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한 자의 회개
사모세미나가 잘 마쳐졌습니다.
간증 시간에 참석하였는데, 구구절절 눈물을 펑펑 흘리며 회개하는 고백이었습니다.
이상한 것은 잘못한 일이 없는 사모님이 용서못하고 사랑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잘못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받은 자가 하는 것임을 다시 깨달았습니다.
존 웨슬리나 조나단 에드워즈 등 위대한 청교도들은 ‘회심’을 경험한 이들입니다.
존 하이드 선교사나 하디 선교사 등도 깊은 회개를 경험했습니다.
신성욱교수님이 지적한대로 이 사람들이 회심하거나 깊은 회개를 경험하기 전 그들의 모습이 오늘의 많은 그리스도인들 보다 훨씬 더 나아 보인다는 것입니다.
존 웨슬리는 회심하기 전 오늘날 우리들 보다 훨씬 경건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3대째 청교도적인 신앙을 이어가는 목회자의 아들로 태어나 소년시절 부터 매일 1-2시간 씩 성경을 읽고 속사람의 성결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주일을 엄숙히 지키며, 말이나 행실에 단 한번이라도 실수가 있을까 하여 언제나 조심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공부를 할 때 Holy Club의 리더로 경건한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 속에 진정한 평화가 없었고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Aldersgate에서 회심을 체험하고 종의 믿음에서 아들의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모르긴 해도 당시 영국에서 가장 경건했던 사람을 꼽으라면 존 웨슬리 였을 것입니다.
그에게 회심이 필요했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한국 부흥의 시작은 하디 선교사로 시작되었습니다.
1903년 여름, 선교사들이 원산에 모여 한 주간 수양회를 가지면서 하디(Robert A. Hardie)는 울면서 동료 선교사들 앞에서 선교의 결실이 없었던 원인이 자신이 진정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아니 하디 선교사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니 무슨 말입니까?
그는 한국 교인들에게서 진정한 회개의 열매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것이 한국 사람들과 목회자들의 수준이 낮기 때문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이루시는 분이 예수님이신 것을 믿지 못하고 자신의 학력과 의사라는 직업, 영국 시민이라는 교만으로 자신의 열심과 노력과 의지로 조선 사람들을 예수믿게 하고 교회를 세우려 했었음을 깨닫게 한 것입니다.
하디의 고백은 동료 선교사들에게 충격이었고, 역시 깊은 회개로 이어졌습니다. 선교사 수양회 후 주일 예배 때, 한국 교인들 앞에서도 고백하고 눈물로 회개하였습니다. 이렇게 한국 교회의 회개 부흥이 시작된 것입니다.
당시 한반도에서 가장 믿음이 좋은 사람 중에 하디 선교사가 들어갈 것입니다.
그런 그가 그토록 회개하였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에 앞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주님과 친밀히 동행하는 영적 대각성입니다.
회개는 허랑방탕한 삶을 사는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신학생 때, 한 친구가 제게 “나는 너무 더러워, 너는 깨끗하잖아” 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때 말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친구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회심하던 날 그 생각이 났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는 ‘그는 정직하지만 너는 가증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깨끗한 사람이 아니라 바리새인이었던 것입니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것은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고 친밀히 동행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란 주님이 마음에 거하시는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예수님을 믿고도 살아계신 주님과 동행하지 못한다면 종교 생활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위기가 바로 이것입니다.
여기서 깨어나 주님의 임재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 우리가 갈망하는 영적 대각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