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갈망하는 영적 대각성
존 웨슬리는 1738. 5. 24일 그의 나이 35세 때 회심의 체험을 했습니다.
그런데 존 웨슬리는 회심하기 전 오늘날 우리들 보다 훨씬 경건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3대째 청교도적인 신앙을 이어가는 목회자의 아들로 태어나 소년시절 부터 매일 1-2시간 씩 성경을 읽고 속사람의 성결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주일을 엄숙히 지키며, 말이나 행실에 단 한번이라도 실수가 있을까 하여 언제나 조심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공부를 할 때도 Holy Club의 리더로 경건한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 속에 진정한 평화가 없었고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Aldersgate에서 회심을 체험하고 종의 믿음에서 아들의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모르긴 해도 당시 영국에서 가장 경건했던 사람을 꼽으라면 존 웨슬리 였을 것입니다.
그에게 회심이 필요했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한국 교회 부흥의 불씨 역할을 했던 하디 선교사의 회개는 ‘자신이 진정 예수님을 믿지 않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기 보다 자신의 지식과 노력으로 영혼을 구원하고 한국 교회를 세우려 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교만과 강퍅함, 믿음이 부족한 연고로 한국 선교에 열매가 없었다고 공개적으로 통회했습니다.
그렇게 한국 교회의 회개 부흥이 시작된 것입니다.
당시 한반도에서 가장 믿음이 좋은 사람 중에 하디 선교사가 들어갈 것입니다.
그런 그가 그토록 회개하였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예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고 주님과 친밀히 동행하는 영적 대각성입니다.
회개는 허랑방탕한 삶을 사는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신학생 때, 한 친구가 제게“나는 너무 더러워, 너는 깨끗하잖아”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때 말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친구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회심하던 날 그 생각이 났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는 ‘그는 정직하지만 너는 가증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깨끗한 사람이 아니라 바리새인이었던 것입니다.
주 예수님과 동행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것은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고 친밀히 동행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며 주님과 동행하는 새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교회란 주님이 마음에 거하시는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저는 목회하면서 교회 안에 악마의 역할을 하는 사람을 많이 보았습니다.
교회를 무너뜨리고 구원의 문을 막아서서 자신도 들어가지 않고 다른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사람이 교회 밖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습니다.
문제는 자신은 결코 그렇다고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하니 기가 막힌 일이고 두려운 것입니다.
정말 두려운 것은 저 자신이 악마 노릇을 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도 살아계신 주님과 동행하지 못한다면 종교 생활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위기가 바로 이것입니다.
여기서 깨어나 주님의 임재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 우리가 갈망하는 영적 대각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