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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하면서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3.04.14|조회수35 목록 댓글 0

은퇴하면서

(지난 두주간 눈 수술로 컬럼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당분간 눈이 회복되기까지 컬럼이 불규칙하게 올라갈 것 같습니다.
오늘 기독교 대한 감리회 중앙연회에서 은퇴하였습니다.
은퇴하는 목사를 대표하여 인사말을 하였습니다.)

함께 은퇴하시는 선배목사님들이 많으신데
연회가 열리는 이곳 선한목자교회 담임목사였다는 이유 하나로
제가 인사의 말씀을 드리게 된 것에 대하여 송구한 마음입니다.

은퇴하기까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섬겼던 교회 성도들과 아내와 자녀들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은퇴하는 심정이 어떤지 묻는 사람이 많습니다.
30대 젊은 담임목사였을 때,
은퇴하시는 장로님께 “장로님, 은퇴를 축하합니다!” 했다가
얼마나 서운해 하시는지 장로님의 마음을 달래 드리느라 혼이 났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은퇴하는 자리에 서 보니 제가 어떤 죄를 지었는지 비로서 깨닫습니다.

은퇴하는 사람의 심정을 은퇴하기 전에는 결코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동안 저의 부친을 비록하여 많은 선배 목사님들의 은퇴와 그 이후의 삶을 보면서
제가 은퇴하는 순간이야말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제 믿음이 검증받는 순간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게 보내는 메일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부디 끝까지 초심을 잃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목사님께 한가지 더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현재 한국교회의 존경할만한 분들이 넘어지시는 것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젊은 사람들이 더이상 희망을 져버리지 않도록
끝까지 귀한 축복의 통로 역활을 잘 감당하셨으면 합니다.“

바로 ‘그 끝’, 은퇴하는 자리에 섰습니다.
이제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 자리에 이르고 보니 아직 끝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진정한 끝은 죽는 순간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세가지를 보아야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죽고난 후 평가입니다.
두 번째는 역사의 평가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 앞에서의 평가입니다.
주님께서는 상받을 줄 알았던 많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버림받을 것이라 했습니다.

고 이어령교수는 죽음을 눈 앞에 둔 심경을
‘동물원 우리 밖에 나온 호랑이가 달려들어 목덜미를 무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죽음을 앞에 두었을 때, 나는 어떤 심정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은퇴도 이 정도인데, 정말 호랑이에게 목덜미를 물리는 심정일까?,
아니면 ‘수고했다 내 종아’ 라고 부르시는 주님께 기뻐 달려가는 심정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합니다.

저의 할아버지께서는 평북 영변에서 평신도로 선교사님을 돕다가
신학과정을 마치고 목사가 되신 분입니다.
당시 목사가 된다는 것은 굶어 죽을 각오를 하는 결단이 필요했는데,
끝까지 교회를 지키셨지만 은퇴하지 못하시고 625 전쟁 때 순교하셨습니다.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영적 유산으로,
저는 비교적 일찍 돌짝밭 사명이 귀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은퇴할 때가 되어 생각하니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은퇴하지 못하셨던 할아버지 앞에
부끄럽지 않은 목사로 살았는지 자신이 없습니다.

은퇴하면서 제 사무실을 정리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그러다가 깨달았습니다.
제 손으로 제 뒷정리를 할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하는 것입니다.
쓸데없이 쌓아둔 많은 서류들, 버려야 할 원고들, 볼 수 없으면서 모아둔 많은 책들과 자료들, 누가 대신 정리했으면 너무나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 손으로 치울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나 죽으면 이 마저 할 수 없습니다.
남이 제 뒷정리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는 언제 죽어도 뒤가 잘 정리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동안 목사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성도라는 귀한 직분의 가치를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주님 앞에 설 때는 목사가 아니라 오직 성도로 설 것임을 새삼 깨닫습니다.
목사로서 은퇴하니 이제 진짜 귀한 직분이 드러났습니다.

장거리 경주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마지막 한바퀴 남았다는 신호입니다.
전력질주해야 할 순간입니다.
제겐 은퇴식이 끝이라는 신호가 아니라
마지막 한바퀴 남았다는 신호라 여겨집니다.
이제 진짜 성도의 삶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직 기회가 남아 있음이 감사할 뿐입니다.

은퇴 이후, 여전히 할 일이 있겠지만
주 예수님과 하나되고 친밀하게 동행하는 성도의 삶을 살기를 더욱 힘쓰려 합니다.
주님과 동행하다가 하나님의 나라로 바로 올라간 에녹처럼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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