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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시대 동인 소식

멍상 팔복 해설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4.08.19|조회수44 목록 댓글 0

멍상 팔복 해설

송길원 / 예수시대 동인, 청란교회 목사, 하이패밀리 대표

1. 생각을 멈출 줄 아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의 뇌(腦)가 쉼을 얻을 것이요.

자녀들의 뇌가 해킹당하고 있다.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가 는다. 노년 치매뿐 아니라 청년치매가 심각하다. 똑똑한 뇌가 필요하다. 멍청한 뇌를 천 개를 가진들 무슨 소용이 있나?
히브리어로 ‘안식’의 어원은 ‘멈춤’이다. 성서의 안식일은 이렛날에 일을 멈추고 지난 엿새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함께 지내는 다른 사람과 이웃은 어떤지 살피고 돌보는 때다. 안식일은 창조주의 리듬에 따라 나의 삶의 리듬을 조율하는 시간이다.

백무산 시인은 멈춤을 이렇게 노래한다.

“기차를 세우는 힘, 그 힘으로 기차는 달린다
시간을 멈추는 힘, 그 힘으로 우리는 미래로 간다
무엇을 하지 않을 자유, 그로 인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안다
무엇이 되지 않을 자유, 그 힘으로 나는 내가 된다
세상을 멈추는 힘, 그 힘으로 우리는 달린다
정지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달리는 이유를 안다
씨앗처럼 정지하라, 꽃은 멈춤의 힘으로 피어난다”(‘정지의 힘’ 전문)

※ 디지털 노마드의 심볼인 정은상교장(맥아더 스쿨)이 자신의 AI비서인 정챗봇실장에게 지시했다. “청바지를 입은 캐쥬얼한 스타일로 산상수훈을 전하는 예수님 모습을 그려보라”고. 작업은 추가되었다. “킥보드를 타고 다닐 만큼 바쁘셨던 예수님”과 “멈춤”을 그려보라고.
앞으로 소개될 그림은 죄다 정교장님과 정챗봇의 공동작업이다.


2. 침묵할 줄 아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가 고요를 맛볼 것이요.

침묵은 단순한 소음의 부재가 아니다. 조용함도 아니다. ‘떠나다’, ‘(그동안 붙들고 있던 것들을)떠나 보낸다’라는 뜻이 있다. 떠나보낸 후, 하나님의 임재를 초청한다. ‘고요함’이다. 고요는 천재성을 발굴해 내는 싱크 탱크다. 영혼을 맑게 하는 제련소다. 거기 신(神)의 성품인 거룩과의 만남이 있다.

※ 욥은 자신의 손을 입 위에 가져가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욥 40:4). 정은상교장이 챗실장에게 주님의 ‘멍 포즈’를 그리라 했더니 그려낸 작품이다.
한국의 최대 문화 수출품 중의 하나가 ‘Korean Heart’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까지 따라 한다. 엄지와 집게손가락을 교차시켜 표현하는 손가락 하트는 세계적 히트 몸짓이 됐다. 다음 차례는? ‘멍하니 포즈’가 아니고 무엇인가?
나는 언젠가 멍 포즈가 세상을 뒤덮을 날을 그려본다.

3. 시시때때로 자신만의 골방을 찾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가 평안을 얻을 것이요.

클라이브 S. 루이스는 지옥을 ‘소음 왕국’이라 말한다. 소음공해가 심각하다. 핸드폰의 알람소리에서 부터 온갖 시각·청각 정보들에 노출되어 무방비 상태다. 신경생물학자 니나 크라우스에 따르면 (어린이의) 뇌가 어떤 소리에 둘러싸여 있는가는 영양 공급처럼 중요하다고 했다.
공간심리학도 매우 중요해졌다. 에스파냐어로 ‘케렌시아(querencia)’란 말이 있다. ‘투우 경기장에서 소가 잠시 쉬면서 숨을 고르는 장소’라는 뜻이었다. 이후, 자신만의 피난처 또는 안식처를 이르는 말로 널리 쓰인다. 오롯이 나를 위한 장소다. 예수님도 사람들을 피해 조용한 곳을 찾았다.(막 14:23)

함석헌 선생은 묻는다.
“그대는 골방을 가졌는가? 이 세상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이 세상의 냄새가 들어오지 않는, 은밀한 골방을 가졌는가? (…) 그대 맘의 대문 은밀히 닫고, 세상 소리와 냄새 다 끊어버린 후, 맑은 등잔 하나 가만히 밝혀만 놓으면, 극진하신 임의 꿈같은 속삭임을 들을 수 있네.”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는 말한다. “선생에게 고독과 침묵은 들리지 않던 소리. 신과 진리의 꿈같은 소리를 듣게 해주는 소중한 공간이었다. 그 소리는 내면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 궁금해졌다. 쳇실장도 멍상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까? 정은상교장은 답을 알겠지. ㅋㅋㅋ

4. 스마트폰을 잠재울 줄 아는 이는 복이 있나니 비로소 저가 참된 자유인이 됨이러라.

우리는 하루 평균 221번, 매일 평균 3시간 15분, 1년에 약 1,200시간 동안 스마트폰을 확인한다.
요즘 가장 무서운 중독은 ‘스마트폰 중독’이다. 이른바 스몸비(smombi) 족(族)의 출현이다. 스마트폰(smartphone)과 좀비(zombi)의 합성어다. 고대 로마법정, 잡혀서 감금된 노예나 주인에게 넘겨진 사람을 ‘중독자’라고 했다. 중독(addiction)의 어원은 ‘addicene’이다. ‘양도하거나 굴복하는 것’이란 의미다.
성경은 이른다.
“복잡한 일상에서 한 발 물러서라!(너희는 잠깐 손을 멈추고-새번역) 지극히 높은 너희 하나님을 사랑의 눈길로 바라보아라. 나는 정치보다 중요하고 세상 모든 것(스마트폰)보다 귀하다.”(시 46:10, 메시지)
그때 우리 모두는 자유인의 지위를 회복할 수 있다.

※ 정은상교장님의 작업 지시를 받은 챗실장의 솜씨가 훨씬 좋아진 듯하다.

5. 여유(餘裕)와 여백(餘白)을 찾는 이는 복이 있나니 저가 백 세 시대의 주인공들이 되리라.

멍하니는 ‘바쁘다 바빠’를 입에 달고 살며 끝없는 일에 치여 늘 쫓기는 삶을 사는 이들을 위한 ‘일상의 쉼표’다.
장석주 시인의 시가 딱이다.

땅거미 내릴 무렵 광대한 저수지 건너편 외딴
함석 지붕 집
굴뚝에서 빠져나온 연기가
흩어진다

단순하고,
느리게,
고요히,

오, 저것이야!
아직 내가 살아 보지 못한 느림!-‘단순하고 느리게 고요히’ 전문

그리고 자신의 삶의 한 자락을 이렇게 내비쳤다.
“주말에 안성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기도 하는데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게 아니라 그 앞에서 참선한다고 생각해요. 그냥 ‘멍하니’ 앉아 있는 거지요. 시선은 앞에 두고 무아지경으로 다른 생각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은 바쁜데 내일은 더 바쁘다. 늘 무엇엔가 쫓긴다. 늘 성과에 마음을 쏟고 살아야 한다. 직업도 두 개다. 일도 동시다발로 처리해야 능력자가 된다. 철학자 한병철교수는 이를 ‘과잉주의(hyperattention)’라 지적했다.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김재홍교수가 팁을 준다. “시간에 쫓기지 않기 위해서 한가로이 거닐기, 조용히 듣기, 고급스러운 권태, 마음껏 꿈꾸기, 고요히 기다리기, 내 마음의 시골 고향 찾아가기, 좋은 글쓰기, 포도주 한 잔에 지혜를 떠올리기 등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 얼마나 바빴던지 ‘머리 둘 곳도’ 없다고 했던 주님도 자주 ‘한적한’ 장소를 찾았다. 그것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가 아닌 나 홀로!

6. 잠멍에 빠져드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가 웰빙의 삶을 살아낼 것이라.

나는 잠들고 그분은 일하신다. 이 얼마나 놀라운 메시지인가? 수면 장애는 면역체계를 망가뜨린다. 심혈관 질환을 유발한다. 만성피로, 자동차 사고, 직장 생활의 실패.... 잠도 실력이다. 여호와께서 사랑하는 자들에게 잠을 달게 주신다. 예수는 파도가 일렁거리는 고물에서도 잠멍에 빠져들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말한다. ‘잠의 세계는 우리가 탐험해야 할 신대륙’으로 ‘캐내서 쓸 수 있는 소중한 보물이 가득 들어 있는 평행세계’라고.

내일은 ‘잠들 때보다 더 멋지고 아름다운 나’로 탄생할 것이다.

※ 웰빙은 하루하루를 기뻐하며(to rejoice), 선을 행하고(to do good), 잘 먹고(eat), 잘 마시고(drink), 낙을 누리는(enjoy)데서 오는 ‘참살이’다. 챗실장이 훔쳐 본 정은상교장의 삶의 요약만 같다.

7. ‘멍하니(honey)’가 일상의 리추얼이 된 자들은 복이 있나니 저들이 존귀한 자로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옛 이집트 파라오들은 새벽이면, 신전에 들어가 의례를 갖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신으로부터 사명을 부여받고 힘을 얻었다. 군주들은 새벽에 자신을 혁명하였다. 한 인간으로서 존엄을 자각하고 살아가는 사명을 되새기며 힘을 얻고 새로운 혁명을 도모하는 시간을 새벽마다 오롯이 가졌다.”-신영길의《기억의 숲을 거닐다》중에서

리추얼은 일상에 성스러움을 부여하는 행위, 세속에서의 영성 탐구, 일상 속의 수행이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에 달려 있다. 습관은 결코 늙는 법이 없다. 멍하니는 성공과 행복을 쌍끌이 하는 여덟 번째 습관과 같다. 리추얼이 곧 그 사람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의 황제였다. 그는 바쁜 일과에 휘둘리지 않았다.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일상의 ‘작전타임’을 가졌다. 홀로 생각하며 자기가 제대로 판단하고 처신하는지 스스로 되물었다는 뜻이다. 그 사색의 결과를 담은 책이 ‘명상록’이다.

“땅에 사는 성도들에 관해 말하라면 ‘성도들은 존귀한 사람들이요. 나의 기쁨이다’ 하겠습니다”(시 16:3, 새번역).

8. 멍상의 ‘멍하니(honey)’로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꼬리에 꼬리를 무는 ‘멍’으로 행복자가 됨이러라.

하늘멍, 구름멍, 무덤멍.... 자신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사치는 세계 일주가 아니다. 먹방도 아니다. 온갖 멍들로 자신에게 행복을 선포하는 일이다.
‘행복’을 뜻하는 라틴어 ‘베아티투도’(beatitúdo)는 지복(至福), 진복(眞福), 영복(永福)에 가깝다. 영어의 happiness보다 bliss에 해당된다. ‘복되게 하다, 행복하게 하다’라는 의미의 ‘베오’라는 동사와 ‘태도나 자세, 마음가짐’을 의미하는 ‘아티투도’라는 명사의 합성어다.
따라서 ‘베아티투도’라는 말은 ‘태도나 마음가짐에 따라 복을 가져올 수 있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성경은 이른다. “온갖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은사는 위에서, 곧 빛들을 지으신 아버지께로 부터 내려옵니다. 아버지께는 이러저러한 변함이나 회전하는 그림자가 없으십니다.”(약1:17, 새번역)

※ 사진설명: 제자들과 함께 하는 주님의 멍 honey
그동안 챗실장과 함께 수고해 주신 정은상교장님께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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