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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한국 교회에 영적각성이 일어날 수 있을까?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3.08.30|조회수35 목록 댓글 0

어떻게 한국 교회에 영적각성이 일어날 수 있을까?

지난 목요일 하디 영적각성 120주년 기념 성회가 열렸습니다.
이 성회는 단지 기념식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우리 형편이 영적각성이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다급한 위기감 때문에 열렸습니다.

하디 선교사는 당시 뿐 아니라 지금도 우리 중 가장 경건하고 충성스러운 주의 종일 것입니다. 그런 하디선교사가 무슨 죄를 회개하였단 말입니까?
선교사이면서도 예수님을 온전히 믿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능력과 열심으로 사역하려 애쓰다가, 사람 바라보고 문제 바라보고 낙심하였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짓는 가장 무서운 죄가 바로 하디 선교사가 회개한 죄입니다.
윤리적인 죄만 무서운 죄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도 예수님을 무시하고 사는 죄가 정말 무서운 죄입니다.
모든 죄가 여기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하디 선교사는 선교사 수양회에서 전할 설교 준비를 하면서 기도의 능력을 얻으려면 세가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을 온전히 믿어야 하고 예수님 안에 거하여야 하고 성령으로 충만하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설교하는 자신이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설교하는 자신이 예수님을 온전히 믿지 않았고 예수님 안에 거하지도 않았고 성령충만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성령의 책망을 공개적으로 고백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1903년 하디 선교사가 경험한 일을 지금 우리도 경험하고 있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저는 설교 준비를 하면서 이런 경험을 너무나 많이 했습니다.
하디 선교사에게만 성령께서 역사하신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말씀을 들으며 마음에 찔림을 받고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된다는 성령의 책망을 받은 적이 없습니까? 수도 없이 그러했을 것입니다.
하디 선교사에게 역사하신 성령의 책망은 지금 우리에게도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성령의 책망에 대한 반응입니다.
하디를 통해 한국인들과 선교사들이 놀라운 은혜를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은 은혜를 받은 후 하디의 성품이 완전히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같은 토론토 대학을 졸업한 제임스 게일(James S. Gale)은 은혜를 받기 전 하디와 은혜를 받은 후 하디가 180도로 달라졌다며, 은혜를 받은 후 하디는 마치 40일을 금식한 후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대면하고 그 얼굴에 광채가 나던 모세의 얼굴과 같았고, 베드로가 처음 갈릴리에서 부름을 받았을 때와 베드로서를 쓸 때만큼이나 차이가 있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은혜를 받기 전 하디는 평범한 의사, 아니 환자들이 기피하는 쌀쌀맞은 의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은 후 하디의 성품과 인격이 완전히 변했습니다.
차라리 아픈 것이 더 났다며 병이 들어도 하디에게 치료를 받기를 주저했던 환자들은 하디가 은혜를 받은 후 손만 만져도 병이 나았다고 증언하였습니다.
주님을 바라보게 된 하디의 성품과 인격과 삶은 이전과 확실히 달랐습니다
하디 선교사가 원산감리교회에서 수치와 곤혹스러운 얼굴로 교인들 앞에서 서서 자기의 교만과 강퍅했던 마음, 믿음 없음을 자백하며 개개인과 회중 전체에 용서를 구하였는데, 그 때 거기 모였던 한국교인들은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 일어나는 참된 죄책과 회개가 어떤 것인지를 목격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디 부흥 후 20년 쯤 지나 한국 부흥가 영적 침체에 빠졌습니다.
그러니 120년이 지난 지금 한국 교회의 영적 침체는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 것입니다.

그 때 선교사 연합 영문잡지 [the korea mission field]에서 선교사들에게‘부흥운동이 다시 일어나기 위하여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하는 제목으로 설문 조사를 했는데, 하디 선교사는 시 139:23-24 다윗의 기도를 대답으로 제시하였습니다.
시 139:23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24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그렇습니다. 영적각성의 핵심은 주님을 바라보는 눈이 뜨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속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면 부흥의 열기는 식어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다윗은 시 27:4에서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 2:20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했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집 안 가득 바람 소리나 사람들 머리 위에 임한 불이나 각 나라 말로 방언하는 것을 주목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미 우리 안에 오신 주님, 주님을 주목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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