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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쁜가?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07.18|조회수29 목록 댓글 0

나는 기쁜가?

철학자 니체가 독실한 기독교 배경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무신론자가 되었는데, "내가 예수를 믿을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이유는 그들의 생활에서 기쁨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코로나 확진이 되어 격리 생활을 하는 일은 휴가를 보내거나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주님과의 묵상의 시간을 갖는 것과 달랐습니다.
고통 중에도 얻는 유익은 있었지만 하루 하루가 쉽지 않는 시간이었습니다.
기도 중에 ‘나는 이 순간에도 기쁨을 누리는가?’ 하는 질문이 생겼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기뻐할 것인가?’ 잠시 고민이 되었습니다.

C. S. 루이스가 [천국과 지옥의 이혼]이란 작품에서 천국 문에 서 있는 수위를 소개하면서 그는 사람들에게 한가지 질문만을 한다고 했습니다.
"당신은 예수를 알게 됨으로써 참을 수 없는 기쁨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런 중에 주님께서 주시는 약속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요 15: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격리 생활 중이었지만 주님의 사랑 안에 있었음이 분명하며, 특히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하였으니 제 안에 주님의 기쁨이 넘침을 깨달았습니다.
어떤 기쁜 일이 생겨서 기쁜 것이 아니라 예수님 그 분이 저의 기쁨이니 제 안에 기쁨이 있음이 깨달아졌습니다.

코로나 격리 생활을 주님과 함께, 주님 안에서 보낼 수 있음이 감사했습니다.
그것이야 말로 기쁨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우리의 삶에 항상 재미가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과 동행하는 삶에는 언제나 변함없는 깊은 기쁨이 있습니다,
예수님 그 분이 기쁨입니다.

시 28편에서 다윗은 5절까지 부르짖는 고통스런 기도를 드립니다.
그런데 부르짖음이 6절부터 기쁨의 찬송으로 바뀝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5절과 6절 사이에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렸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루였을까? 한 주일 이나 한 달이었을까? 일년은 걸렸을까?
놀랍게도 다윗에게는 부르짖던 기도가 기쁨의 찬송이 되는 것이 한 순간이었습니다.

여러분도 고통 중에 부르짖는 기도를 드릴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 기도가 기쁨의 찬송으로 바뀌기까지 얼마나 걸립니까?
어떤 사람은 수년이 걸리기도 하고 평생이 걸리기도 합니다.

다윗처럼 마음과 감정까지 속히 성령께 반응할 수 있는 것은 엄청난 역사입니다.
주님이 함께 하심이 믿어질 때만 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동행일기를 쓰면서 얻는 유익은 부르짖음의 기도가 기쁨의 찬송으로 바뀌는 시간이 짧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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