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가까이 계신 주님
예수님을 죽고 난 다음에 만날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일입니다.
지금 주님과 친밀히 동행하는 것과 하나님의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사는 것 사이에는 종이 한 장의 차이도 없습니다.
우리가 실제로 얼마나 주님과 가까이 살고 있는지 알고나면 소스라치게 놀랄 것입니다.
5분 정도만 숨을 쉬지 않으면 우리는 곧바로 주님과 영원히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주님과 영원히 함께 사는 것이 얼마나 가까운 일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인데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이미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을 때 우리 안에 들어온 것은 새 생명이고 그리스도 자신이십니다.
우리는 심장 이식을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심장, 곧 새 생명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복음 전도자 무디(1837~1899)가 어느 날 정부 고관의 장례식 설교를 부탁받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가장 은혜로운 장례식 설교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예수님께서는 장례식 설교를 어떻게 하셨는가?’를 찾아보기로 하고 4복음서는 물론 성경전체를 뒤졌으나 헛수고였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합니다.
‘예수님께서 가셨던 장례식은 모두 뒤집어졌다.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의 장례 행렬이 찬양의 행렬이 되고,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위한 통곡이 놀라움과 기쁨의 감격으로 변하며, 죽은 지 4일이 지나 썩어가던 나사로가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살아나왔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죽음이 떠나가고 생명이 돌아왔다.’
장미에게 꽃을 피라고 말을 하지 않아도 꽃을 피우고, 강아지에게 짖으라고 말하지 않아도 짖어대며, 독수리에게 날아라고 말하지 않아도 하늘 높이 비상하여 날아 오릅니다.
어떤 생명이 어떤 것을 살아 낸다는 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이처럼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우리 안에 있습니다 (눅 17:21)
세상이라는 작은 컵이 하나님의 나라라는 바다 속에 잠겨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나라 안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이들에게 하나님은 결코 막연하신 분도, 멀리 계신 분도 아닙니다.
생각보다 너무나 가까이 계십니다.
매일 매 순간 하나님과 친밀히 동행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살전 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