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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시대 동인 소식

송길원 / 두 번이나 듣게 된 추도시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03.24|조회수127 목록 댓글 0

두 번이나 듣게 된 추도시

송길원 / 예수시대 동인, 하이패밀리 대표

나는 1973년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학교는 후졌고 공부는 재미가 없었다. 도망칠 궁리를 하던 나를 붙잡은 것은 순전히 이정삼목사님이셨다. 교목(校牧)으로 성경을 가르치셨다. 오로지 그 한 시간이 재미있어 조금만 조금만... 그러다가 졸업까지 하게 되었다.

건드리면 툭 넘어질 것 같은 걸음걸이, 얼굴에는 뭔지 모를 슬픔으로 그윽했다. 수업시간에 쏟아내는 인물, 역사, 문학... 그러다가 양념처럼 곁들이는 연예 이야기는 늘 가슴을 적셨다. 흐리멍텅한 눈으로 시작한 수업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뀌었다. 끝내 촉촉한 눈물을 흘리게 했다. 어김없이 주먹은 꽉 쥐어져 있었고 가슴은 콩당콩당 뛰고 있었다.

어느 날 목사님은 당감동 화장터 이야기를 하셨다. ‘반나절만 갔다 오면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안다’고. 그 말에 꽂혀 당감동을 찾았다.
화장터는 곡(哭)소리로 가득 찼고 실신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느라 아수라장이었다. 모든 것이 허망했다. 어린나이에 왜 살아야 하는지를 묻고 물었다. 답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목사님이야말로 ‘죽음의 스승’이었다. 수업 시간에 쏟아낸 ‘죽음’ 이야기가 나를 세워갔다. 나는 이후 당감동을 자주 찾았다. 그리고 선생님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선생님은 모든 일에 나의 롤모델이셨다. 춤을 꿀꺽 삼키게 하는 스토리텔링이 그랬고 그칠 줄 모르는 유머가 탐났다. 영혼을 향한 열정은 나의 미션을 불태웠다. 자살한 녀석의 목줄을 풀어낼 때 처연함을 이야기하다 우셨다. 한 두번이 아니었다. 나는 먼 훗날 왜 목사님의 얼굴의 슬픔이 사슴의 목처럼 길었는지 알았다. 기억력이 얼마나 좋으신지 제자들 이름을 줄줄이 꿴다.

나도 선생님처럼 되고파 교목을 했다. 선생님이 읽었다는 책을 따라 읽었다. 선생님의 말투, 화법, 생각을 따라해 보았다. 그러나 깜냥이 못되었다. 어쩌면 가장 못난 제자를 선생님은 지금까지 챙기신다.

선생님은 종종 전화로 온갖 이야기들을 꺼내신다. 나는 선생님과의 전화 데이트가 그렇게 좋을 수 없다. 언제나 추임새로 격려하신다. 용기를 북돋으신다. 선생님의 살아온 세월은 들어도 들어도 흥겹다. 아니 향내가 난다.

어제도 친구 정필도 목사님을 떠나보내고 울적한 마음을 달래느라 전화를 걸어 오셨다. 30분이 넘도록 이바구를 하시다 위로예배 때 읽으셨던 당신의 추모시를 또 한 번 낭송하셨다. 추모시가 선생님이 어떤 분인지를 말하고 있었다.

<정필도 목사님 영전에>

당신의 아픈 몸을 천사가 업고 떠나던 그 날,
몹시 외롭지 않았습니까.
82년의 생애가 아픔에 피 흘리며
이승의 터널을 조용히 빠져나가실 때
목사님도 우리처럼 슬펐습니까.

우리의 문병도 끝나지 않았는데,
그렇게 서둘러 서둘러 길을 가시다니...
진달래 꽃망울보다 더 빨리 터져버린
이별의 슬픔을 알게 하신 정 목사님

살아서는 바위처럼 말이 없던 목사님
떠나서는 구름처럼 가볍게 말을 건네 오시네요.
목사님을 알던 이들은 모두 그 깊은 목소리를
생전보다 더 가까이 듣고 있습니다.
3월에 관속에 목사님을 입관하면서
바람은 멎었지만,
눈물은 멎지 않았습니다.

82년의
목사님으로서
아버지로서의
남편으로서의 삶이
슬프도록 아름답고 성실해서,
당신의 양떼들은 숨죽여 울고 있습니다.
평소에 더 드리지 못한 사랑의 한을
가슴으로 가슴으로 불어내며,
숨죽여 울고 있습니다.
시들어진 갈대풀 대신
영혼들이 표현해 낸
눈물의 꽃으로 영전에 올려놓고
우리는 또 살기 위하여 집으로 갑니다.
살아가며
더러는 목사님을 잊더라도 용서해 주십시오.
정 목사님.
한 번의 기도만도 못한 이 엽서를
바람에 띄워 보내는 어리석음도
아직은 저희가 살아있다는 탓이겠죠.

이제는 천국에서 편히 쉬십시오.
하늘로 이어지는 기도의 시작이니
우리의 만남 또한 새로운 것임을 믿겠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을 죽었다고 하지 않고
떠나셨다고 말하렵니다.
정 목사님
언젠가 다시 만날 환희의 그 날까지
평안히 계시길 비옵니다.-이정삼

선생님은 정목사님이 병상에서 일어나 남은 자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 한 마디 던져주고 가셨어야 한다고 많이 아쉬워하셨다.
말씀을 듣고 선생님께 제안을 했다.
“이제 목사님이 저희에게 그 아쉬움 없도록 마지막 이야기 남겨 주셔야지요.”
친구 이규현 목사랑 생전식(生前式), ‘엔딩 파티’를 준비해 드리겠다고 했더니 좋아라 하신다. 내년이면 선생님을 만난지 50주년이 된다. 어서 서둘러야겠다.

https://youtu.be/qZtgUUdhK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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