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꿀송이보약큐티

꿀송이보약큐티 / 23년 1월 14일 : 창40장~45장. 성령의 사람 요셉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3.01.14|조회수31 목록 댓글 0

<꿀송이보약큐티 1년 1독 성경통독학교, 23년1월14일(토)>

*오늘의 읽을 말씀: 창40장~45장
성령의 사람 요셉

*묵상 자료

1.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창40:23)


때로 우리는 사람들에게 큰 기대를 건다. 그들이 마음만 먹으면 도와주기 쉬운 상황에 있기 때문에 혹시나 하고 사람들을 기대하는 것이다.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의 꿈 해몽대로 감옥에서 풀려나 복직되었을 때 요셉은 엄청나게 기대를 걸었을 것이다. 이제 며칠 안에 나는 풀려나겠지…기대하며 기다렸지만 시간이 가도 소식이 없었다. 그럴리가 없는데.. 하며 기대하고 기다린 세월이 어느새 2 년이 흐르고 말았다. 성경은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어버렸다고 기술한다.

때로 우리에게도 똑 같은 일이 일어난다. 사람에게 은근이 기대했다가 수포로 돌아가는 일들이 종종 일어 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모든 실망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메시지를 주신다.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나를 의지하거라… 나는 아프리카에서 선교사로 28년을 지내면서 이런 교훈을 수없이 받으며 살아오고 있다. 가까운 사람, 은근 기대가 되는 사람, 큰 교회 하는 동기생들… 신기하게도 그런 분들에게는 거의 후원이 안 된다. 오히려 잘 모르는 사람, 기대치 않은 곳에서 후원을 해 줘 지금껏 일해 오고 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너를 도와 네가 일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너를 도와 사역한다는 것을 끊임없이 자기 종에게 각인시키고 싶으신 것 같다. 요셉도 감옥에서 힘들게 기다리는 세월을 통해 이 교훈을 뼈아프게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님에게는 결코 약속을 어기거나 우리를 잊어버리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혹시 엄마가 자신의 젖먹이를 잊어버릴지라도 주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신다.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신다.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하시리라 약속하신 그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주님이시다. 주님은 그런 분이시다. 아멘.

2.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 요셉(창41:38)

바로왕은 요셉을 총리로 임명하면서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라고 하였다. 실로 창세기를 끝까지 읽어 나가면서 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요셉의 아름다운 신앙 앞에 나는 압도당하며 크게 감동한다. 한국교회 안에 기도 많이 하는 분들도 많고 성령사역 하는 분들도 많지만 요셉만큼 인격과 삶이 균형을 이루며 하나님의 영에 올바로 감동된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 요셉 신앙의 확고한 핵심은 하나님 절대주권 사상이다. 그는 역사와 개인의 흥망성쇠는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확고부동하게 믿으며 살았다.

어려서 하나님이 자기 앞날에 대해 보여주셨던 꿈들과 그것이 100프로 실제로 현실화 된 사실들… 애굽 땅에 임할 풍년과 흉년의 꿈 해몽과 그 또한 해석한대로 실제가 되어 버린 역사들… 그 모든 경험들이 요셉의 하나님 절대주권 신앙을 더욱 견고하게 했을 것이다.

그는 입만 열면 하나님을 먼저 앞세웠다. 바로가 꿈 해몽을 부탁하자 요셉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창41:16)” 라고 했다. 애굽에서 두 자식을 얻었을 때에도 첫아들 므낫세를 낳고 `하나님이 내 고통을 잊게 하셨다`고 했고 둘째 아들 에브라임을 낳고도 `하나님이 나로 번성하게 하셨다`고 고백했다. 고난을 잊어버릴 수 있게 위로를 받은 것도 하나님이 하신 일이요, 수고한 일에 번성케 된 것도 하나님이 해 주신 역사라고 간증하는 것이다. 형님들이 자신을 무서워하며 복수할까 노심초사할 때도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형님들 먼저 나를 애굽에 보내신 것이니 아무 걱정 마시라고 위로했다. 역사를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그는 인식하고 살았던 것이다.

요셉과 같은 신앙이야말로 진짜 성령에 감동된 자의 참모습이다. 오늘날 그런 믿음의 사람들이 적어 몹시 아쉽다. 요셉의 이름의 뜻은 `더함(플러스)`이라는 뜻이다. 그의 어머니 라헬이 첫아들을 낳고 너무 좋아서 앞으로 이런 아들 쭉쭉 더 낳게 해달라고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 그의 이름대로 그의 존재는 항상 남에게 플러스가 되었다. 그 한 사람을 통해 부모가 살고 형제들이 살고 당대의 수많은 사람들이 기근에서 목숨을 건졌다.

예수님이 바로 그와 같은 분이시다. 예수의 이름은 항상 그를 믿는 자들에게 플러스가 되신다. 구원을 주시고 성령을 주시고 축복을 더하신다. 예수님을 닮아 우리의 인생도 요셉처럼 더하기 인생이 되어 복의 통로가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아멘.

3. 왜 요셉은 형들을 보자마자 바로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았는가?

이 의문점을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는 성경이 말하고 싶은 중요한 포인트를 놓치기 쉽다. 앞서 바로왕의 고백처럼 요셉은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탁월한 인물이었다. 그가 형들 앞에 자신의 정체를 처음부터 드러내지 않은 것은 분명히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다양한 해석들이 있지만 나는 유다의 변화된 모습을 드러내려는 성경의 의도가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믿는다. 유다는 동생을 팔아 넘기고 아버지를 속이는 등 불효막심하고 천륜을 저버린 죄를 지었다. 그러나 그의 일생에 복덩이처럼 들어온 담대한 며느리 다말 때문에 심경에 변화를 일으키고 회개하여 새사람이 되는 변화를 겪는다. 그의 최초의 은혜스런 모습은 창38:26 이다. 그의 며느리가 간통을 하여 임신한 사실이 드러났을 때 그는 며느리를 불로 화형 시켜 죽이라고 명하였다. 화형장에 끌려가던 다말이 시아버지의 지팡이와 도장을 보여주며 이 사람 때문에 임신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을 때 유다는 그 물건의 임자가 자신임을 시인하며 `그녀가 나보다 옳도다`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회개가 시작된 것이다. 회개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는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막무가내로 며느리를 몰아세우고 죽여버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온 동네 사람들 앞에서 창피함을 무릅쓰고 자신의 죄를 인정하며 며느리를 보호했고 그 며느리가 자녀를 생산하도록 방패가 되어주었다. 자신의 회개가 시작되면서 세 번이나 장례식을 치르며 사망의 곡소리만이 울려 퍼졌던 유다의 집안에 최초로 생명의 탄생소리가 들리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퍼져 나왔다.

요셉이 형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형들을 계속 곤경으로 몰아붙였을 때 창세기를 읽는 독자들은 잠시 어리둥절해 진다. 왜 요셉이 이렇게 계속 함정을 파고 형들을 괴롭히는가? 마침내 요셉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리며 자신이 요셉임을 밝히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그 대목을 자세히 살펴보면, 바로 유다가 나서서 자신이 대신 희생하겠다는 긴 간청을 요셉에게 한 직후임을 알 수 있다(창45:1). 유다는 창44장에서 자신이 베냐민을 대신해서 옥에 갇히고 노예가 되겠다고 나선다. 베냐민 없으면 연로하신 아버지가 돌아가실 수도 있기 때문에 아버지를 위해서 자신이 희생물이 되겠다고 자청해서 울먹이며 호소한다. 그 옛날 소년 요셉이 살려달라고 울고불고 매달리며 사정할 때 매정하게 돈 몇 푼 받아 챙기고 자신을 노예로 팔아 넘기는데 앞장섰던 유다 형님을 요셉이 아직도 생생하게 상처 속에서 기억하고 있는데, 세상에… 그 잔인하던 형님이 저렇게 변해 막내 베냐민 살리고 자기가 죽겠다고 눈물로 간청하는 모습을 보니 요셉이 감동받아 더 이상 감정을 참지 못하고 펑펑 울면서 자신을 드러낸 것이다.

창49장에 보면 야곱이 죽기 전, 12 아들을 축복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유다에 대한 축복의 분량이 제일 많다. 참된 회개의 삶을 산 유다와 그 후손을 하나님은 마음껏 축복하신 것이다. 메시야 예수그리스도도 유다의 가문에서 나왔다.


https://youtu.be/novkefFxMEc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