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묵상노트

[구모영 묵상노트] 요한복음 6장과 신학의 만남4/ 요한복음 6장 10절-13절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03.17|조회수32 목록 댓글 0

[구모영 묵상노트] 요한복음 6장과 신학의 만남4
요한복음 6장 10절-13절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12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어린 아이가 점심으로 가져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五餠二魚), 이 사실을 확인한 안드레가 주님께 보고를 하고 이제 이 오병이어는 주님의 손에 들려졌다. 그곳에는 남자 장정만 오천 명쯤 되었으니 그와 함께한 가족을 생각하면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약 2만 명(혹 1만 명) 정도의 큰 무리가 운집을 했고, 주님께서 이들을 앉게 하심으로, 무리들이 50명씩 혹은 100명씩 앉았다(막 6:40). 그리고 이제 인간적으로 보기에는 보잘 것 없는 오병이어를 주님께서 손에 잡으시고 축사(εὐχαριστήσας)를 하신다. 즉, 여기서 말하는 축사는 바로 감사(having given thanks) 기도였다.

아마 많은 무리들, 아니 심지어 제자들조차도 주님께서 앉게 하시고 축사하시는 이 모습을 보며 굉장히 의아해 했을 것 같다. 그들은 의심의 눈초리로 주님께서 무엇을 하시는 것일까? 아마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주님께서 떡을 떼시고는 제자들을 통해 나눠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하시는 데 오병이어는 아직 주님의 손에서 없어지지 않고 계속 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아마 나눠주는 제자들은 신이 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모인 무리들은 배고픔을 완전히 해소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남은 조각이 열 두 바구니에 가득 담겨져 있었다.

이와 같은 기적을 맛본 제자들은 물론 무리들의 모습은 어땠을까? 그들은 모두 주린 배고픔에서 해방되었다는 기쁨보다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하면서 아마 웅성거리기도 하고, 또한 어떤 이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마치 주님께서 요술을 부리는 것이 아닌가 의아해 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중의 일부는 구약시대 그들의 조상 모세가 광야에서 백성들을 먹였고(출애굽기 16장), 사르밧 과부의 집에서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 밀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한 기사와(왕상 17:16) 갈멜산에서 바알신과 한 바탕 전쟁을 치른 엘리야 선지자가 이세벨이 그를 죽이려 한다는 말을 듣고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간하고 있을 때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 그를 만지시며 먹을 식물을 주시므로 그가 힘을 얻어 40주야를 걸어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른 기적을, 마치 그들이 이곳에서 눈으로 보는 것 같았다고 기뻐하는 이도 있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여기 오병이어의 기사(물론 4복음서에 모두 언급됨)의 본질은 뭘까? 성경기자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1) 한 아이의 작은 헌신이 큰 역사를 이뤘기에, 우리도 이 모습을 닮아 헌신하면 큰 이적이 드러날 것이다. (2)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말하고자 하는 것으로, 기적도 복음의 중요한 내용임을 가르치려는 것이다. (3) 오병이어는 그 다음에 나올 빵의 본질을 말하기 위한 중요한 도입사건이다. 즉, 이 이적이 있은 후 다음날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이 “선생님 언제 여기로 오셨나이까?”라며 주님께 이들이 반응할 때, 주님은 “어제 이적을 기억하고 또 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기로 왔느냐?”며 반문하시는 말씀, 그리고 이어지는 생명의 떡 되심을 분명히 이들에게 말씀하려는 것으로 이해 할 수도 있다.

많은 설교자들이 첫 번째 내용을 중요시 하는 것 같으나, 요한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작은 아이의 헌신을 넘어 그 이면은 생명의 떡 되신 주님을 바로 제시하고, 구원은 오직 주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기독교 복음진리의 핵심원리를 풀어나가고자 한 것이다. 제자들도 주님을 따르는 이 큰 무리들도 아직 빵에만 눈이 가있을 뿐, 빵 이면에 주님께서 본래 말씀하시고자 하신 복음, 본래 가르치시고자 하신 생명의 양식 되신, 복음의 본질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생각은 아직 미치지 못함을 여기까지 우리가 살피는 중 확인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제자로서건 무리로 이곳에 있었건, 주님을 어떻게 보고 있었을까? 육신의 빵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으로만 멈추고 있지는 않았을까?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