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했던 천사
지난 주간 열렸던 연회 별세 회원 추모예배에서 설교하신 목사님께서 하신 말이 마음에 남습니다.
“천사가 우리와 함께 있을 때는 그가 천사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가 곁을 떠났을 때 비로서, 천사가 함께 있었음을 알게 된다”
주위 사람들을 귀하게 여겨야 하겠습니다.
그가 나에게 다가온 천사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사모님이 교통사고가 나서 자신은 병원에 입원하고 딸은 그만 하늘나라에 갔습니다.
그 사모님께서 신학교 동기 게시판에 글을 올렸습니다.
[어제는 왜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지 못했을까?
당연한 일이라고 여기며, 살아있어도 깨어있지 못하고 그저 세월의 흐름을 넋 놓고 지켜보고만 있었지.
내 딸 아이를 보내면서, 이제 다시 볼 수 없음을 받아들이면서, 올 수는 없지만 갈 수 있는 그 나라에 대한 소망으로 대신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다.
이제는 정말 살아있음을 감사한다.
막막한 절망 가운데 기도할 수 있도록 허락하심을 감사한다.
내 딸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왔지만 하나님의 천사였음을 이제사 깨닫는다.
나의 아픔을 위로하고 힘을 주고, 기도로 함께한 동기들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이제는 아픈 이의 위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남은 시간, 정말 할 일이 많이 있구나.]
딸이 교통사고로 죽는 아픔을 당했는데 오히려 하늘의 소망을 분명히 주셨다고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하며, 다른 사람을 기도할 수 있고 위로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모님에게 마음으로 존경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 글을 읽고 토론토에서 목회하고 있는 한 동기 목사님께서 글을 올렸습니다.
이 목사님도 오래전에 사랑하는 딸을 먼저 천국에 보낸 친구입니다.
[너의 글을 읽고 나의 마음이 왜 이리도 찢기웠던지.
남몰래 흐르는 너의 눈물이 나의 심장 속에 고인 듯하였다.
나에게도 그 일이 있고 난 뒤 일년 반 뒤 쯤인 듯하다.
새벽기도회 시간에 갑자기 죽은 딸이 생각나서 한없이 울어 보았다.
그날은 종일 울었고 그 주간은 매일 울었었다.
그날 하나님은 나에게 이렇게 물으셨단다.
"승호야 괴롭지. 잊혀지지 않지"
"네, 하나님."
"이제 내 마음을 알겠니?"
"무슨 뜻입니까 주님?"
"나도 십자가에서 나의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단다."]
지나고 나면 사랑하지 못했던 것이 가장 후회가 되고 괴로운 일입니다.
어느 분이 고백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고 두 사람을 얻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아버지입니다.
저는 항상 아버지가 무섭고 싫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사랑한 후, 어느 순간에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사라졌습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아내입니다.
저와 아내는 여섯 살 나이 차가 있습니다.
나이 차이로 인하여 자꾸 갈등이 생기니까 아내가 미워졌습니다.
그때 깨달은 것은 사랑하다 미워지면 그냥 미운 것보다 더 밉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내가 예뻐보이게 해달라고 6개월 동안 기도했습니다.
그런 후에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계속 기도하다가는 하나님보다 더 좋아하게 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미운 사람도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사랑을 구하면 그 영혼을 아름답게 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모든 것을 완전히 이루는 서로 사랑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가까이에 두신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고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가시같은 사람 조차 하나님께서 보내준 천사라고 믿어야 합니다.
그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나 사랑해 봐라!” 입니다.
가시 사명도 어려운 사명입니다.
그러니 만날 때 마다 “수고 많으십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해 할 일입니다.
그 사람 조차 사랑하게 되면 품지 못할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