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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안에 답이 있다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04.07|조회수34 목록 댓글 0

예수님 안에 답이 있다

얼마 전 한 선교단체의 선교사 후보자 합숙훈련에서 말씀을 전하였는데, 한 전도사님이 상담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는 선교사로 지망할 정도로 충성스럽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형제였지만 은밀한 죄, 음란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자신이 그런 모습에 너무나 좌절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이런 은밀한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를 물어왔습니다,

얼마 전에 신대원 다니는 한 전도사로부터 같은 상담을 받았습니다.
도무지 은밀한 죄의 유혹을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너무 이중적인 것 같고 가증하여 신대원을 그만 둘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여러 가지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하고 있는 한 청년은 고백하기를 자기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자아를 죽이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자아가 죽으면 성령께서 역사하실 것을 믿지만 자아가 도무지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위의 경우 문제의 핵심은 하나입니다.
예수님 안에 답이 있다는 것입니다.
함께 하신다는 예수님이 믿어지지 않기에 죄를 이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죄의 유혹이 커서 죄를 이기기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만 옆에 있어도 죄 짓기가 더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바라보면 은밀한 죄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육신의 본성이 바뀐 것이 아닙니다.
육신의 본성은 언제나 죄 그 자체입니다.
죄의 유혹도 언제나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바라보면 죄는 더 이상 이기지 못하는 유혹일 수 없습니다.

자아가 죽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니 자아를 죽이려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게 되면 자아의 죽음은 저절로 됩니다.

화내지 않으려 하지 말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화가 다스려집니다.
“기도하라!” 어렵지 않습니다. 예수님 바라보면 기도가 됩니다.
“전도하라, 헌신하라, 기뻐하라, 원수도 용서하고 사랑하라” 이런 명령이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바라보지 못하니 불가능한 것입니다.

흔히 “말할 수 없는 이 죄인”이라고 말하지만 정말 그렇게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바라보게 되면 진심으로 그렇게 고백이 됩니다,
흔히 “예수 믿고 살기 어렵다!” 는 말을 합니다,
결심한 대로 살아지지 않고, 은밀한 죄 끊어지지 않고,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에 좌절감만 더 해질 뿐입니다.

세상 없는 설교를 들어도, 통곡하고 회개해도, 뜨거운 성령체험이 있어도 안됩니다.
안되는 이유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아직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까닭입니다,

기독교는 도를 닦는 종교가 아닙니다.
‘사랑하라’, ‘용서하라’, 저절로 됩니다.
기쁨, 감사, 사랑으로 살게 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게 되면 그렇게 됩니다.

존 웨슬리가 임종을 맞아 죽기 직전에 팔을 높이 들고 승리의 기쁨이 넘치는 목소리로 마지막 했던 말...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 안에 모든 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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