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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러울 때 예수님을 바라보라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3.07.27|조회수31 목록 댓글 0

고통스러울 때 예수님을 바라보라

고통스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지만
그것 만큼 소원하는대로 되지 않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힘든 일이 생겨 기도하면서 주님께서는 고통스러운 일이 주는 은혜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고통은 피하기만 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고통이 주는 유익이 너무 분명하고 놀랍습니다.

고통을 못 느끼는 극소수의 아이들이 태어납니다.
이처럼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을 둔 부모의 소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자기 자녀들이 고통을 느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것입니다.

파키스탄 북부에 사는 어느 한 소년은 고통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 소년은 돈을 벌기 위해서 불붙은 연단 위에 서서 칼로 자기 팔을 찌릅니다.
그 소년은 연구자들이 그를 만나기 전에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6-14세의 그의 친척들도 고통을 못 느낍니다.
그들은 때때로 뜨거운 물을 자기 몸에 끼얹기도 하고 뜨거운 가열기 위에 앉기도 하고 이로 입술을 뜯기도 하는데 고통을 못 느낍니다.
그 중에 2명은 혀의 1/3을 물어뜯어 버렸습니다.
고통을 감지하는 신경이 마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고통은 경고를 통해 우리를 보호하며 넘지 말아야 할 경계선을 알려줍니다.
고통으로 정서가 개발되기도 합니다.
환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연단된 인격을 낳고, 연단은 인격은 희망을 낳습니다 (롬 5:4).

많은 목회자와 교인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상담 메일을 통하여 알고 있습니다.
고통당하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중에 주님이 주시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견딜 수 없이 힘들고 끝이 없어 보이는 시련일지라도 영원히 계속되는 재앙은 없다는 것입니다. 뿐 만 아니라 그 고통스러웠던 삶의 현장이 성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출애급 여정을 따라 성지순례를 하면서, 황량한 광야를 걸어서 지나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거기를 성지라고 부르며 우리가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셨던 여정이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80세 노인이 되어 호렙산 기슭 떨기나무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애굽의 엄청난 신전들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한 그곳을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땅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 곳이 거룩한 땅입니다.

성지는 한결같이 말할 수 없는 고난의 현장이었습니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한번은 예배당에 들어가 기도할 때, 예배당 건축을 마무리해야 하는 책임이 너무나 무거웠고 순간 순간 많은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그 까닭에 이곳이 성지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지난 어려웠던 시절을 기억하는 교회 사랑 주일을 지키게 된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월절이 있듯이 말입니다.

한번은 남자 성도들이 애찬관에 가득 모여 믿음으로 살려는 결단의 기도를 할 때 “이곳이 저들의 성지가 되리라!” 하시는 주님의 감동을 강하게 받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현실이 고통스럽고 답답하여도 24 시간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였다면 그곳은 성지가 됩니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온 생애를 걸고 성령으로 기도하기를 힘쓰며, 하나님께 일생을 헌신하고 주님과 동행하기로 결단하면, 언젠가 지금 살고 있는 집과 동네, 직장과 학교, 그리고 교회를 성지순례하는 마음으로 둘러볼 때가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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