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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동행하는 훈련이 왜 필요한가?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3.09.07|조회수39 목록 댓글 0

예수님과 동행하는 훈련이 왜 필요한가?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려면 반드시 예수님과 동행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삶’ (갈 2:20)을 너무 강한 말씀이라고 여깁니다.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어?’ 하며 특별한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은혜입니다.
우리가 노력해서 성취하는 경지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살게 해 주십니다.
빌 1:6에서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팔짱 끼고 앉아, “그래요? 그러면 나를 그렇게 살게 해 보세요!” 하는 태도를 가지면 안됩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런 삶을 살게 되기를 기대하지도 말아야 하고, ‘믿어지지 않는다’고, ‘잘 안된다’고 포기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친히 역사하심을 믿고 한걸음씩 순종하면 됩니다.

제가 중 고등학교를 다닐 때, 체력장 시간이 있었습니다.
턱걸이, 수류탄 던지기, 오래달리기 등을 측정하는 시간이었는데 늘 깊은 좌절을 경험하였습니다. 마음은 간절한데 결과는 너무 실망스러운 것입니다.
그 때 저는 운동에는 소질이 없는 줄 았습니다.
책상에 앉아 공부하다가 운동장에 나가 뛰고 던지니 성적인 안 나올 수 밖에 없음을 몰랐던 것입니다.
왜 매일 꾸준히 운동해야 한다는 것을 몰랐을까, 왜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주지 않았나, 아쉽기만 합니다.

신학교에 입학하여 합창단에 들어갔는데, 그 때도 깊은 좌절감을 맛 보아야 했습니다.
찬양을 잘 하는 동기와 선배들을 보면서 저는 음악성도 없고 자질도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저도 늘 찬양하는 시간을 갖고 노래도 배우고 훈련하면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수영장에 가서 수영 할 때도 처음에는 너무나 난감하였습니다.
제대로 수영을 배우지 못하였기에 수영장의 레인을 한번 왕복하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할 수 있는 만큼 꾸준히 수영을 하다 보니, 어느날 수영장 레인을 몇 번이고 왕복하며 수영하는 저를 보고 놀랐습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살며, 예수님과 친밀히 동행하는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주님은 이미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그러니 예수님과 친밀히 동행하며 사는 은혜는 이미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예수님과 동행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된다, 안된다’, ‘잘한다, 못한다’ ‘할 수 있다, 할 수 없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주님과 친밀해지는 일은 없습니다.
항상 주님이 마음에 거하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매사에 ‘나는 죽었습니다’ 고백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항상 예수님을 생각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살아지며, 주님을 의식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동행일기를 쓰게 된 것입니다.
‘일기를 쓰면서 예수님과 동행하자’고 시작한 예수동행운동이 처음에는 너무나 막연해 보이고, 실패할 것 같았는데, 13년이 지난 지금, 교회나 개인이나 너무나 놀라운 열매를 보고 있습니다.
바른 방향으로 간다면 ‘조급하지도 말고 포기하지도 않아야 한다’는 말이 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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