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예수시대 동인 소식

이어령 박사의 죽음과 장례 ④ 그가 남긴 마지막 이야기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03.07|조회수225 목록 댓글 0

이어령 박사의 죽음과 장례 ④

그가 남긴 마지막 이야기

송길원 / 예수시대 동인, 청란교회 목사

“산다는 게 뭔가. 내 이야기 하나 보태고 가는 것이 아닌가.”
이어령 선생이 남긴 말이다. 평생을 바쳐 세상에 이야기를 보탠, 스토리텔러가 본향으로 돌아가셨다. 향년 88세.
선생께선 똑같은 시간을 살아도 이야깃거리가 없는 사람은 산 게 아니라고 하셨다. 스토리텔링이 럭셔리한 인생을 만든다고도 했다.
선생이 남긴 많은 이야기 가운데 내 가슴을 뒤흔든 이야기는 딸 이야기였다.
그가 털어놓은 이야기 한 토막이 있다. 딸은 기억조차 못하는 사건이었다.
“민아가 네 살 때였어요. 아내가 임신해서 내가 아이를 데리고 대천해수욕장 앞 해변 바라크 건물에 묵은 적이 있어요. 아이를 재우고 다른 천막에 가서 문학청년들과 신나게 떠들었지. 그때 민아가 자다 깨서 컴컴한 바다에 나가 울면서 아빠를 찾은 거야. 어린애가 겁에 질려서..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파요. 우리 애는 기억도 안 난다지만(웃음)”(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중)

반대로 딸은 생생하게 기억하는데 선생은 기억이 희미한 일이 있었던 듯하다. 딸 민아를 떠나보내고 딸이 생전에 남긴 이야기를 통해 기억을 소환해 낸다.
퇴근해 집에 들어서는 자신의 팔에 매달리는 딸을 “아빠 밥 좀 먹자”하고 밀쳐낸 적이 있었다. 딸은 아빠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줄 알았다고 했다. 어느 날 아빠가 엄마에게 소리쳤다. “원고 마감이야, 얘 좀 데려가” 왜 ‘마감이 영감’이라 하지 않나? 원고독촉에 쫓겨 본 사람들은 안다. 얼마나 긴장된 순간이었겠나. 하지만 딸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고 했다.
민아가 어렸을 때다. 아빠의 서재 문을 두드린다. 아빠에게 ‘굿나잇’을 하러 온 것이다. 그 날도 글 쓰는 일에 바빴던 선생은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 손만 흔들었다. “굿나잇 민아” 딸 민아는 말없이 돌아서 제 방으로 들어선다.
선생은 딸 민아에게 뒤늦게 편지를 쓴다.
“나에게 만일 30초의 그 시간이 주어진다면 딱 한번이라도 좋으니 낡은 비디오테이프를 되감듯이 그 때로 돌아가자. 나는 그 때처럼 글을 쓸 것이고 너는 엄마가 사준 레이스 달린 하얀 잠옷을 입거라. 그리고 아주 힘차게 서재 문을 열고 ‘아빠 굿나잇’하고 외치는 거다. 약속한다. 이번에는 머뭇거리며 서 있지 않아도 돼. 나는 글 쓰던 펜을 내려놓고, 읽다만 책장을 덮고, 두 팔을 활짝 편다. ‘굿나잇 민아야, 잘 자라 내 사랑하는 딸’
그런데 어찌하면 좋으니. 내가 눈을 떠도 너는 없으니 너와 함께 맞이할 아침이 없으니. 그러나 기도한다. 우편번호 없이 부치는 이 편지가 너에게 전해질 것을 믿는다. 그래서 묵은 편지함 속에 쌓여 있던 낱말들이 천사의 날갯짓을 하고 일제히 하늘로 날아오르는 꿈을 꿀 것이다. 갑자기 끊겼던 마지막 대화가 이어지면서 찬송가처럼 울려오는구나. ‘굿나잇 민아야, 잘 자라 민아야, 보고 싶다 내 딸아’”
앞서 말했던 엔딩 파티가 끝나갈 무렵 이렇게 말하는 거다.“여러분, 사랑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30초’면 됩니다. 주저하지 말고 오늘 그 사랑을 나누어주세요.”
그의 이야기가 전 세계 뉴스를 탄다. 미움과 증오로 차가워진 지구촌은 삽시간에 36.5℃의 사랑으로 달구어진다. 선생이 말했던 생명자본주의가 활짝 피어난다.
실은 딸 민아가 이야기했던 대로 ‘표현방식만 달랐지’ 이미 글로 이야기를 남기셨다. 선생의 이야기가 가슴의 감탄(感歎)을 넘어서 손발의 감동(感動)으로 이어지는 것은 오롯이 남은 자들의 몫이다. 우리 모두가 사랑의 원자탄이 되는 거다.
“30초의 실천”

이어령은 여전히 우리 곁에 이야기로 살아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