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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송이보약큐티 / 23년 1월 19일 : 출12장~14장. 초태생은 다 여호와께 바치라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3.01.19|조회수28 목록 댓글 0

<꿀송이보약큐티 1년 1독 성경통독학교, 23년1월19일(목)>

*오늘의 읽을 말씀: 출12장~14장
초태생은 다 여호와께 바치라

*묵상 자료

1. 초태생은 다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라(출13:1~16)


본문 성경을 읽어 보면 초태생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무론하고 다 거룩히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라고 한다. 왜냐하면 초태생은 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첫 아들도 하나님의 것이고 그리고 짐승의 첫 새끼의 수컷도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신다.

그래서 짐승 중에 양이나 염소나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생축의 첫 것은 여호와께 희생제물로 드려야 하는데 나귀 같은 짐승은 제물로 쓰지 못하니 어린 양으로 대속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런데 만일 대속할 양이 없으면 그 목을 꺾어야 한다고 하신다. 출13:13을 보면 “나귀의 첫새끼는 다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그렇게 아니하려면 그 목을 꺾을 것이며, 너의 아들 중 모든 장자된 자는 다 대속할찌니라”고 되어 있다.

이 말씀에 기초해서 보면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첫나귀의 운명은 태어나면서부터 무엇에 자신의 운명이 달렸는고 하면 대속할 양이 있는가 없는가에 자신의 생사가 달려있는 것이다. 나귀가 아름답고 튼튼하냐 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태어나면서부터 죽어야 할 운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대속할 양만 있으면 살게 되는 운명이다. 이것은 유월절 밤에 모든 애굽의 처음 난 생명이 죽어갈 때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집에서는 생명이 죽지 아니한 이치와 같은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죄로 인하여 죽을 운명 아래에서 태어난다.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이미 죄인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원죄라는 것이다. 자기가 원하지 않아도 그렇게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면 그 결과는 죽음뿐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성경은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애굽에 있던 바로의 장자나 모든 생축들의 피할 수 없는 그날 밤의 운명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유월절 어린양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어 죽을 운명인 죄인 된 우리들을 대속하시기 위하여 친히 나무에 달려 죽으셨다. 죽을 사람은 나였는데 죄 없으신 주님이 나 대신 심판을 받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어린양의 십자가의 피를 마음의 문설주에 바르면 하나님의 심판이 그 피를 보고 그냥 지나간다. 이것이 기독교에서 날마다 전파하는 복음의 기쁜 소식이다.

예수님은 초태생 어린양이시다. 하나님의 맏 아들이시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기에 죽으실 아무런 이유가 없으셨지만 예수님이 그토록 처참하게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우리를 대신한 죽음이었다. 율법의 요구를 주님의 죽으심은 온전히 충족시키셨다. 이제 누구든 예수 이름을 믿으면 죄인이 구원받는 길이 생긴 것이다. 이 길은 전에는 없던 길이었다. 아무도 인간이 하나님께 갈 길을 마련해 주지 못했다. 오직 주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셨을 때 하늘 가는 고속도로가 뻥 뚫렸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것이다. 아멘.

2. 너희는 가만히 있으라(출14:10~14)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주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들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고, 뒤에서는 애굽의 군대가 밀고 들어왔다. 그야말로 사면초가요, 진퇴양난이었다.

세상을 살면서 이런 막막하고 캄캄하고 길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을 맞이할 때가 있다. 이런 위기 상황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에게 대들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라고 말했다. 모세는 자칫하면 돌에 맞아 죽을 상황에 놓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예 출신이다. 그들은 천박하고 이기적이었다.

이 상황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강하게 붙드셨다. 부르짖고만 있지 말고 믿음의 행동을 하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쥐어 주신 능력의 지팡이를 손에 들고 홍해를 가르라는 놀라운 말씀을 주셨다.
모세는 놀랍게도 믿음으로 반응했다. 모세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백성들에게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라고 선포했다(출 14:13)

이런 캄캄한 악 조건 속에서 모세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실 것을 당당하게 선포한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믿음이다.
왜 모세는 너희는 가만이 있으라고 외쳤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출14:14).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서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10 가지 재앙의 능력을 이미 보고서도 이스라엘은 위기에 처하자 원망 모드로 돌변했다. 출애굽을 계획하신 이가 하나님이셨고 감독하신 이가 하나님이셨고 역사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셨다.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증거하는 증인에 불과했고 출애굽의 시작과 끝은 하나님 자신이셨다.

형제여! 오늘 삶의 무게에 지쳐 있는가? 홍해 앞에 서 있는 기분인가? 뒤에서는 애굽 군인들의 칼 날이 찌르려고 하는 위기 앞에 있는가? 사실 이런 상황이 되면 인간이 할 일은 별로 없다. 이제는 하나님께 나의 운명을 맡겨야만 한다. 죽이던지 살리던지 하나님이 하실 것이다. 우리는 가만이 있어 여호와의 구원의 손길을 보기만 하면 된다. 주여, 역사하소서! 아멘.

https://youtu.be/VDQtv6DfW6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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