

 

○ 겨울편 디자인도눈 내리는 겨울,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다정하게 내린 눈을 뭉치는 모습을 통해 함께 어울리고 같은 생각을 하는 '우리'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 교보생명 관계자는 "우리라는 단어를 통해 공감과 연대가 지닌 힘을 전달하고자 했다"며 "자신과 주변에 관심을 갖고 서로 응원하며 희망찬 새해를 맞이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 진은영 시인의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는 올해 24회 백석문학상을 수상한 시집이다. 출간 3주 만에 1만부가 팔리고 시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시집 1부는 사랑의 전문가, 2부는 한 아이에게, 3부는 사실이라는 목차로 되어있다. 1부에서는 사랑에 대해 썼지만 그 이후로는 세월호 참사와 유족들에 대한 슬픔을 다룬 시가 다수 수록 되어있다.

 

○ <어울린다>는 결핍으로 가득찬 과거와 불안한 현실 속에서 손을 잡고 어둠을 헤엄치고 빛 속을 걷는 희앙의 메시지를 전해 주는 시이다.

피해 젖은 오후, 부서지는 희망, 모자라는 슬픔, 부서진 벤치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는 토요일처럼 슬픔이 가득한 너에게 어울리는 건 바로 나라고 말하는 듯하다.

함께 손을 잡고 빛 속을 걷는 모습과 새장 밖으로 나와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새처럼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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