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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임종예배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3.06.21|조회수34 목록 댓글 0

생전 임종예배

어제 (6월 19일) 천안 그레이스 세분에서 정성학목사님의 ‘생전 임종예배’가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황당하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기발하다’고 말하지만 제겐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복음으로 사는 사람이 일이라 생각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예수님 안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죽었다고 정하셨습니다. 이것을 믿을 때,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이미 장례식을 치르고 사는 사람입니다. (롬 6:3-4)

사도 바울은 갈 2:20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라고 고백하였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자신도 예수님 안에 있었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만 이 은혜를 받은 것이 아니라 우리도 받았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죽으셨고 사도 바울도 죽었고 우리도 죽었습니다. (고후 5:14)
우리가 할 일은 단지 믿는 것입니다. (롬 6:11)

정성학목사님이 '생전 임종 예배'를 드리며 논란의 중심에 서기를 자초하며 생전 임종 예배를 드리는 데는 속사정이 있으셨습니다.
우리가 늘 입으로는 "나는 죽고 그리스도만 산다."고 하지만, 내가 죽은 과정이 없기에 죽었다는 고백을 쉽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죽음의 경험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려는 몸부림이었습니다.

성경이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고 증거하는 것은 죄의 종노릇하는 옛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고, 영생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롬 6:8에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안 죽은 것 같다”는 말은 정말 두려운 말인 것입니다.
안 죽었으면 어떻게 다시 살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많은 사람이 “나는 죽었습니다” 고백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 죽었다고 말해도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혈기나 정욕, 음란함과 욕심, 시기 질투는 여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십자가에서 주님과 연합하여 죽은 것은 ‘육신’이 아니라 죄의 종노릇하던 ‘옛사람’임을 알아야 합니다. (롬 6:6)
우리가 ‘죽었다’ 고백하는 것은 ‘나는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다’ 라는 의미입니다.
그 말은 혈기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혈기에 종노릇하지 않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정욕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정욕의 종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마귀가 죄로 사로잡으려 할 때, “마귀야, 나는 네 종이 아니야, 이전에 죄의 종노릇하던 나는 죽었어. 이제 예수님이 내 생명이 되셨어.” 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십자가 복음의 핵심은 죽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바라보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러면 자아의 죽음은 저절로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 존경하는 사람을 만나면 누구나 자신의 욕구나 원함이 사라집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어떻겠습니까?

사람들은 임종 후에야 사람들로부터 진정한 평가를 받습니다.
그러나 이미 고인이 된 후에는 제 2의 무대가 없습니다.
그래서 정성학목사님은 '생전 임종 예배'를 드리겠다고 하였습니다.
미리 온 하객(賀客/조문객 아님)들로부터 냉정한 판단을 받아, 삶의 궤도를 수정하겠다는 것입니다. 마치 패자부활전 같은 기막힌 반전(反轉)의 기회입니다.

C.S. 루이스는 소설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 (Till We Have Faces)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죽기 전에 죽어. 그 후에는 기회가 없어”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다가올 임종의 때를 의미 없이 기다릴 것이 아니라, 임종을 물리적으로 앞당겨 더 나은 내일을 준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김익두목사님도 예수님을 믿고 거듭남을 확신하였을 때, 자신의 부고장을 돌렸습니다.
WEC 선교회 노먼 그럽 총재도 초년 선교사 시절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으로 사는 십자가 복음을 깨닫고 카드에 묘비를 그리고 '노먼 그럽,은 그리스도와 함께 이곳에 묻히다.’ 라고 써 넣은 후 이 말씀을 붙잡고 살았습니다.

자신만이라도 “나는 죽었다” “나는 예수님으로 산다” 하고 고백하며 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가정도 살고 교회도 살고 나라도 살아날 것입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 가정과 교회와 나라를 위한 가장 귀한 헌신입니다.

‘생전 임종예배’를 드린 정성학목사님이나 우리 모두, 자신의 옛 사람이 이미 죽었음을 명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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