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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시대 동인 소식

100명의 명사 만나기 프로젝트 실황 중계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08.29|조회수53 목록 댓글 0

100명의 명사 만나기 프로젝트 실황 중계

‘1976년 서울 법대 진학
1980년 22회 사법시험 합격
2012년 대법원 대법관’
예준이가 기초조사를 끝낸 인터뷰 메모와 기억이었다. 청란교회 청소년들은 <100명의 명사 만나기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이번에는 김신 전 대법관을 만나기로 한 날이다. 아이들은 약속장소로 가는 차 안에서 김대법관과 나의 관계를 묻기도 했다. 나는 말했다.
“그는 ‘범생’이었고 나는 ‘날날이’었다.” 아이들이 ‘어~’하고 웃었다.

첫 질문은 예준이가 시작했다.
“어릴 적 꿈이 판사 말고도 있었나요?”
이어서 루아와 태영이도 물었다.
“삶의 사명은 있다면 무엇인가요?”
“인생에 후회되었던 일도 있었나요?”
“기억에 남는 판결이 있다면요?”

아이들은 궁금한 것도 많았다. 대법관과 변호사의 차이도 물었고 어떻게 하면 대법관이 될 수 있는지도 물었다.
긴장이 된다 싶은 찰나, 이번에는 태영이가 ‘폭풍 공감’으로 균형을 잡았다.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으셨다고.... 따가운 시선이나 차별 같은 거 받으셨을 것 같은데 마음고생은 안 하셨는지... 또 그것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알려 주실 수 있으실까요?”
한 마디로 ‘헐’이었다. 놀란 김대법관께서 ‘너 질문이 놀랍다’고 하자 태영이는 서슴치 않고 말했다.
“저는 김향숙원장님에게서 <이모션 코칭>을 통해 감정 훈련을 받았거든요.”
이어서 루아가 말했다.
“저도 나이는 많이 많이 어리지만 ‘슬픔’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때마다 아빠 엄마가 저의 마음 중심을 잘 잡아주셨어요. 두 분은 선교지에서 만나셨어요.”
가끔은 연예⸱문화에 관한 질문도 있었다.
“우영우를 보셨는지요? 보셨다면 법조인으로서 어떻게 보셨는지요?”
질문은 뒤엉키지 않았고 가지런하면서 흥미 있었다. 답을 듣는 아이들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났다.
아이들이 쑥쑥 자라고 있었다.

※ 인터뷰가 끝난 다음 <행가래 노트>에 사인도 해 주면서 사진도 찍었다. 점잔을 빼는 예준이를 불러 어깨동무까지 했다. 그런 김대법관을 보면서 나는 그가 ‘고교 얄개’고 내가 ‘범생이’가 아닌가 착각에 빠졌다. 자꾸만 옆에서 눈치를 주면서 마무리를 독촉했으니 말이다.
아이들은 이 날, <앰뷸런스 소원재단> 나들이 지원을 위한 자원봉사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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