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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스런 성경 구절을 피하지 말라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08.01|조회수28 목록 댓글 0

부담스런 성경 구절을 피하지 말라

때때로 믿기도, 그대로 살기도 부담스러운 성경 구절을 만나게 됩니다.
그 때 그 구절을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가 예수님이 마음에 거하신다는 고린도후서 13장 5절 말씀을 들었을 때가 고등학생 때인데 도무지 믿어지지도 이해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믿어지지 않던 그 말씀을 붙잡고 지난 50년을 살았습니다.

옥한흠목사님께서 산상수훈 설교를 시작하면서 한 말씀이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
“성경 안에는 설교자로서 설교하기가 두려운 말씀들이 여기저기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그 말씀을 피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설교를 할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산상수훈입니다.
주님이 산에서 특별히 가르치신 말씀이라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 산상수훈에 관한 내용은 제가 설교하기에 퍽 부담스럽고 두려워지는 말씀 가운데 하나입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과 같은 내용을 설교하려고 하면 '내가 과연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을 사람이 될까?' 하는 의문이 생기는 것과 동시에 그러한 핍박을 한 번도 받아 보지 않았기에 자신이 없어집니다.
'정말 나는 온유한가?'고 자문할 때 금방 대답이 안 나옵니다.
'겉옷을 달라는 자에게 속옷까지 내어 주라.'는 말씀에 과연 내가 그럴 수 있는 사람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종종 산상보훈의 말씀을 읽지만 그 때마다 이 말씀은 저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치는 듯한 충격을 주고 자신감을 꺾어 놓습니다.
너무나 수준이 높은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부담스럽기 때문에 목사가 부담스러운 말씀을 교인들에게 어떻게 마음놓고 전할 수 있는가?'라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그러다 보니 20년이 넘도록 산상수훈 가운데서 여기저기 단편적으로 몇 번 설교를 하긴 했지만 전체를 놓고 강해한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1년 전쯤에 어느 형제가 저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자신이 주일 예배에 참석해서 은혜를 받은 이야기를 저에게 나누고 싶어서 보낸 편지였는데, 편지를 말미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목사님, 언젠가 산상수훈을 강해해 주실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이상하게 그 편지를 읽고 난 다음 저의 마음에는 늘 따라다니는 음성이 하나 있었습니다. '네가 아무리 부담스러워도 산상수훈을 설교해야 된다.' 하는 음성이었습니다.
사실 목사라는 위치는 주님께서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맡기신 모든 말씀을 가르쳐야 될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자기 마음에 부담이 없는 말씀만 설교하라고 주님은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설교자가 지키지 못하는 어려운 말씀이라 할지라도 꼭 전해야 될 엄숙한 명령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이제는 산상수훈을 본격적으로 묵상하면서 설교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자신이 없고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성도들과 함께 산상수훈의 성찬을 먹고 마시는 은혜를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매주마다 산상수훈을 놓고 주님이 말씀하시던 그 동산으로 여러분과 함께 올라가려고 합니다. ”
옥한흠목사님의 이런 마음으로 인하여 은혜로운 산상수훈 강해설교가 나왔습니다.

웨슬리 목사님도 1738년 3월 4일 일기에서 '설교에 대한 깊은 좌절감'에 빠졌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설교를 그만 두어라. 너 자신이 믿음이 없으면서 누구에게 설교를 할 수 있느냐?’ 하는 마음의 소리에 가책을 느끼고 정말 설교를 그만 두어야 할지 아닌지 고민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모라비안 목사인 피터 뵐러에게 물었습니다.
뵐러는 의기소침해 있는 웨슬리에게 유명한 조언을 했습니다.
"믿음을 갖게 되기까지, 믿음에 관하여 설교를 하십시오. 그리고 나서 믿음이 생기면 그 믿음에 관하여 설교를 하십시오."

저에게도 도무지 설교할 수 없다고 여겨지던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복음’에 눈이 뜨인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 살 수 없는 말씀도 살아낼 수 있는 것이 십자가 복음 때문입니다.

롬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좌절하는 이유는 그 말씀을 살아내기 어려워서가 아닙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십자가 복음으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부담스러운 성경 구절 앞에서 도망가지 말고 ‘나는 죽고 예수로 삽니다’ 고백하며 나아가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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