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은 살아내어야 능력이 된다
번지점프 할 때, 간단한 안전교육을 받습니다.
초등학생도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입니다.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교육을 받았다고 누구나 점프대에서 뛰어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수류탄은 쇠로 만듭니다.
그걸 힘껏 던지면 맞는 사람은 무지하게 아플 겁니다.
그러나 안전핀 뽑아서 던지면, 수많은 사람이 죽게 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십자가 복음을 아는 것을 실제로 복음으로 살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십자가 복음은 알아서 능력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살아내어야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에는 세가지 고리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십자가 복음을 듣고 믿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 복음을 누리며 사는 삶입니다.
셋째는 복음을 전하는 사명입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둘째 고리가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정확한 복음을 전하는데도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복음의 두 번째 고리의 핵심은 임마누엘이신 주 예수님과 연합입니다.
그래서 24 시간 주님을 바라보며 살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이것이 분명해지면, 주님께서 그를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전도대상자에게 사영리를 읽어 줄 타이밍만 찾지 말고, 복음으로 살기를 힘써야 합니다.
예수님이 왕이시라 고백하는 것과 실제로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사는 것은 다릅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은
‘죽음을 선고받은 말기 암 환자의 심정으로’
‘전쟁 포로가 된 심정으로’
‘가진 것 하나 없는 노숙자의 심정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죽음을 선고받은 말기 암 환자’에게는 남은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니 미래도 계획도 없습니다. 오직 하루 하루 허락된 시간을 살 뿐입니다.
이런 심정으로 예수님과 동행하는 자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사는 자입니다.
‘전쟁 포로’에게는 자유가 없습니다.
시키는대로 하라는 대로 할 뿐입니다.
이런 심정으로 주님이 하라는 대로 하고 주님이 가시는데로 따라 가는 자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사는 자입니다.
‘노숙자’는 가진 것이 없습니다.
이처럼 자기 소유는 하나 없다고 여기는 자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사는 자입니다.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주님께서 맡겨주신 것들이고 다 주님께서 마음대로 쓰실 것들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 예수님의 왕되심입니다.
그러나 누가 그런 마음으로 살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으로 사는 자는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죽었는데 말기 암 환자이든 전쟁 포로이든 노숙인이든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구할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직 감사할 뿐이고 사랑할 뿐이고 충성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