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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시대 동인 소식

박상은 원장을 기리는 추모사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3.11.19|조회수84 목록 댓글 0

박상은 원장을 기리는 추모사

https://youtu.be/RKaYOtov4KI

[추모시]
국경 없는 사랑
-선한 의사 박상은의 삶과 사역을 노래함


나삼진 목사

온 나라를 휘감던 가난과 질곡의 세월
전후 베이비부머들 데리고 이 땅에 와
사랑 가득한 어머니와 함께
가난한 목회자의 기도 소리 들으며 자랐니라
영파靈波를 닮은 일곱 형제가 믿음과 사랑의 길따라
빛나는 은혜의 가문 일구었니라

의술로의 부르심, 재물을 쌓는 의사 보다
생명을 살리는 의사보다 나은 길을 찾으러
부산까지 달려 성자 장기려를 만났더니
그의 길은 바보의 길, 그의 길은 나눔의 길
마지막 제자로 그를 배우고 닮아
선한 의사, 나누는 의사가 되었니라

부산의 청춘들과 꾼 예수시대의 꿈 영글어
그의 눈은 북누리로 열려,
녹슨 철책을 걷고 잃어버린 영혼들 돌보기 열 차례,
그 문이 닫히자 주께서 새로운 문을 여셨더니
누가회, 기독의사회, 의료선교협회, 나라 위한 국가생명윤리위원회까지
그 발자국은 길이 되고, 곳곳에 아름차게 꽃 피웠니라

-와서 우리를 도우라, 외침을 듣고
-아무도 가려 하지 않는 곳으로 가,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하였더니
‘미래’ 단어가 없는 사람들 위해 세운 아프리카 미래재단,
에티오피아와 잠비아로, 짐바브웨와 말라위로, 또 에스와티니와 탄자니아로
푸른 세상을 만들며 달린 17년은 거침이 없었어라

검은 대륙의 미래를 위한 꿈, 이제 아름드리 나무로 자라
흰옷 입는 선교사들의 그늘이 되었니라, 안식이 되었니라
슈바이쳐 박사의 땀은 박물관으로 남았어도
조선에 뿌리 내린 로제타 홀의 길을 따라
그가 누빈 스물 두 나라에 우뚝 선 기념비들
곳곳에서 생명을 살리고, 더욱 풍성케 하느니라

하룻길도 더 되는 비행길 쉰여 차례, 벗이여 지치지도 않더이까?
그 땅 나들며 속으로, 속으로 몸에 새긴 예수의 흔적들,
예순 다섯은 아직 청춘인데, 임 그리는 마음 너무 뜨거워,
아내와 아이들 작별 인사도 없이 달려갔구나
남누리에, 북누리에, 아프리카 온 누리에, 마지막 길 베트남에
생명을 내어 준 바보 의사의 흩뿌린 사랑은 국경이 없어라


나 삼 진 / 예수시대 동인·아프리카미래재단 USA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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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은 원장님을 기리면서

 

이승구 교수

박상은 원장님의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에 우리가 모두 놀라고 있습니다. 이 소식은 특히 가깝게 여러 활동을 같이하던 우리에게는 일종의 트라우마입니다. 넋을 놓고 일손이 잘 안 잡히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가족들은 더 그럴 것 같아 무슨 말씀을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에서 배워 믿는 대로 박상은 선생님의 영혼은 지금 하나님께서 계신 그 ‘하늘’(heaven)에서 지극한 영광을 누리며 계심을 생각하면서 더구나 우리 주께서 다시 오실 때에는 박상은 선생님의 몸도 부활시키셔서 성경이 말하는 ‘신령한 몸’을 가질 것이니 주께서 다시 오실 그때 그리스도와 같은 모습으로 부활한 우리가 서로 얼싸안고 기쁨을 누릴 것을 믿고 지금 우리에게 있는 이 슬픔을 극복하려 합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그의 의(義)의 전가 없이는 모든 순간, 특히 이처럼 슬플 때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로 묶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때문에 우리는 이 슬픔 가운데서도 다시 일어나 박 선생님께서 남겨주신 여러 일들 더욱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 신앙과 소망에 근거해서 박상은 원장님에 대해 몇 가지 생각을 해보려 합니다.

 

첫째로, 박상은 원장님은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바나바 같은 분이셨습니다. 박상은 원장님께서는 여러 사람을 잘 엮으시는 독특한 능력이 있으셨는데 그런 점에서 바나바와 같으셨습니다. 박 원장님은 여러 사람을 연결해 놀라운 일을 하게 하실 수 있는 독특한 능력이 있는 분이셨습니다.
그래서인지 박 원장님을 기리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박 원장님이 아니었으면 엮이지 않았을 다양한 사람들이 박 원장님의 독특한 친화력으로 함께 일을 했습니다. 그 일 때문에 박 원장님은 늘 바쁘셨으나 그 덕에 우리 기독교회가 수없이 많은 일을 잘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을 엮는 일의 상당 부분을 박 원장님께서 하셨습니다.

 

둘째로, 박 원장님은 성경을 제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시고 실천하신 진정한 칼빈주의자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성경을 열심히 믿는 사람들이 사회 속에서 별로 활동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반면 사회적으로 열심히 활동하시는 분들은 성경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이런 이상한 한국교회 정황 속에서 성경을 제대로 공부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 속에서 활발히 활동해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쳐야 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신 박 원장님은 참으로 진정한 칼빈주의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정점은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제4기 위원장을 하신 일(2014.11.11∼2017.11.10)입니다. 박 원장님은 세상으로부터 대표적인 의료인으로 인정을 받고 이 직책을 수행하시면서 생명 헌장을 발표하는 등 이 땅에 진정한 생명의 가치를 드러내는 일을 잘 이루셨습니다.

 

셋째로, 그와 연관해서 박 원장님은 생명의 가치를 귀중히 여기며 그리스도인들뿐만 아니라, 이 땅의 많은 사람에게 생명의 진정한 가치를 잘 인식하게 하신 귀한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의 원천이심을 분명히 하면서 하나님 말씀의 빛에서 생명 문제에 접근하려고 애쓰셨습니다.
의료인 특히 기독교 의료인으로서의 마땅한 모습을 드러낸 것인데 단순히 그런 입장에서 진료만 하신 것이 아니고 수없이 많은 좋은 기관들에서 매우 활발한 활동을 하셔서 이제 과연 누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게 되려는지 안타까움이 많이 드는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박 원장님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는 것은 박 원장님께서 촌음을 아끼시면서 여러 활동을 많이 해주셨다는 방증입니다. 그 일 중의 마지막으로 하신 일이 합신에 생명윤리 전공의 석사 학위 과정을 만드시고 초석을 마련하신 일입니다. 부디 많은 학생이 계속해서 이 연구를 하며 같이 활동하며 좋겠습니다.

 

박 원장님은 그 어떤 명칭보다 ‘우리들의 누가’였다는 명칭을 가장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박 원장님은 이 명칭을 들을 수 있는 수많은 누가가 많아지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의사이고, 좋은 신앙인이 따로 나타나지 않고 이 땅에 진정한 기독교 의사들이 많아지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누가 박상은 원장님이 이제는 그 많은 사역을 그치시고 하나님 품에서 안식하시며 한없는 기쁨을 누리고 계심을 같이 즐거워하면서 우리도 그 뒤를 따라 각기 주어진 영역에서 주께서 주신 일에 힘쓰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이승구 /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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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상은 원장님을 생각하며

이명진 원장

박상은 원장님, 당신은 우리에게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살아오신 분이십니다. 여러 선교 현장에서 또 진료 현장에서 생명윤리 현장에서, 어느 장소 어느 때든지 낮이나 밤이나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박 원장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욕심도 없이 어두운 세상 비추어, 온전히 남을 위해 사신 분입니다. 일평생 이 땅에 빛과 소금 되어, 가난하고 지친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신 분입니다. 남들이 미처 돌아보지 못한 이웃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하시다 선교 현장에서 부르심 받으신, 축복받으신 분입니다.

당신은 ​예수님처럼 또 바울처럼 그렇게 살아오신 분입니다. 남을 위하여 온몸을 온전히 버리시며 베풀고 나누는 사랑을 기뻐하며 살아 오셨습니다.

주일 오후 믿기 어려운 소식을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주님의 갑작스러운 부르심에 놀라고 당황스러웠습니다.

이제 이분이 담당하셨던 그 많은 일들은 어떻게 하나? 누가 그 일을 대신 맡아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의지하고 따라가던 커다란 기둥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의료전문인으로서 신앙인으로서 박 원장님의 자리는 우리에게 너무나 크신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일들이 선하신 주님의 우리를 향한 선하신 계획 아래 있음을 믿고, 주님 앞에 엎드립니다.

에베소 장로들과 성도들이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예루살렘을 향하던 바울을 보낸 것처럼, 오늘 우리도 너무나 사랑하는 박 원장님을 주님의 품에 보내드립니다. 그 동안 주님이 사랑하시고 사용하시던 박 원장님의 영혼을 기쁘게 받아 주신 줄 믿습니다.

하지만 남은 저희들에게는 박 원장님을 주님 품에 떠나보낸 슬픔이 너무나 큽니다.

이제 남은 우리들이 박 원장님에게 맡기셨던 일들을 이어받아, 이 땅에서 선한 역사를 이어가겠습니다. 엘리야를 대신하여 엘리사에게 능력을 베푸신 것처럼, 남은 우리가 박 원장님의 빈자리를 메워갈 수 있도록 선한 성품과 갑절의 능력을 주시길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아버지와 남편을 먼저 하나님 품에 떠나보내는 가족들의 깊은 아픔을 돌아보시고, 주님이 준비하신 한량없는 위로와 은혜로 채워주시길 기도합니다.

이별의 시간이 너무나 아쉽고 슬프지만, 이 모든 일이 주님의 선하신 계획 아래 있음을 믿고 주님께 모든 영광과 감사를 드립니다.

이명진 원장/ 명이비인후과, 의사평론가,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직전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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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박상은 선생

이상규 교수

지난 11월 6일 저녁 생각지 못한 비보를 접하고 마음이 괴로웠다. 다름 아니라 안양 샘병원 박상은(朴相恩, 1958-2023) 원장이 베트남 다낭에서 단기 선교 기간 중인 5일 65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기 어려운 순간이었다.
그가 11월 2일부터 5박6일 일정으로 베트남 다낭을 방문했는데, 내가 그와 전화통화하고 문자로 통신한 날이 11월 1일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때는 이르지도 않고 늦지도 않다”는 말이 있지만 한창 일할 젊은 나이에, 그리고 그가 펼쳐놓은 여러 선한 일들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이었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때는 1982년이었다. 그가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부산으로 와 복음병원에서 수련의 과정을 시작했을 때 그해 3월부터 부산 초량의 삼일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그는 장기려(1911-1995) 박사의 신앙과 정신을 배우고자 서울의 병원을 마다하고 부산의 복음병원을 선택한 것이다.
그때 그는 부산의대 출신으로 삼일교회에 출석하던 양승봉 선생과 친구가 되어 삼일교회에 출석하게 된 것이다. 그 때 나는 삼일교회 대학부 담당 교역자였다. 이런 연유로 우리는 서로를 알게 되었고 박상은, 양승봉 두 분은 대학부 지도교사로 임명되어 대학부를 위해 같이 일하게 된 것이다. 뒤돌아보면 41년 전의 일이다.

그는 바쁜 일과 중에서도 대학생들의 선배로 성경공부, 상담 등으로 도왔고 때로는 특강으로 섬겨주었는데 그가 한 첫 특강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에베소서 1장을 본문으로 “한 생명의 가치”라는 제목의 강의였다.
베트남 전쟁에서 민간인 희생자들에게 보상금을 지불했는데 한 사람당 50불이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인간의 가치가 50불 밖에 안 되는가라고 물으면서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가치를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관점에서 성명했는데 매우 감동적이었다.

그 이후 교회 대학청년회가 주최하여 안락사, 낙태와 같은 윤리적인 문제에 대하여 세미나를 개최했을 때도 그는 늘 도움을 주었다. 신학적인 측면에서는 필자가, 의학적인 측면에서는 박상은 선생이, 법률적인 측면에서는 김신 판사가 담당했다. 김신 판사는 삼일교회 출신으로 후일 대법관이 되는데 그 때는 부산지법에 근무하고 있었다.

뒤돌아보면 양승봉, 박상은 두 의사는 절친한 친구이기도 했지만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자 선한 의사였다.
두 의사는 복음병원 병동에 ‘순회도서실’을 설치하고 병실을 방문하여 책을 읽게 하고 전도하고 환자들을 위로했다.
또 이 두 의사는 김상순, 이승도, 정현기 등 선배 의사와 더불어 부산의료선교훈련원을 설치하여 의료선교교육을 실시하였는데 이 사역은 오래 계속되었다. 나는 이 때 ‘의료선교의 역사’를 강의하게 되었는데, 이를 토대로 후일 ‘의료선교의 역사’라는 책을 출판하게 되었다.

외과학을 전공했던 양승봉 의사는 모든 특혜를 거부하고 선교사가 되어 네팔과 베트남에서 일생을 헌신했고, 진실된 크리스찬 의료선교사로 일생을 살았다.
박상은 선생은 복음병원에서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이수하고 군의관으로 3년간 일한 후 다시 복음병원으로 돌아와 고신의대 내과학 교수이자 복음병원 의사로 1992년까지 일하고 부산을 떠났다. 박상은 선생은 고신대학교에서 의학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그가 고신의대에서의 박사학위를 수득한 첫 의사였다고 한다.

고신의대를 떠난 그는 후에 미국 센트 루이스의 커버넌트 신학교로 가서 신학을 공부하는 등 기독교, 기독교 신학, 기독교 세계관을 확립하고자 노력했다.

그 후에도 기독교 의료 혹은 선교모임에서 공사석에서 박상은 선생을 만났는데, 그는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의료인이 되었고 교회와 복음을 위해 헌신했다.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소장을 거쳐 대통령소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장을 역임하였고, 안양 샘병원을 명실상부한 선교적 병원으로 육성했고 미션원장으로 일했다. 그런가하면 (사)아프리카미래재단 대표, 한국생명윤리학회 고문, 행동하는 프로라이프 공동대표, 국제보건의료학회장을 역임했다. 또 사단법인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 부회장, 한국 말라리아퇴치연대(KEMA) 대표이기도 했다. 최근에는 선교유적지를 개발하고 순례하는 ‘사단법인 한국 순례길’ 이사장으로 일하면서 필자를 정책자문위원으로 추대해 주었다.

그는 인간미가 넘치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이었고 약한자의 이웃이었고, 선한 의사였다. 교회에서는 충직한 장로였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환자들 곁에 있어줄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하던 박상은 선생은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최근 나는 그와 내년 9월 인천에서 개최될 제4차 로잔대회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었다. 이것이 마지막 통화였다(10.28). 이번에 ‘차별금지법 바로알기 아카데미’가 주최하여 “2024 국제로잔 4차대회의 한국개최에 즈음하여 국제로잔의 총체적선교 운동과 차별금지법에 관한 침묵에 대한 한국교회의 복음적 대응 세미나”를 개최하게 되었는데, 주최측에서 격려사를 청하기에 간단하게 써 주었는데, 이 일에 대하여 의견을 나눈 것이다.
11월 1일, 그는 이런 문자를 보내주었다.
“교수님. 늘 순수한 마음으로 애써주셔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연합운동이 늘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서로 좀 입장이 다르고 이견이 있더라도 큰 틀에서 연합과 협력을 이루면 좋겠습니다. 늘 감사드립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감사합니다. 담에 만날 때 이야기합시다. 감사하고요.”
이것이 마지막 문자가 될 것을 알았더라면 더 따뜻한 사랑과 우의를 나누었을텐데. 유한한 인간이 어찌 무한하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으리오(Finitum Non Capax Infiniti, 롬 9:19-23, 11:33).

이상규 / 고신대학교 명예교수, 백석대학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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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박상은 원장님을 추모하며

김승주 목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친히 한 세대를 대표할 괄목할만한 인물들을 세워 가셨습니다. 저는 박상은 원장님이 그런 분이시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종합병원 경영자로, 대학교수로, 선교 전문가로, 국가기관의 장으로...

특히 기독교가 이렇게 수모를 당하며 날로 높아지는 시련의 파고를 맞고 있을 때, 그 물결을 맨몸으로 막으며 “아니야! 예수님은 절대 그런 분이 아니야!”를 외치던 분이셨습니다.

제가 원장님을 처음 만났을 때는 20여 년 전. 이제 막 호스피스 제도화를 위한 논의가 시동을 걸기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종로 ‘기독교 100주년 기념회관’에서의 구수회의를 마치고 개인 인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목사님! ‘호스피스 병동 24시’를 출간하셨군요.”라며 축하 인사를 해 주셨습니다. 첫 인상은 ‘소년같이 수줍은 웃음을 가지셨구나!’ 했는데 그 웃음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후 호스피스 관련 각종 세미나 현장에서도 틈틈이 만날 수 있었고, 제가 이사장으로 섬기던 한국호스피스협회 세미나 강사로 초청하기도 하는 등 저와의 교제는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코로나 이후. 급변하는 안팎의 상황을 설명하고 ‘허브 사역’으로의 전환과 동역을 제안하였을 때 흔쾌히 저의 손을 잡아 주셨습니다.

원장님과의 공식적인 동역기간은 비록 짧았지만, 유튜브 아카데미 강사를 비롯하여 많은 에피소드를 남겼습니다. ‘예심아카데미’(4기) 녹화를 마쳤지만, ‘안호선’(49기) 교육생들을 직접 만나고 싶어 하셨습니다. ‘생명윤리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써 해박한 지식과 최신 정보를 알려 주셔서 수강생들은 “방대한 영역이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되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우리 안호선 식구들과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셈이 되었습니다.

영상교육 자료를 ‘안호선’과 MOU관계인 미국 뉴저지 ‘필그림교회’(네이버 플러스 호스피스) 강의 자료로 제공할 것을 건의했을 때 역시 흔쾌히 허락하셔서 그곳에서도 교육 자료를 공유하기도 하였습니다.

원장님은 참 따뜻하고도 겸손하신 분이셨습니다. 따지자면 우리 사회 최상위 클래스에 속하신 분입니다만 그 분에게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어떤 위압적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 분이었습니다. 마치 이물 없는 친구처럼! ‘성공은 목적이 아닌 수단이다’는 것을 육필로 보여 주시던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상교육 녹화를 마치고 마침 로뎀나무 유기농으로 재배한 풋고추와 유정란을 조금 드렸을 때, 많이 기뻐하시더니 귀가 후에도 카톡으로 감사 인사를 다시 보내 주실 정도로 소박하신 분이셨습니다.

원장님은 아무리 열악한 기관의 요청이라도 거절하는 일이 없다고 들었고, 열악한 기관에는 오히려 후원금을 놓고 오시는 분으로 유명한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저희와는 사역지는 달랐어도 안호선에 대하여 매우 호의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호스피스 환우를 위한 성탄키트를 전달하는 자리에서 샘병원 직원들 앞에서 그 동안 지켜 본 ‘안호선에 대하여’ 듣기 민망할 정도로 과분한 칭찬을 해 주시기도 하였습니다.

안호선이 그 분과 동역을 시작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샘병원 원목 출신 ‘독일호스피스’ 박희명 선교사님은 “좋은 분들끼리 함께 모여 귀한 사역을 만들어 가시니 좋은 일들이 가득하리라 믿습니다”하며 기뻐하기도 하였습니다.

떠나시는 날에도 카톡으로 마침 도착한 남천병원 사회복지사님의 ‘안호선’ 기고글을 보냈는데 클릭이 늦어서 이상하다고 생각 중이었습니다. 원장님은 평소 그 바쁘신 가운데서도 카톡은 빠르게 확인하곤 하여 시간을 쪼개어 사시는 분이라고 생각하던 차였기에 궁금하기도 하였는데 그 사이에 그런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습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로뎀나무 활성화 방안에 대하여 구체적 논의를 건의해 놓은 상태였기에 그것만큼은 아쉬움으로 남기도 합니다.

원장님 나이 65세! 아직은 한참을 열정적이셔야 할 나이신데 우리 앞에서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소식을 접한 많은 이들이 울고 있다고 했습니다.

원장님은 ‘안호선’ 기고(강의)에서 자신이 지켜 본 죽음은 ‘준비된 죽음’과 ‘준비되지 않은 죽음’이 있었다고 하셨는데 이런 글(강의)는 자신이 준비되지 않은 사람은 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있었기에 남은 시간을 금쪽같이 쪼개어 살면서 늘 준비된 상태를 유지하던 중. 부르심을 받으신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저에게도 많은 도전을 주시던 분입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일을 하자면 얼마든지 더 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훌쩍 떠나신 것은 아직 남아있는 일들은 우리가 하도록 남겨 놓고 가신 것이라고!’

원장님! 원장님은 젊은 시절에는 장기려 박사님을 흠모했었다고 하셨습니다. 코드와 대화가 통하는 동역자로 만나게 된 것이 저희들에게는 축복이었습니다. 인간적 아픔과 아쉬움이야 말로 할 수 없지만, 우리에게는 주 안에서의 재회가 약속되어 있다는 것을 재 확인하면서 오늘의 슬픔을 참아 내려고 합니다. 그간 많이 고마웠습니다. 원장님!

김승주 목사, 안양호스피스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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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독의료계의 가장 중요한 지도자 잃었다”
교계 인사들 추모 메시지 이어져

박상은(샘물교회 장로) 효산의료재단 안양샘병원 미션원장의 갑작스러운 부고에 많은 교계 인사들이 추모의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생전 고인이 의료선교에 보여준 사랑을 기리면서 그의 빈자리를 그리워했다. 베트남 현지에서 먼저 치러진 소박한 장례 모습도 큰 울림을 줬다.

7일 페이스북 등 SNS에는 박 원장의 소천을 애도하는 글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국제 WIN선교회 한국대표등을 지낸 이광호 실로암교회 목사는 “35년 전 몇몇 형제들 모여 ‘예수시대’ 열어가자며 뭉친 것 엊그제 같다”며 “환자를 위한 신실한 의사 온 세계 오지 향한 봉사자 학생을 가르쳐 지도하는 교수이자 교회를 위한 겸손한 직분자이며, 주님 맡기신 분량대로 이 땅의 임무 잘 마치고 먼저 간 친구 안타깝지만 부러운 마음 들기도 한다”고 썼다. 이어 “그곳에는 아픈 이 없고 고통당하는 이 없고 불필요한 욕망 없는 곳, 하나님의 영광 가득한 곳”이라며 “뒤에 남아야 할 우리도 힘 다해 장렬히 싸우다가 그의 뒤를 따르리다”고 했다.

이훈상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Life as mission’이라는 생전 고인의 말을 언급하면서 “당신이 말한 그대로의 삶을 살아갔던 삶, 그것이 박상은 원장님의 삶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북한 보건과 글로벌 보건, 의료윤리에 있어서 평생의 노력을 기울여 오셨던 박상은 원장님께서 소천을 하셨다. 믿기지가 않는 소식에 참으로 마음이 슬프고 안타깝다”고도 했다.

조성돈 목회사회학연구소 소장은 “박상은 원장님은 신앙인으로 참 치열하게 사셨다”며 “특히 안양샘병원 미션원장으로 세계를 누비며 의료선교를 펼치셨고, 한국사회에서 생명윤리에 있어서 중심적인 역할도 감당하셨다”고 했다. 이어 “정말 사역 가운데 돌아가셨다. 정말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이 크다. 하늘의 면류관은 크지만, 그의 연수가 아쉽고, 더 할 일이 있으신데 더욱 안타깝다”고 했다.

에스와티니 기독의과대학 양승훈 총장은 “매주 토요일 아침에 기독의사회 기도 모임에서 박상은 원장님을 줌으로 만나는데 (소천 전날인) 어제도 기독의사회 줌 기도회에서 (박 원장을)만났다. 건강하시고 활동적으로 사역하시던 분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니 너무 황망하다”며 “한국 기독 의료계의 가장 중요한 지도자를 잃었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나 귀하고 겸손하면서도 열정적이었던 분이셨다”고 했다. 양 총장은 박 원장이 생전 많은 사역에서 중심적 역할을 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박 원장님이 하시던 사역이 너무나 많아서 누가 그 뒤를 이을 수 있을까 염려된다. 좋은 후임 지도자들이 세워질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김성은 안양샘병원 원목실장은 6일(현지시간) 베트남에서 치러진 장례 모습을 공개하며 박 원장을 애도했다. 갑작스러운 부고에 박 원장의 아내 등 몇 명 가족만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실장은 “이번 선교팀에 사정상 함께 하지 못하고 단기팀 출발할 때에 잘 다녀오시라고 인사하며 나눈 악수, 그 악수가 마지막 인사가 됐다”며 “마지막에 주어진 황금색 작은 관 하나. 슬픔에 잠긴 몇몇 가족과 소수의 조문객. 그렇게 많은 관계 속에서 열정적으로 일하신 생전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참 초라한 모습이지만 그러나 최선을 다해 사신 그 열매는 앞으로 한국과 아프리카와 세계에서 일어나리라 믿는다”고 했다. 이어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는 요한복음 말씀을 공유하며 해외 선교지에서 한 알의 밀알이 된 박 원장의 삶을 묵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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