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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노트

[구모영 묵상노트] 용서와 사랑의 편지 빌레몬서(5) 빌레몬서 1장 8절-10절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04.08|조회수32 목록 댓글 0

[구모영 묵상노트] 용서와 사랑의 편지 빌레몬서(5)
빌레몬서 1장 8절-10절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몬 1:8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
몬 1:9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몬 1:10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빌레몬서도 통상의 편지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앞서 살핀 바와 같이 서신서를 쓴 발신자와 수신자, 그리고 감사를 곁들인 인사로 7절까지 마치고 이제 8절 이하에서는 발신자가 하고자 하는 말을 전하고 있다. 통상 우리들도 편지를 보낼 때 많이 했던 바와 같이 인사말씀을 하고 난 후에, “다름이 아니라”라는 말로 본론을 시작하곤 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바울은 이제 8절에서 “이러므로”(Διό, Therefore)라는 말로 시작을 하는데, 물론 그 의미는 다르지만 우리의 표현을 빌리자면 “다름이 아니라”라고 시작을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이 사도의 직분을 가지고 있기에, 또한 빌레몬보다는 연장자이기 때문에 아주 담대하게 말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정중히 부탁을 하니 나의 부탁을 부디 잘 헤아려 들어주길 바란다는 말로 시작을 한다. 그래서 8절에서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라고 한 것이다. 여기 “담대하게”(παρρησίαν)라는 표현은 이전 성경은 “담력으로”라 번역이 되었던 말인데 이 말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솔직하게” 또는 “허물없이”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마땅한 일로 명할 수 있다”고 한 것처럼 복음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기에 이는 사심(私心)이 아니므로 당연히 명령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9절에서 내가 그렇게 하지 않고 빌레몬에게 “사랑으로 간구한다”(διὰ τὴν ἀγάπην, μᾶλλον παρακαλῶ)라고 말한다. 이 말을 그대로 직역하면 “사랑을 위하여, 오히려 간구한다”라는 의미이다. 말하자면 이 모든 말은 자신이 사랑으로 하는 말로, 위와 같이 명령으로 하지 않고 오히려 이렇게 간구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바울은 여기서 자신을 가리켜 “연장자” 또는 “장로”라는 말을 할 수 있으나 굳이 이 말을 사용하지 않고 “나이가 많은”(πρεσβύτης)이라는 표현을 하였다. 이것은 틀림없이 자신의 말이 빌레몬에게 너무 지나치게 권위적으로 들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리고 빌레몬의 마음에 강력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나이가 많은”(πρεσβύτης, 노인=geron), “갇힌 자”(δέσμιος)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우리도 종종 이런 말을 사용한다. “이 나이 많은 사람이 부탁을 하니 좀 들어 주게나” 라고…. 약간 각색을 하면 “빌레몬이여”, “나는 지금(νυνὶ) 복음을 위하여 갇힌 자가 되어 지금 당신을 직접 만날 수도 없는 형편이라네.” “내 처지를 생각해서라도 한 번 나의 말을 잘 들어 주게나”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난 후 우리는 지금까지 오네시모에 대하여 여러 번 그의 이름을 언급하였지만, 바울은 여기 10절에 와서야 비로소 그의 이름을 언급하고 있다. 바울이 이처럼 오네시모의 이름 거명을 최대한 자제 하고 여기서 언급한 것은 빌레몬이 혹시 아직도 오네시모라는 노예가 자신에게 잘 못을 저지른 것에 대하여 마음에 앙금이라도 남아 있을까 내심 걱정을 하면서, 조금이라도 그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그 마음을 풀어서 바울이 하고자 하는 본론을 전하려는 배려와 세심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시 한번 더 언급을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사도 바울의 깊은 배려심과 세심한 헤아림을 읽을 수 있다.

이제 바울은 10절에서 이 오네시모를 말하면서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ἐμοῦ τέκνου, ὃν ἐγέννησα ἐν τοῖς δεσμοῖς, Ὀνήσιμον)라고 시작을 한다. 말하자면 자신이 이렇게 로마에 연금되어 있는 중에 오네시모가 자신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회심을 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제 그는 바울에게 있어서 이전의 빌레몬의 노예와 같은 자가 아니라 “나의 아들”(ἐμοῦ τέκνου)이라고 한다. 바울은 디모데와 디도에 대하여 믿음으로 낳은 아들이라는 말을 사용한 적이 있는데(딤전 1:2; 딤후 1:2; 딛 1:4), 그와 동등한 위치에 사실 오네시모를 놓고 있는 것이다. 여기 그 표현은 없지만 바울은 빌레몬을 향하여 “나는 오니세모를 이처럼 사랑을 하고 있단다.”라는 말로 읽을 수 있다. 그래서 그를 위하여 10절 끝에서 “그러니 너는 나의 간구를 좀 들어줘”(Παρακαλῶ σε)라는 빌레몬에게 간청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은 11절 이하에서 살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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