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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모영 묵상노트] 용서와 사랑의 편지 빌레몬서(7) 빌레몬서 1장 13절-15절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04.10|조회수31 목록 댓글 0

[구모영 묵상노트]
용서와 사랑의 편지 빌레몬서(7)
빌레몬서 1장 13절-15절

아마 그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너로 하여금 그를 영원히 두게 함이리니

몬 1:13 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몬 1:14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 몬 1:15 아마 그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너로 하여금 그를 영원히 두게 함이리니

바울은 오네시모가 빌레몬의 종으로서 여러 번 언급한 바와 같이 이전에는 그가 참으로 무익한 종이었지만, 지금은 유익한 종일뿐만 아니라 바울의 믿음으로 낳은 아들인 동시에 바로 앞에서는 심복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로마에 가택연금을 당하고 있는 바울에게 오네시모는 참으로 소중한 지체로, 바울의 복음을 위해서 참으로 필요한 존재였다. 따라서 바울은 사적인 마음으로는 이 오네시모를 항상 그의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이미 그의 과거의 전력을 알았기 때문에 그의 이전의 주인인 빌레몬에게 돌려보내어 그의 결정을 받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바울은 13절에서 사실 오네시모를 자신 옆에 두면서 이전의 주인이었던 빌레몬을 대신하여 자신을 돌보며(섬기게 하려, διακονῇ, 집사라는 διάκονος도 같은 단어에서 왔다) 함께 하기를 원하지만, 14절에서 빌레몬의 승낙(γνώμης)이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사실을 전한다. 여기서 우리는 오네시모가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바울과 함께 열심히 복음을 위하여 매진하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한 가지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 있다. 그가 이곳에서 바울과 함께 열심히 과거를 덮고 현재에 충실 한다고 하더라도, 그는 아직 과거의 피해자라 할 수 있는 그의 주인 빌레몬과의 회개 및 관계의 회복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또한 비록 그가 믿음을 따라 과거의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 앞에서 용서를 받았다고 해서 빌레몬과의 이전의 관계가 깡그리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종종 이러한 문제와 관련해 잘못된 결과들을 보았던 예가 많았다. 이쯤에서 혹시 영화 “밀양”이 기억나는가? 살인 사건이 있었고 교도소로 간 범인, 그를 찾아갔을 때 “하나님께서 자신을 용서해 주셨다”라고 말하자 이 말에 납득이 가지 않는 신애, 그는 “인간이 용서하지도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셨다니” 이런 말들이 오가는 장면이 특히 강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그렇다. 우리는 오네시모의 지난 잘 못에 대하여 진정으로 회개한 것에 대해서는 인정을 해야 하고, 또한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동(東)에서 서(西)가 먼 것처럼 그렇게 하셨을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그가 저지른 죄에 대하여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것일까? 마치 “밀양”이라는 영화의 줄거리처럼….

바울은 이러한 사실을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이 오네시모와 함께 앞으로 더 많은 일을 함께 할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빌레몬의 용서와 수용이 필요함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14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ἑκούσιον, willingness) 되게 하려 함이라”라고 함으로써, 빌레몬의 승낙을 원했던 것이다. 바클레이는 말하기를 “기독교는 사람이 자신의 과거를 잊어버리고, 그것에서 도피하는 것을 돕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과거를 직시하고 그 이상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과거의 비행과 책임을 도망으로 회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과거에 대하여 책임을 통감하고, 거기서부터 보다 높게 일어서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는 도피가 아니라 언제나 극복인 것이다. 이러한 극복을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과거의 주인이었던 빌레몬의 용서와 그의 용납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다.

바울은 그가 사도이며 또한 교회의 지도자이기 때문에 만약 그의 권위를 이용하여 빌레몬에게 오네시모의 용납을 허락하라고 명령을 하였다면, 결국은 빌레몬의 선한 일이 억지같이(ἀνάγκην, constraint) 될 수 있음을 생각했다. 따라서 빌레몬의 억지가 아니라 자유로운 결정을 통하여 자의적으로(κατὰ ἑκούσιον, according to willingness) 모든 일이 원만하게 이루어지길 바울을 희망하면서 이렇게 권면을 했던 것이다. 무엇이든지 억지로 하는 것은 좋은 것이 못된다. 그래서 바울은 헌금도 자원하는 마음으로 할 것으로(고후 9:7), 베드로는 사역자들이 사역을 함에 있어 동일하게 자원하는 마음이 아닌 억지로 하지를 말라고 한다(벧전 5:2). 특히 바울은 오네시모가 빌레몬을 떠난 것에 대하여 그가 잘 못을 저질러 도망을 간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15절에서 “아마 그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너로 하여금 그를 영원히 두게 함이리니”라고 하면서 매우 긍정적인 말을 한다. 바울의 이 말 속에는 사람이 실수를 할 수 있지만, 또한 그 실수를 뉘우치고 다시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 볼 수 있어, 매우 중요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 더 언급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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