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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모영 묵상노트] 산상수훈(14) 마태복음 5장 17절-20절 율법을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02.07|조회수36 목록 댓글 0

[구모영 묵상노트]
산상수훈(14) 마태복음 5장 17절-20절 율법을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 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예수님께서 산상보훈을 시작함에 먼저 팔복을 말씀한 후에, 이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며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된 소금이라면 그 맛을 결코 잃을 수 없지만, 오염된 소금은 소금으로서의 그 역할을 할 수 없어 밖에 버리어 밟힐 뿐이라는 것, 그리고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는 그 빛을 전하는 자들이며, 너희의 모습을 통하여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토록 해야 하는데, 정작 이와 같은 빛의 사명을 “너나 할 것 없이” 잘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인 것 같습니다. 연일 방송을 통하여 보도되는 교회의 비리와 또한 이러한 기회를 교회로부터 대중들이 멀어지도록 만들려는 적그리스도들의 음모가 난무하고 있습니다. 사정이 그러하기에, 더욱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더 깊이 새기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산상수훈은 이와 같은 강론이 있은 후, 주님께서는 율법의 문제로 따르는 무리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하십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17절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하심으로, 율법은 온전한 것이며 결코 율법 그 자체가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는 것이 문제임을 말씀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여기서 “율법이나 선지자”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특정 율법이나 특정 선지자의 글을 말하거나 또는 랍비의 해석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 표현 그 자체가 바로 구약(Old Testament)을 가리킴을 유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참고: 마 7:12; 11:13; 22:40; 눅 16:16; 행 13:15; 24:14; 28:23; 롬 3:21). 그러기에 이 말은 곧 예언의 성취와 일치하는 의미이며, 또한 그리스도는 율법의 성취자로서 그 안에서 모든 율법을 “완전하게 하신 것입니다”(ἀλλὰ πληρῶσαι).

주님은 18절에서 “진실로(ἀμὴν)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하시며,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서 율법의 일 점 일획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말씀 하십니다. 여기 “진실로”라는 말은 Amen이라는 말로, 마태복음에만 무려 31회나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진실로”라고 하신 것은 이 말을 듣는 자들은 주의 깊게 새겨 들어야 할 엄숙한 선언임을 분명히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을 듣는 자들은 긴장을 하고, 앞으로 어떤 말씀을 하실 것인지 귀기우려야 할 부분이 있음을 알아채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어지는 말씀은 무엇인가요? 바로 율법의 일 점 일획도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일 점”(ἰῶτα ἓν, iōta hen)이란 히브리어의 가장 작은 글자인 Yohd와 같은 것으로 영어로 말하면 I(i)자 위의 점과 같은 것을, 일획(μία κεραία, mia keraia, one stroke of a letter)은 “P”와 “R” 사이의 사선(斜線)과 같은 것으로, 이러한 가장 작은 것조차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 속에는 모든 성경의 영감(靈感)과 항구적인 귄위(權威)가 강조되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주님은 구약의 완전한 무오성과 절대적인 권위를 무리들에게 분명히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약이 구약을 밀어내거나 완전히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구약을 성취하고 해명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비록 모세 오경에 나오는 모든 종교의식들이 주님을 통하여 성취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이제 더 이상 그것을 실행하지 않습니다(골 2:16, 17). 그렇다고 해서 율법과 선지자로 표현되는 구약이 폐지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케 된 것입니다. 즉, 주님은 율법 아래로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율법과 선지자의 말씀을 완수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의 구원자가 되신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구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선물인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주님이 율법을 완전하게 하셨으니,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는 것인가요? 그 답은 19절과 20절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19절은 율법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거나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결코 천국에서 작은 자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며, 그 반대로 작은 것 하나라도 지키고 행하도록 가르치면 천국에서 큰 자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합니다. 그런데 20절은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라고 하십니다. 19절과 20절의 말씀을 요약하면 율법을 지키려면 온전히 지켜야 하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의를 넘어 서려면 외식적이고 형식적인 거룩이 아니라 내면적(內面的, 心靈的)으로 거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 19절과 20절에서 율법의 작은 것까지 온전히 지켜야 한다는 것과 형식이 아니라 내면적 거룩을 대조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상호 모순이 아닌가 하는 혹시 의구심이 들지 않나요? 결국 주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요지는,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자가 누구인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자신의 의를 들어내려 하지만, 그들의 의는 형식주의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만약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처럼 행위구원이 가능하다고 한다면 흠 없고 점도 없이 율법을 완전히 준수해야겠지만, 이것은 주님 이외에 누가 가능하겠습니까? 따라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고백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롬 3:10). 그러므로 죄인을 의롭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같이 율법을 지키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창 15:6; 롬 4:5). 그리고 “하나님의 의”는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가능한 것이기에 주님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라고 하신 것입니다(요 14:6). 비록 20절에 내면적인 거룩에 대한 설명은 없지만, 이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따라서 위의 두 구절은 결코 모순이 아니라 구원에 이르는 선명한 진리를 보여주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상의 논의를 정리해 보면, 주님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려 오셨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자신들이 율법을 잘 지킨다고 자신들의 의를 자랑하지만,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설령 율법을 지킨다고 하더라도 외식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율법과 선지자의 말씀은 온전한 것이지만, 주님 이외에 이 율법을 온전히 지킬 사람은 없기에 율법으로 구원에 이르는 길이 열려져 있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길을 열어주셨음을 여기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평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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