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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노트

[구모영 묵상노트] 산상수훈(43) 마태복음 7장 13절-14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03.08|조회수47 목록 댓글 0

[구모영 묵상노트] 산상수훈(43)
마태복음 7장 13절-14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미국의 계관시인(급)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은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 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을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피천득 번역본)

이 시에 대하여 다양한 제목과 함께 다양한 해석이 내려져 있긴 하지만, 저는 그의 시 마지막에 좀 더 관심을 가져보려 합니다. 즉,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우리 인생의 길을 감에 있어, 때로는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에 어떤 길을 택하느냐에 따라 먼 훗날 그 상황이 많이 다름을 경험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프로스트는 숲 속에 두 갈래 길 중에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고, 그 결과로 ‘많은 것’이 아니라 ‘모든 것’(all)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성경 7장 13절 본문도 프로스트의 두 길과 같이 두 문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두 문은 좁은 문(στενῆς πύλης)과 넓은 문(πλατεῖα πύλης)인데, 넓은 문은 멸망(ἀπώλειαν)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그 길이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다고 합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좁은 문은 비록 생명(ζωήν)으로 인도하는 문이기는 하지만, 그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τεθλιμμένη) 찾는 자가 적다고 합니다. 여기서 협착하다는 말은 thlibó(압박하다)의 완료 수동태 분사로 계속된 제재로 말미암아 어려운 상태에 처해 있는 것을 뜻합니다.

방금 우리가 한 편의 시를 읽으면서,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므로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는 프로스트의 시처럼, 멸망으로 가느냐 아니면 생명으로 인도하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좁은 문이란 그 문도 좁을 뿐만 아니라 그 문으로 인도하는 길도 협착하여 실제 걷기가 힘든 길이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은 쉽게 쉽게 가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등산을 해 보면 이러한 예를 잘 볼 수 있는데, 도전적이지 않은 사람은 평범한 길을 많이 택하게 됩니다. 이에 반하여 도전적인 사람은 칼바위, 급경사 오르막길을 택하곤 합니다. 통상 평범한 길은 목적지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반면에, 비록 칼바위 또는 급경사 오르막길을 이용하는 때에는 힘은 들어도 성취감은 물론 거리와 시간을 단축하게 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다만, 위의 성경 구절은 스스로 고행을 하라거나 또는 스스로 길을 선택하여 자력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그리고 또한 인생은 이미 길이 정해져 있기에 그 결과는 나와 있다는 숙명론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문과 길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좁은 문은 우리의 종착점에 이르렀었을 때 만나게 되는 천국의 문이며, 생명의 면류관을 받게 되는 문입니다. 그리고 이 문으로 인도하는 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복음이 제시하는 길을 따라 갈 때, 비록 세상적인 가치관과 달라서 그 길을 가기에는 너무나 많은 희생과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은 구원으로 인도하는 문이 기다리고 있기에 따라가야 하는 길입니다. 즉, 이 길은 광야와 같은 길이며, 그렇기에 이 길을 갈 때 자신이 이곳에 영원히 안주할 곳이 아니라는 나그네 의식을 가지고, 넓은 문으로 가는 쉬운 길이 아니기에 삶에 고난과 고통이 따른다고 하더라도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만 바라보고 걷는 길이 바로 좁은 문으로 가는 길인 것입니다.

프로스트의 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모든 것이 어느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졌듯이, 우리 역시 어느 문을 향하여 어떤 길을 가느냐에 따라 모든 결과는 달라질 것입니다. 비록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더라도,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바로 좁은 문으로 향하는 길임을 주님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다만 주님께서 자신의 길을 따르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계속해서 강조하셨던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마 10:38; 16:24, 25; 요 15:18, 19; 16:1-3. 참고 행 14:22). 광야 같은 세상, 나그네의 길은 외롭고 때로는 힘이 들겠지만 주님께서 가라고 하신 길이기에, 우리는 묵묵히 오늘도 이 길을 걸어가는 복된 순례자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평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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