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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용서하세요!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4.06.03|조회수31 목록 댓글 0

이젠 용서하세요!

아직도 기억에 남는 안타까운 장례식이 있습니다.
교인 한 분이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갑작스런 죽음 때문 만은 아니었습니다.
가족들 사이에서 용서받지도 못하고 용서하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나가신 것 때문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가장 안타깝고 부끄럽고 괴로운 일은 용서하지 못하고 용서받지 못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 일입니다.
주님 앞에서 만나게 된다면 더욱 괴롭고 부끄러울 것입니다.

용서했다고 상황이 더 좋아질 것이라고 누구도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용서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라’ (골 3:13)

C. S. 루이스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을 용서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당신의 용서할 수 없는 죄를 모두 용서하셨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말은 쉽겠지만 용서하는 것은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용서하시려고 십자가에서 당하신 고통에는 비할 바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은 용서하는 경험을 통해 우리를 이전 어느 때보다도 그분께로 더 가까이 이끄십니다.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을 용서하는 과정을 통과하지 않은 사람은 주님과 하나되는 성숙함에 이를 수 없습니다.

초대교회는 처음부터 핍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 예수님을 배신하고 떠나는 이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이 배신자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초대교회의 큰 문제였습니다.
그 때 복음서가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거기에는 제자들의 배신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끝까지 따라 오시며 다시 세우시는 주님의 사랑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가 배신자들을 다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초기와 비교할 수 없는 대 핍박이 일어났을 때, 교인들은 담대하게 핍박에 맞섰습니다. 엄청난 순교자들이 일어났습니다. 실패자였던 자신들을 받아준 은혜의 경험이 이제는 순교의 갈망으로 나아가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강력함이었습니다.
이런 일은 교리 훈련이나 성경 지식으로 가능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과의 인격적이고 친밀한 교제를 통하여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께 일곱 번 용서하리이까? 질문하였는데, 주님께서 우리를 일곱 번 용서하신다면 우리는 절망일 것입니다.
1,000번 용서할 것이다 한다면 안심이겠습니까?
하루만 살아보아도 1,000번이 얼마나 적은 수인지 알 것입니다.
만번으로 올리면 안심이겠습니까?

이젠 용서하세요!
우리가 용서를 결단할 때, 비로서 우리는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으로 사는 것에 눈이 뜨이게 됩니다.
예수님이 치유와 화해의 주님이심을 알게 됩니다.
끔찍한 일을 당한 후 용서까지 해야 하는 고통 조차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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