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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노트

구모영 묵상노트 / 산상수훈(4) 마태복음 5장 4절 애통하는 자의 복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01.28|조회수40 목록 댓글 0

[구모영 묵상노트]
산상수훈(4) 마태복음 5장 4절 애통하는 자의 복


구모영 장로 / 법학박사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의 팔복 중 여기서는 두 번째 “애통하는 자의 복”에 대하여 살피기로 합니다. 먼저 여기서 말하는 “애통하는 자”란 어떤 자를 의미하는지를 살피고, 다음에 그런 자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라 한 것처럼, “위로”의 의미가 무엇인지 살피기로 하겠습니다.

4절의 “애통하는 자”란 혹자는 자기 밖의 환경으로부터 오는 고난과 핍박에 대하여 신음하는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여기서 말하려는 애통의 의미는 이와 같은 것으로 보기엔 복음의 성격상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애통함이란 자신의 상황을 볼 때 도저히 의로운 데라고는 찾기 어렵고, 오히려 죄에 빠지기 더 쉬운 존재라는 한계상황을 깨닫고, 통회하며 자복하는 회개로 나아가는 한탄의 모습(mourning)을 여기서 애통이라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여기서 말하는 애통은 죄에 대한 애통으로, 이와 같은 애통은 후회 없는 구원으로 이끄는 회개를 낳는 경건한 슬픔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의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라고 적고 있는 것입니다(고후 7:10).

그리고 4절 후반 절에서는 이와 같이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위로”는 세상적인 의미에서 본다면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주거나 슬픔을 달래주는 것을 말하겠지만, 이와 같은 세상적인 위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 위로라는 παρακληθήσονται(paraklēthēsontai)는 παρακαλέω(parakaleó)에서 온 것으로 이는 문자적으로 보면 “para곁으로 kaleó부르다”(to call near)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보혜사 성령님을 헬라어로 Παράκλητος(Paraklētos)라 하는데, 이것도 앞의 ‘위로’와 동일한 어근을 가지고 있는 말입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위로’는 곁으로 불러 보살피고 권면하시는 보혜사 성령님의 자상하고 부드러운 성품 속에서 더 잘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회와 회개를 통하여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는데, 그에게 주어지는 것이 위로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위로는 보혜사 성령님의 도움을 따라 사죄와 구원의 은총에 이르는 위로이며(사 40:1, 2 참조), 애통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로 그의 ‘곁으로 부르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세상이 주는 위로와 다른 참된 위로인 것입니다. 애통하는 당신 곁에는 주님이 계십니다. 애통하는 당신 속에는 위로의 성령님이 내주하십니다. 오늘도 평안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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