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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라드’의 땅에 왔다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4.06.28|조회수33 목록 댓글 0

‘롤라드’의 땅에 왔다

아침에 눈을 뜨자 영국 일정에 대한 제 컬럼에 광야 미니스트리의 김관영목사님이 ‘롤라드의 땅’에 가셨군요. 하는 문자를 주셨습니다.
제가 지금 극단 광야의 뮤지컬 [더 북] 성경이 된 사람들의 배경이 된 영국에 온 것입니다.
주님께서 깨우쳐 주신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영국은 영적으로 2,000년 기독교 역사에 매우 중요한 곳입니다.
종교개혁의 나라이고 영적 대각성의 나라입니다.
우리나라의 영적 대각성을 위하여 기도하는 증에 영국에 오게 하신 뜻이 분명히 있으리라 믿습니다.

1382년 영국의 위클리프의 제자들은 가톨릭 교회와의 오랜 전통을 끊어버리고 신구약 성경을 영어로 번역했습니다.
라틴어가 아닌 첫 현지어 성경이었습니다.
위클리프는 순회 설교자들을 조직하여 영국 대학가와 교계를 향해 초기 교회의 성서적인 유산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역사가들은 위클리프를 ‘종교개혁의 아침 별’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들은 기성 교회로부터 무서운 박해를 받았습니다.
위클리프의 가르침은 ‘가난한 사제들’이라 불리던 ‘롤라드들’(Lollards)의 부흥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이 부흥운동은 다음 세대로 이어져서 15세기 초엽에는 영국인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그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았다고 평가됩니다.

롤라드 부흥운동은 이단이라 정죄되어 엄청난 박해를 받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전 유럽에 영적 각성이 전해지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위클리프가 죽은 지 44년이 지난 후에 교황의 칙령으로 사체가 화형에 처해졌고 그 재를 그가 목회하던 루터워스를 지나는 스위프트 강에 뿌렸는데, 그 재가 강을 따라 바다로 흘러감과 동시에 그가 조직한 ‘가난한 사제들’(롤라드 부흥운동)의 복음은 영국을 넘어 유럽 대륙으로 전달됐으며, 성도들의 운동으로 점차 확산되어 갔습니다.

저는 예수동행운동이 롤라드 부흥운동처럼 이 시대에 모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주 예수님의 임재에 눈이 열리는 영적 각성운동이 되리라 믿습니다.
영국 여정 중에 더욱 주님의 마음을 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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