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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모영 묵상노트] 요한복음 6장과 신학의 만남6/ 요한복음 6장 16절-21절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03.19|조회수30 목록 댓글 0

[구모영 묵상노트] 요한복음 6장과 신학의 만남6
요한복음 6장 16절-21절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16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17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18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19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20 이르시되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대
21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오병이어 이적 사건 이후에 무리들이 주님을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것을 아시고 무리들을 집으로 돌려보내시면서, 제자들은 이들을 피해 벳새다를 거쳐 가버나움으로 가도록 하시고, 혼자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셨다. 날이 저물어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호수/ θάλασσαν)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 중에 이적을 행하시는 주님을 만나게 되는 기사가 바로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갈릴리 바다는 해수면보다 213미터 낮은 곳에 있어, 북쪽의 산지와 동남쪽의 고원 지대에서 몰려오는 찬 대기가 따뜻하고 습한 대기를 밀어내면서 호수에 풍랑이 자주 일어나는 곳이다. 이곳에서 제자들은 지금 “예수님이 함께 계시지 않은 상황에서”(οὔπω ἐληλύθει πρὸς αὐτοὺς ὁ Ἰησοῦς) 풍랑을 만나 ‘바다 위에서’ 바람과 밀려오는 파도와 씨름을 하면서 힘겹게 노를 저어 보지만, 배는 쉽게 앞으로 전진 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고 있는데, 이 모습을 주님은 보고 계셨다(막 6:48). 지금 제자들이 주님을 만난 곳이 십여 리쯤 간 곳이라는 점에서 볼 때, 그들이 풍랑을 만나 고생을 하고 있는 지점은 아마 갈릴리 바다 중간 지점으로 추측이 된다. 그리고 저물어 배를 타고 출발을 했고, 이들이 주님을 바다에서 만난 시점이 밤 사경쯤이라고 하니 지금의 시간을 본다면 새벽 3시에서 6시 사이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들이 힘겹게 노 저은 시간도 엄청 길었을(6-9시간) 것이고, 이들은 “이제 죽게 되었다”고 할 만큼의 상태에 온 것이다.

바로 그 시점에 ‘바다 위로’(ἐπὶ τῆς θαλάσσης), 그것도 물 위로 저벅저벅 걸어오는(περιπατοῦντα) 사람이 있었다. 제자들은 힘겹게 바람과 파도와 싸움을 하는 중이라 기진맥진 한 상태에 또 이런 광경을 목격하자, 이들은 ‘유령’이라며 놀라 소리를 질렀다(마 14:25-26). 설상가상이라는 말을 이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상황에, 주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Ἐγώ εἰμι; μὴ φοβεῖσθε)라고 하신다. 그러자 제자 베드로는 성급하게도 “주여 만일 주님이시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하자, “오라”(Ἐλθέ)고 하신다. 베드로는 주님의 오라는 명령에 바다로 발을 디뎠다. “어, 나 지금 바다 위를 걷고 있는거야!”… 그런데 이 기쁨도 잠시뿐, 무섭게 몰아치는 바람과 파도를 보자 그만 두려워하였고, 결국 바다 물속으로 빠져 들고 있었다. 그제야 베드로가 정신을 차리고,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Κύριε, σῶσόν με !)라고 외친다. 이 때 주님은 베드로에게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느냐?”(Ὀλιγόπιστε, εἰς τί ἐδίστασας ?)라고 하시며, 그의 손을 잡아 붙잡아 주셨다(마 14:28-31).

그리고 주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풍랑이 멈췄고, 배는 목적지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을 때, 제자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우리가 여기서 조금 상상을 해 본다면, “휴우, 이제는 살았다.” 주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도 행하셨으니, 지금의 위난도 충분히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에 차지 않았을까? 본 절에서는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라고 하므로, 마치 주님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분명히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마가의 대답은 “아니다”(οὐ)였다. 아직도 제자들은 주님의 능력을 모르고 있었다. 이 사실은 병행구절인 마가복음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즉, 마가는 그들이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그 마음이 둔하여져 있었다”(ἦν αὐτῶν ἡ καρδία πεπωρωμένη)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파도가 잠잠해 진 것을 보면서 “마음에 심히 놀라”(ἑαυτοῖς ἐξίσταντο) 했던 것이다(막 6:51-52).

우리는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주님을 보면서, 자연의 질서를 넘어 우주를 다스리시는 주님이심을 배운다. 이것이 바로 “내니”(Ἐγώ εἰμι/ I am)라는 말씀의 의미이다. 그런데 제자들은 아직 이 “내니”의 말씀을 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바람과 파도와 오랜 시간 씨름을 하고 있음을 아시면서도, 이렇게 밤 사경이 되어 오신 것은 제자들의 믿음을 위한 것임을 배운다. 또한 우리도 동일하게 주님께 “우리가 죽게 되었다”고 외치며 도움을 요청하지만, 그 응답이 지체될 때에 주님께서 4경이나 되어 바다로 오신 것을 생각하자. 고난이 우리를 때론 성난 파도처럼 덮쳐 우리를 삼키려 할 때에도 여전히 주님이 그곳에 계심을 잊지 말자. 고난은 변장된 축복이며,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배는 곧 그들이 가고자 하는 곳에 당도하는 것처럼, 또한 우리의 삶에도 동일한 은혜가 함께 할 것임을 확신하자.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믿음이 없는 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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