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다음 날’이 중요하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이 율법주의적인 종교 생활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열심은 있고 똑똑한데, 주님 앞에서의 겸손함도 주님을 닮은 사랑도 없는 것입니다.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 삶이 너무나 다릅니다.
그런데 이것을 스스로 깨닫기 힘듭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마음을 열고 들어야 합니다.
그 사람에게 그렇게 보인다면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셨음을 믿습니다.
엄청난 신앙이면서 동시에 대단히 위험한 일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기 때문에 기독교는 유일한 진리의 종교이든지,
거대한 사기꾼 집단이든지 둘 중 하나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활절과 성탄절은 세상의 반응이 다릅니다.
성탄절은 세상이 함께 기뻐해 주지만, 부활절은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부활에 대한 믿음도 그저 종교적 신조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부활 신앙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을 찾기 힘듭니다.
부활 신앙은 단지 예수님이 부활하셨음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부활의 주님이 계십니다”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활의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부활 신앙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진정 부활절 예배를 잘 드렸는지는 부활절 예배 때, 부활 찬송을 부르고 부활 설교를 듣는 것만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부활절 ‘다음 날’ 알 수 있습니다.
부활 절 ‘다음 날’ 예전과 변함이 없고 낙심하고 무너지고 메마르다면 부활 신앙이 없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중요합니다.
진정 부활의 주님 앞에 가난한 심령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동안 회개를 주제로 한 연합 집회가 많이 열렸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잠잠합니다.
회개 집회는 거창했습니다. 감동적인 퍼포먼스도 있었습니다.
그런 문제는 그 집회 ‘다음 날’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진정한 회개가 없는 회개 집회였던 것입니다.
올해 부활절 예배는 활기가 넘쳤습니다.
교회마다 교인들이 많이 모였다고 들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처음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교회에 나온 교인들이 많았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부활절 예배에 얼마나 많은 교인이 모였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부활절 ‘다음 날’, 부활의 능력으로 이전과 다른 삶을 산 교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만이 부활의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