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기억나지 않았을까?
미국 플러싱제일교회를 담임하시다 은퇴하신 김중언목사님께서 한국에 잠간 나오셔서 감리교신학대학에서 가르치신 일이 있었습니다.
그 기간 중 미국에서 살다가 한국에 돌아와 사는 교인들을 만나게 되었답니다.
그 때 몇 몇 교인들은 이전 이야기를 하면서 감사해 한다는 것입니다.
“목사님, 언제 어느 때 이렇게 저를 도와주셨잖아요?”
그러나 김중언목사님 자신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그런 일이 있었나요?” 하고 되 묻게 되는 때가 여러번 있었답니다.
그런데 정말 어려운 처지에 있었기에 힘을 다하여 도와주었던 교인들을 만났는데 그 때 이야기를 하면 그 교인은 전혀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고 당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 하고 생각하다가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답니다.
목사님 자신에게 자연스러웠던 일, 평상시에 늘 하던 일들을 했을 경우, 그런 일을 하고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돕는 일이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며서 그 교인은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 교인은 그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특별히 애를 써서 도움을 주었던 일, 평소 같지 않게 부담스러웠고, 매우 힘이 들었던 섬김은 자기 스스로 오래 기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특별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도움과 섬김을 받은 사람은 그 사실을 오래 기억하지 못합니다. 분명히 도움은 받았지만 별 충격도 없고 감동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분의 평상시의 삶이라고 여겨지지 않았기에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던 것입니다.
김중언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매우 중요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자연스러워진 섬김 만이 진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도운 것은 사실이지만 너무나 특별해서 오래 기억할 정도인 것은 진정한 삶에서 나온 것이 아닐 수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의인이 임금 앞에서 갔을 때, 임금이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 25:35-36) 하는 말을 듣고 의인들이 어리둥절하면서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37-39)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의아합니다.
그러나 남을 돕는 일이 자연스러운 사람은 그렇게 돕고도 자신은 전혀 기억하지 못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만이 주위 사람들 중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주님께 하듯 섬길 수 있는 것입니다. (:40)
누군가를 도왔는데, 그가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않는다고 마음이 불편해지는 일이 많았는데, 아직 한참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