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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모영 묵상노트] 기쁨과 감사의 복음 빌립보서(9)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04.23|조회수34 목록 댓글 0

[구모영 묵상노트]
기쁨과 감사의 복음 빌립보서(9)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2:1)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1] 빌 2:1 앞 장의 1:27에서는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라고 권면한 적이 있는데, 그 연장선상에서 그리스도인이 이러한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려면, 우선 그리스도 공동체 안에서 상호간의 아름다운 관계가 유지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공동체의 구성원 중 누구에게 권면을 하거나 위로, 교제 또는 자비와 긍휼을 베풀 경우에 어떠한 자세로 임해야 할지 1절에서는 총론으로 다섯 가지를 먼저 제시합니다.

여기 (1) “권면”(παράκλησις)은 “곁으로”라는 para와 “초대하다” 또는 “밖으로 불러내다”라는 kaleo의 합성어입니다. 따라서 권면이라는 말은 “가까이 곁으로 불러낸다”는 의미 속에 격려(encouragement)와 같은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권면을 할 때 조심해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권면은 “그리스도 안에서”(ἐν Χριστῷ)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 “그리스도 안에서”란 앞으로 우리가 살펴보겠지만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권면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이를 통하여 그 상대방이 더욱 그리스도 예수의 성품을 닮아가도록 격려하며 지도해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2) 위로(παραμύθιον)를 할 때는 그 위로를 하는 자는 반드시 사랑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 위로라는 단어에도 앞의 권면과 같은 para라는 어근이 붙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짐작을 하겠지만 위로 역시, “곁에서” “이야기를 하는”(muthos)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권면과 마찬가지로 위로 역시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위로를 함에 있어, “사랑의 위로”(παραμύθιον ἀγάπης)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정작 위로를 한다고 말하면서도 그 상대방의 힘들고 어려운 점을 오히려 들추어내며 마치 욥의 세 친구처럼 “당신이 저지른 죄 때문이라는 등”, 이런 경우는 위로가 아니라 오히려 그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위로를 말할 때 “사랑”을 조건으로 내 건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던 것처럼 아무런 조건 없이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같은 마음으로 위로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욥의 고난에 그의 세 친구들이 그를 위로한다면서 사실 그의 죄를 지적하며 회개를 촉구하는 모습에서 인간은 얼마나 자기의 의를 들어내려 하는지를 잘 볼 수 있습니다(데만 사람의 엘리바스=4장, 수아 사람 빌닷=8장, 나아마 사람 소발=11장).

(3) 그리고 공동체 속에서 서로간의 “교제”(κοινωνία)는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심을 본받아 “성령의 교제”(κοινωνία Πνεύματος)를 해야 합니다. 세상의 교제는 갖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교제를 하는 경우, 즉 상대방을 자신의 입신양명(立身揚名)을 위한 도구로 이용하기 위한 교제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사이의 교제는 결코 이를 통하여 자신의 이익을 누리겠다는 것이 전제되면 안 됩니다. 이는 결코 성령의 인도하심을 입은 교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교제”는 내주 하시는 성령이 공급하시는 영원한 생명을 공동으로 누리는 동반자 관계를 생각하며 하는 교제를 의미합니다.

(4) 긍휼(σπλάγχνα)과 자비(οἰκτιρμοί)를 베푸는 경우도 역시 성령의 인도하심에 근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긍휼의 사전적 의미는 “불쌍히 여겨 돌보아 줌”(affections)입니다. 이러한 긍휼은 누가복음 10장에서 보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행동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는 강도만난 이웃에 대하여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치료를 받게 함은 물론 앞으로 비용이 더 소요되는 경우 그 부분까지 책임지겠다면서 그의 강도만난 자에게 긍휼을 베푸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하여 긍휼을 베풀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보다도 먼저 우리의 이웃이 되어 주시고 그 긍휼을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자비”란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약한 자의 슬픔이나 아픔에 대하여 동정하는 사랑(compassions)을 말합니다.

[2] 그렇다면 왜 바울은 이와 같은 다섯 가지의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가져야 할 합당한 자세를 주문하였던 것일까요? 그 답은 이미 앞서 본 바와 같이 1:27의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라는 바울의 요청에 근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공동체가 하나가 되고 한 마음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금 언급한 다섯 가지의 덕목을 잘 새기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공동체가 아름답게 유지될 것입니다. 그런데 공동체가 아름답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모두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사도는 우리가 곧 살피겠지만 2:5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말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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