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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쉼표

‘이별의 노래’와 朴木月과 오소운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2.10.08|조회수41 목록 댓글 0

‘이별의 노래’와 朴木月과 오소운

 

글 / 오소운 목사

1974년이었던가?

당시 나는 월간 《기독교교육》편집장으로 있으면서, 통일공과, 계단공과, 여름학교 교본 편집에 바쁜 나날을 보내는 한편, 밤에는 朴和穆, 石庸源 친구들과 함께, 한신대 병설 선교신학대학원에 다니느라 정말로 눈 코 뜰 사이 없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크리스찬문학가협회 제1차 이사회에서 사무국장으로 임명하였다는

朴木月 회장의 통고를 받고 누차 사양하였으나, 강권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나는 그 일을 맡았다.

회장에 중임된 朴木月선생은 어느 날 나를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

당시 나는 원효로 2가에서 마포로 넘어가는 속칭 ‘사창 고개’에 살았는데, 박 회장의 집은 원효로 4가였다. ‘

퇴근길에 댁으로 찾아가니 많은 회원들이 와 있었다.

朱泰益 黃錦燦을 필두로 하여 文益煥, 全澤鳧, 石浩仁, 李保羅, 朴和穆, 石庸源, 그 밖에도 많은 회원들이 참예하여 저녁을 먹게 되었다.

 

박목월 선생과 나

 

木月 선생 사모님은 기독교장로회 효동교회의 장로님으로서 손님 접대가 아주 푸짐하였다.

그야말로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린 음식을 앞에 놓고, 文益煥 목사가 기도를 하는데, 단 10초도 안되는 기도를 하였다.

지금도 그 문구를 거의 외운다.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는 사람이 많고, 먹을 게 있어도 병들어 먹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데, 저희에게는 건강을 주시고, 또 이렇게 좋은 음식을 지시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런 내용이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음식 앞에서 식사 기도를 할 때, 대개가 장황하게 하고, 그 가정에 복을 내려 달라고 하나님께 비는 게 상례이고, 그런 기도에 익숙해진 회원들은 뭔가 미흡한 표정으로 눈들을 떴다.

그러자 오리 全澤鳧 선생이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입을 열었다.

"문 목사님, 참 기도 잘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축복 기도에 익숙해 있기 때문인지, 그 기도만으로는 어딘가 허전합니다. 석호인 목사님도 오셨으니, 석호인 목사님께서 이 가정을 위하여, 크리스찬문학가협회를 위하여 축복 기도를 해 주십시오."

 

좌중에 잔잔한 미소가 흘렀다.

그러자 석호인 목사가 일어나 다시 그 가정을 위하여, 협회를 위하여 열심히 축복기도를 하였다.

이렇게 하여 식사가 시작되자 사모님이 은주전자 하나를 들고 들어와 자랑을 하신다.

"여기 송엽주(松葉酒)가 들어 있습니다.

지난봄에 제가 시골에 가서 솔 이파리 세 가마니를 직접 따서, 순 솔잎만으로 숙성시킨 것인데, 향이 기가 막힙니다.

약간 알코올 성분도 생겼습니다.

세 가마니에서 요 주전자 하나 밖에 안 나와, 다 드릴 수는 없고 맛만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며 도토리 껍질만한 작은 잔에 약 2그람 정도가 될까말까 하게 따라 주시는 것이었다.

말석에 앉은 나에게 오기도 전에 온 방안에 솔잎 향기가 그윽하여, 그 냄새만으로도 황홀경에 이르는 것 같았다.

여기저기서 찬사와 감탄이 새어 나왔다.

모두 한 마디씩 讚辭를 보내는데, 말로써 남의 心琴을 울리는 詩人들의 찬사이니 오죽하랴!

 

찬사를 받으신 사모님이

"난생 이런 찬사는 처음 받아 봅니다. 그러니 한 순배 더 돌리지요."

또 사방에서 찬사가 터졌다.

그러자 사모님은 너무 기뻐 "나두 모르겠다. 오늘 다 마시고 가십시오." 하는 바람에 좌중에서 폭소가 터졌다.

 

분위기가 고조되자 木月 선생이 말했다.

"아, 정말 즐겁다. 이런 자리에 우리 오소운 장로의 노래가 빠지면 안 되지. 오형 한 곡조 불러 보시오."

 

木月 선생은, 당시 마포교회 장로인 나를 <오 장로>로 불렀다가 급하면 <오형>이라 불렀다.

나보다 나이가 15세나 위인데도 말이다.

노래 부르라는데 사양할 내가 아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朴木月 작사 김성태 작곡인 ’이별의 노래‘을 불렀다.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아!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내가 즐겨 부르는 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木月 선생은 손을 홰홰 내저으며

"그 노랜 안 돼!" 하는 것이 아닌가!

사모님까지도 "왜 하필 그 노래를...그걸 들으면 이 분은 우시는데..."

라고 중얼거렸다.

 

이 노래는 木月 선생의 첫사랑을 노래한 것이란다.

왜정 말, 일본 우체국장의 딸과 사랑에 빠졌으나, 양가의 반대로 이루지 못하고 해방을 맞아 생 이별한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것이 바로 이 ’이별의 노래‘였다.

 

1절이 끝나자 박수가 터졌다. 나는 2절을 계속 불렀다.

 

한낮이 끝나면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아아!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그러며 나는 木月 선생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나는 이왕 내친 김이라 3절로 들어갔다.

나는 이 노래 중 3절을 가장 좋아하는데 그걸 뺄 수가 있는가.

 

山村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촛불을 밝혀 두고 홀로 울리라.

아아!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木月 선생의 그 커다란 눈에 하나 가득 눈물이 고여 떨어지는 걸 나는 보았다.

분위기는 푹 가라앉았다.

파티가 끝나고 나오는데

"에이, 왜 하필 그 노래를 불러 가지구 회장님을 울려드려." 石庸源이 나를 원망하자

"아냐, 오형! 잘 불렀어. 덕분에 오랜만에 눈물도 흘려 보았잖아."

그러며 木月 선생은 내 등을 두드려 주는 것이었다.

 

木月 선생은 가을과 함께 갔다.

나도 언젠가는 가리라. 그리고 그대도...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그런데 어디로 갈까?

목월 선생이나 나는 예수를 믿으니까 예수가 계신 천국으로 가겠지만...

그대는 어디로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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