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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를 읽으며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12.20|조회수34 목록 댓글 0

일기를 읽으며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

때때로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습니까?” 울부짖으며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도저히 이해가 안되고 혼란스럽기만 한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됩니다.
그 순간에는 도저히 알 수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면 보입니다.
‘주님의 음성’도 전혀 들리지 않는 것 같은데, 지나고 나면 주님의 말씀을 들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예배 담당 전도사님 한 분이 성령집회 때 안수 사역을 섬기며 깨달은 간증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안수 사역을 보좌하는 일이 의외로 어려웠다고 했습니다.
담임목사에게 안수받기 원하는 교인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지방에서 왔다’ ‘중한 병으로 기도받기 원하다’ 등 간절한 사정을 호소한답니다.
그렇지만 담임목사에게만 교인들이 몰리면 안되기에 안수 보좌 전도사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교인들을 부목사들에게 인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마 19:13-15을 묵상하는 중에 마음에 큰 찔림이 있었답니다.
예수님께 안수받게 하려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온 사람들을 제자들이 꾸짖는 것을 보신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며 아이들에게 안수해 주신 것입니다.
제자들의 모습에서 혹시 ‘정말 간절함으로 주님께 나아갔던 사람을 내가 방해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 때 주님께서 물으시는 것 같았답니다. “그럴 때 나한테 물어봤니?”
그 질문에 회개가 되더랍니다. 당연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고 주님께서 물어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주님께 물어보았다면 예수님으로부터 질책받을 일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매사에 주님께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라고 물으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매사에 주님께 물으면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을까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매 순간 주님께서 묻지 않는 것은 그 때마다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고 믿어지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요?

우리가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를 수 있다고 믿어지지 않는 것은 평소에 주님의 뜻을 묻고, 매 순간 주님께 귀기울이는 삶을 살지 않았 때문입니다.
몸도 사용하지 않으면 굳어 버리듯이 영적 감각은 더욱 그렇습니다.

주님의 뜻을 깨닫고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지금 나의 삶에 대한 주님의 뜻을 알기는 어려워도, 지난 날에 대한 주님의 뜻을 깨닫는 것은 쉽습니다. 그만큼 우리에겐 주님의 뜻을 깨닫는 영적 감각이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감각으로 지금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주님께 귀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고난 중에 감사하고,
환란 중에 믿음으로 반응하고,
모든 순간에 감사하고 찬양하며
어떤 사람도 용서하고 사랑하며
끝까지 인내하게 됩니다.
그것이 주님의 뜻임이 순간 순간 깨달아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주님의 말씀을 들으며 주님의 인도를 받으려고 예수동행일기를 쓰는 것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 안에 거하시지만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주님의 역사를 순간 순간 깨닫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동행일기를 쓸 때, 하루가 지나지 않아 주님의 뜻을 깨닫는 것입니다.

한 주간의 일기를 주말이 읽어보면 주님의 인도하심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월말에 한 달의 일기를 읽어 보면 더욱 그렇고, 연말에 일년 동안 쓴 일기를 읽어보면 자신의 삶 속에 주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이 선명하게 깨달아집니다.
그래서 [예수동행일기 리딩데이]를 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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