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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모영 묵상노트] 요한복음 6장과 신학의 만남13/ 요한복음 6장 45절-48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03.26|조회수36 목록 댓글 0

[구모영 묵상노트] 요한복음 6장과 신학의 만남13
요한복음 6장 45절-48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45 선지자의 글에 그들이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46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47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우리는 앞에서 “아버지의 뜻”(τὸ θέλημα τοῦ Πατρός)이라는 말을 몇 번 접했다(6:38, 39, 40). 그리고 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요 6:40)라고 말씀 하신 것을 이미 살핀 바 있다. 여기서 본 바와 같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시겠다”는 복음이다. 그리고 이 복음은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은 45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가르침”(διδακτοὶ Θεοῦ)을 받아야 하는데, 이는 주님께서 인용한 선지자 이사야의 글,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에게는 큰 평안이 있을 것이며”라는 말씀(사 54:13) 가운데서 확인할 수 있다. 즉,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구원의 교리는 “하나님의 가르치심” 속에서 드러나는데, “하나님의 가르치심”이란 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에 대한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분께 응답하도록 하는 그분의 내적사역을 가리킨다. 말하자면 우리에게 이 말씀을 적용한다면, 우리는 신·구약을 통하여 메시아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워 주님께로 나아온 자들이다. 물론 이렇게 나아오는 데는 이미 앞서 살핀 바와 같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선택하시고, 때가 됨에 우리를 부르셨기 때문임은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는다고 해서, 마치 하나님과 인간들이 직접적인 신비한 결합을 뜻하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그래서 주님은 46절에서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아직도 하나님의 계시는 끝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직통계시”가 가능하다는 무리(?)들이 있지만, 이것은 결코 성경적이지 않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요 1:18).

따라서 주님은 46절 후반 절에서는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즉, “하나님에게서 온 자”(ὁ ὢν παρὰ τοῦ Θεοῦ)는 오직 하나님과 함께 계시다가 이 세상에 오신 자, 곧 예수님뿐이시다. 여기서 “하나님에게서”란 문구의 “에게서”(παρὰ)란 본래의 근원으로부터 관계된 사실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 말은 하나님과 함께 계시다 세상에 오신 예수님에게만 사용될 수 있는 용어이다. 그리고 “보았느니라”(ἑώρακεν)라는 말은 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 사실을 계속하여 보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주님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알 수 없는 것이다(요 1:18, 14:9; 마 11:27).

이상과 같은 설명을 끝으로 이제 주님은 다음과 같은 선언을 하신다. “(나를)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ὁ πιστεύων ἔχει ζωὴν αἰώνιον),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ἐγώ εἰμι ὁ ἄρτος τῆς ζωῆς)라고 35절에 이어, 48절에서 다시 확증하신다. 그러므로 여기 이 말씀은 너무나 짧고 간결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의 떡 되신 주님을 믿는 자는 영생을 소유하고, 또한 계속적으로 보존될 것이다”는 요한복음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주제는 물론 지금까지의 논쟁에 대한 주님의 결론적인 요약이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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