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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뀐다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4.09.13|조회수34 목록 댓글 0

마음이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뀐다

너무나 힘들고 어려워서 ‘사람을 바꾸어 달라’ ‘환경을 바꾸어 달라’ 간절히 기도하여도 하나님은 사람이나 환경을 바꾸지 않으시고 우리 마음을 바꾸십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우리 마음을 치료하고 진정한 쉼을 누리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마 11:28-30)

영국의 시골에 살던 두 젊은이가 도시로 옮겨와서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도시교회는 시골 교회 처럼 따뜻한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일 년 가까이 출석했지만 아무도 아는 척하지 않았습니다.
인내의 한계에 도달한 두 사람은 무언가 결판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결심이 달랐습니다.
한 사람은 즉시 교회를 떠났습니다.
또 한 사람은 자기가 먼저 교인들에게 말을 건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교회에 정착하였고 나중에 목사가 되었는데, 그가 리처드 백스터(Richard Baxter)입니다.

2011년 1월 17일 제주도에서 열린 선한목자교회 장로 수련회 첫째날은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공항에서 30분 늦게 출발한 것 부터, 제주도에는 눈이 많이 오고 추워서 차가 눈에 빠져 다들 고생을 하였습니다.
운전기사가 눈길을 조심하라는 경고를 듣고도 무리한 운행을 강행하여 고생을 한 것입니다. 저녁식사 장소에 도착하니 이미 밤 10:00가 넘었습니다.
행복한 여행과는 거리가 먼 출발이었습니다.
다행히 둘째날 너무나 날씨가 좋았습니다. 제주도 올레 길을 걸으며 정말 “예수님 동행하는 행복한 여행”이라고 할 만한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둘째날에 대한 기억은 없고 고생했던 첫째날만 기억에 남습니다.
2011년 1월 18일 일기입니다.
“예수님과의 행복한 여행은 좋은 날씨가 아닌 고생한 날이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 순간 아멘하였습니다.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다 보면 예수님께 감사하면서도 관심은 온통 주변 풍경에 빠져 있게 됩니다. 예수님만 바라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고생스러웠던 어제는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았고, 기도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어제 모두 불평 한마디 없었고, 너무 즐거워 했고, 밤은 늦었지만 환상적인 대접도 받았습니다, 모두들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고 말햇습니다. 정말 하루 밤 천국의 꿈을 꾼 것 같았습니다.
“주여, 그렇습니다. 앞으로 좋은 환경 보다 궂은 환경이 더 행복한 여행임을 명심하겠습니다. 교회 안에 편안하고 아무런 문제도 없고 좋은 일만 있기를 바라지 않겠습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길에 고난도 있을 것을 각오하겠습니다. 아니 기뻐하겠습니다“

케냐에 다녀온 한 목사님의 설교가 참 은혜가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이 설교 준비를 케냐를 가면서 하고 있습니다.
두바이에서 이틀을 묵고 케냐 항공으로 갈아타면서부터 짜증스러웠습니다. 시끄럽고 냄새 나고, 비행기는 노후 돼서 화장실의 물도 흐르지 않고, 변기 뚜껑을 열리지도 않고. 비행기는 출발할 때부터 1시간 늦게 출발하고, 공항에 내려 세미나 장소로 가는 길이 출근 시간에 겹쳐 매연을 그냥 마시고 있어야 되는 상황에 여기저기 쓰레기를 창밖으로 버리는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케냐의 대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리더십을 강의하러 온 나에게 도대체 그들의 미래가 보이지 않고 사랑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강의하기 전에, 설교하기 전에 저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세요. 저들에게서 비전을 보게 해주세요."
그런데 저에게 든 생각이 ‘그 옛날 선교사들이 우리 민족을 보면서 똑같은 생각을 품지 않았을까!’였습니다.
서양 사람들에게 냄새 나는 조선이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 곳이었을까?
그런데 남감리회 여자 선교사로 한국에 와서 많은 수고를 한 켄드릭 분의 묘비에는 "나에게 천의 생명이 주어진다 해도 그 모두를 한국을 위해 바치리라!"라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한국에 제일 먼저 들어왔고 한국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아펜젤러 선교사의 따님 앨리스 레베카 아펜젤러(Alice Rebecca Appenzeller 1885∼1950) 선교사의 묘비에는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습니다."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이분은 한국에서 태어난 최초의 백인, 한국에서 최초로 유아세례를 받은 분, 여러 가지 기록이 있습니다. 이화여대 교장, 지금 총장으로 수고하다가 김활란 박사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었는데 1950년 2월 20일에 채플에서 설교하다가 뇌일혈로 쓰러져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철저하게 한국을 섬기고 자기가 가진 모든 것, 심지어는 생명까지 나누어 준 분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바뀌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환경이 달라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우리 마음이 달라지면 모든 것이 달라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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