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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웨슬리 채플을 방문하다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4.07.07|조회수34 목록 댓글 0

존 웨슬리 채플을 방문하다

어제 존 웨슬리 채플(Wesley's Chapel)과 웨슬리의 무덤에 들렀습니다.
감리교 목사인 제게는 영적 고향과도 같은 곳입니다.

거기서 고 김선도감독님의 흉상도 보았습니다.
김선도 감독님으로부터 특별한 사랑과 은혜를 받았던 저로서는 직접 만나 뵙는 것 같았고 ‘kwanglim room’이 있는 것도 반가왔습니다.

존 웨슬리 채플은 고풍스럽고 아름다웠습니다.
존 웨슬리 기념관에는 그가 사용했던 강대상과 수집한 도자기 그리고 그림을 감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웨슬리 목사님의 설교하시는 그림과 마지막 임종 순간의 그림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내해주시는 분은 존 웨슬리는 이런 채플을 원하지 않으셨다고 했습니다.
이 채플이 건축되었을 당시에는 너무나 단순하고 소박한 건물이었다는 것입니다.
존 웨슬리는 이 채플을 ‘새 채플’ (New Chapel) 이라 이름 짓고, "아주 산뜻하지만 훌륭하지는 않다 (Perfectly neat, but not fine)" 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것이 그가 원하는 것이었고 감리교회가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음이 분명했습니다. 웨슬리는 성결운동으로 ‘거룩한 나라, 영국’ 꿈꿨던 것입니다.
그런데 웨슬리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지 100년 쯤 지나 이 채플에 스테인 글라스나 대리석 바닥과 기둥들과 장식들, 그리고 여러가지 기념물들이 덧붙여졌다고 했습니다.
채플과 기념관을 둘러보고 나오면서 그 안내자의 말이 계속 생각났습니다.

존 웨슬리 채플 바로 앞은 Bunhill fields 묘지였는데 당시 감리교도들은 영국 성공회로부터 추방을 당하여 교회 묘지에 묻히지 못하게 되면서 이곳에 공동묘지를 만들어 123,000 구의 시신들이 던져지다 시피 묻힌 곳이라 하였습니다.
수잔나 웨슬리 (Susanna Wesley 웨슬리의 어머니)와 존 번연(John Bunyan)의 묘도 있었습니다.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영적 대각성 운동을 일으켰던 존 웨슬리가 살았던 당시는 그전 시대 종교개혁가들과 청교도나 언약도들이 겪었던 캐톨릭 교회의 끔찍한 핍박은 없었지만 영적으로 굳어버린 당시 영국 성공회 안에서 겪어야 했던 고난도 만만치 않았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었습니다.

아쉬운 것은 존 웨슬리의 마지막 생애 11년 4개월을 지낸 웨슬리의 집 (Wesley's House)에 들어가 보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가 방문한 시간이 늦어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깥에서 사진 만 찍었습니다.

존 웨슬리의 집 안을 보았으면 했던 것은 빌리그래함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1940년 신학생 때, 교수님의 인솔로 영국의 종교개혁 유적지 탐방왔었다가 존 웨슬리의 집을 방문하였을 때, 웨슬리의 침실의 카펫에 두 개의 움푹 패인 자국을 보고 깊은 영감으 받아 그 기도 자리에서 무릅을 꿇고 “Do it again, Lord. Do it again”라고 기도하였다는 일화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렇게 기도하고 싶었지만 웨슬리의 집 바깥 뜰에서 “주님, 존 웨슬리와 윌리엄 부스, 빌리그래함에게 역사하신 일을 지금 저에게 다시 행하여 주소서” 라고 기도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오히려 ‘네가 구하는 것이 무엇이냐?’ 라고 질문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존 웨슬리보다 더 인간의 삶 한가운데로 깊숙이 들어가 복음으로 사회를 변화시킨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나는 여기서 주님으로부터 무엇을 들어야 하며, 웨슬리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존 웨슬리는 지금 영국과 미국의 감리교회를 보면서, 아니 한국의 감리교회 보면서 어떤 마음일까?’
이제 남은 한 주 동안의 영국에서의 여정 중에 제가 들어야 할 것이라 생각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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