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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송이보약큐티 / 23년 1월 28일 : 레1장~3장. 레위기는 거룩함을 강조한다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3.01.28|조회수32 목록 댓글 0

<꿀송이보약큐티 1년 1독 성경통독학교, 23년1월28일(토)>

*오늘의 읽을 말씀: 레위기 1장~3장
레위기는 거룩함을 강조한다

*묵상자료들

1. 레위기는 어떤 책인가?


이제 구약의 히브리서라고 불리우는 어려운 레위기에 당도했다. 계속되는 제사법에 관한 성경을 읽으며 지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이가 자랄 때 음식을 단 거나 사탕만 먹으면 정상적으로 자라기 힘들다. 아이가 싫어해도 음식을 골고루 먹여야 한다. 성경에 레위기를 포함시키신 이는 하나님이시다. 나의 선입관과 게으른 마음을 극복하고 주님의 은혜주심을 고대하며 레위기와 끝까지 씨름해 보자.

레위기의 키워드는 `거룩함`이다. 레11:45에,”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라고 하셨다. 타락한 육신을 입고 소돔성 같은 환경에 둘러 쌓인 이 세상을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들에게는 `거룩하라`는 주의 음성이 무겁게만 다가온다. 천사들이야 거룩함이 제일 쉽겠지만 우리네 인생들은 그게 제일 어렵다. 기독교의 가장 뛰어난 신자라 할 수 있는 사도 바울 같은 사람도 원하는 선은 행치 못하고 원치 않는 악을 행하는 자신이 피곤하고 힘들다고 토로하지 않았는가!(롬7:24). 그래도 어찌하랴? 집요하게 거룩함을 요구하시는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시늉이라도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우리의 거룩함을 위해 아들을 보내셔서 속죄제물이 되게 하시고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다. 그 피 아래 있는 우리는 안전하다. 그 십자가 공로를 의지하고 우리는 감히 하나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오늘 이 땅에서 주님의 향기를 발하며 경건하고 거룩하게 살아야 할 하나님의 자녀의 사명이 있다. 되고 안 되고는 둘째 문제다. 중요한 것은 넘어지고 수없이 실패하더라도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처럼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일어서는 것이다. 이것이 크리스천의 피할 수 없는 운명임을 레위기는 선포한다.

2. 가난한 자를 배려하시는 하나님

제사를 드릴 때 예물을 가지고 제사장에게 가야 하는데 가난해서 못 드리는 자가 있을까 봐 하나님은 소를 드릴 수 없으면 양이나 염소를, 그것도 벅차면 비둘기 새끼를 가지고 나오라고 하셨다. 새도 가져올 형편이 안되면 곡식가루 조금이라도 가져와 소제로 드리라고 하셨다. 포도원에서 포도를 수확하거나 곡물을 벨 때도 가난한 자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남겨두라고 하셨다(레19:10, 23:22). 포도를 따다가 포도가 땅에 떨어지면 줍지 말고 그냥 나 둬야 한다. 또한 서원자가 가난하여 감당할 수 없으면 그냥 그 형편대로 내게 해 주셨고(레27:8), 형편이 안되어 땅을 팔았을 때에도 가까운 친척이 대신 무를 수 있도록 명하셨으며(레25:25), 가난하여 노예로 팔려온 형제를 종으로 부리지 말고 안식년에는 자유케 하라고 하셨다(레25:39).

이처럼 레위기 전체에 가난하고 약한 자를 배려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이 절절이 베여 흐른다. 그래서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의 하나님이시다. 나는 어려서 고향 전남 벌교에서 자랐는데 집안이 너무 가난하여 배를 많이 곯았다. 겨울 철 춥고 배고픈 시절… 제일 부러운 집은 고구마를 방 가득히 쌓아놓고 시원한 동치미를 옆에 두고 고구마 삶아 먹는 집이었다. 우리 집은 밭이 없어 고구마가 전혀 없었다. 마른 빼깽이도 없었다. 한번은 하도 고구마 삶아 먹는 친구가 부러워 밭에 호미 들고 이삭이라도 주우려고 남의 빈 밭을 파 보았다. 허리가 끊어지도록 땅을 파다가 어쩌다가 발견되는 고구마 한 조각이 금 덩어리처럼 반가웠다. 이런 가난한 자의 심정을 어찌 아시고 하나님은 그토록 자상하게 가난한 자들을 위해 모질게 추수하지 말고 이삭을 남겨두라고 지시하셨을까? 레위기를 읽으며 우리도 가난한 자를 많이 생각하는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 닮은 모습인 것을 잊지 말자.

3. 제사법 총정리

레위기에 나오는 5대 중요 제사는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이다. 이 중 죄와 관련된 제사는 속죄제와 속건제인데 차이점은 속죄제는 배상이 불가능한 죄를 속하기 위해 드리는 제사이고 속건제는 하나님이나 사람에게 죄를 지었는데 배상이 가능한 경우에 드리는 제사였다. 이 5대 제사는 모두 불에 제물을 태워서 드리는 화제였다. 불에 태우는 방법이 아닌 제물을 손으로 높이 들어 올려서 드리는 방법(레7:32)은 거제라 하였고 제물을 사방으로 보이게 흔들어서 드리는 제사방법을 요제(레7:30)라 하였다. 포도주나 기름등을 부어드리는 제사는 전제(출29:40)라 하였는데 딤후4:6에 바울이 죽기 전 디모데에게 남긴 마지막 유언에 `내가 전제와 같이 부어지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다`고 언급한 대목이 있다.

5대 제사중 번제는 하나님께 대한 완전한 헌신의 의미로 드렸는데 제물을 단에서 모두 재가 되도록 태워 하나님께 드렸다. 소제는 5대 제사 중 유일하게 피 없이 드리는 제사로 자신이 농사지어 얻은 소산물을 하나님께 헌납한다는 의미로 드렸다. 화목제는 하나님과 친교를 의미하는 제사로 소원이 있을 때 감사한 일이 있을 때 자원해서 화목제를 드렸다. 다른 제사는 짐승의 수컷을 드렸지만 유일하게 화목제만 암,수 구별없이 드렸는데 이는 남녀 구별 없이 온 인류를 예수 안에서 화목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숨어 있다.

제사는 반드시 제사장이 집례해야만 드릴 수 있었고 홀로 자기 마음대로 제사할 수 없었다. 이걸 엉뚱하게 오늘날 잘못 해석하여 목사 없으면 예배드릴 수 없다고 착각하면 큰일 난다. 벧전2:9 말씀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다 왕 같은 제사장들이다. 누구나 예수이름을 의지하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제물을 가지고 제사하러 나아오면 제사장은 일단 그 짐승에게 제사자의 손을 얹게 하여 안수케 하고 그 사람의 죄가 그 동물에게 전가되는 의식을 치른 후 짐승을 죽이고 각을 떠 하나님께 단 위에서 태워 바쳤다. 제물에 소금을 치고 유향을 바르고 드렸는데 이는 소금처럼 변함없는 하나님의 언약을 상기하기 위한 것이고 또한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사가 되도록 함이었다. 제사를 드리고 나면 제사한 음식 중 일부를 정해진 장소에서 제사장과 함께 먹었는데 먹지 않고 3일 이상 남겨두면 안되었다.
나중 10장에서 제사장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이 지시하지 않은 방법으로 하나님께 제사하다가 그 자리에서 즉사한 것을 보면 모세를 통해 전달된 제사법은 엄중하게 말씀하신 그대로 실행되어야 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예배)는 너무나 간편하고 쉽다. 짐승의 피비린내도 나지 않는다. 이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가 단번에 이루신 십자가 피 공로가 얼마나 위대한 가를 보여준다. 레위기의 제사는 일회적인 효과만 있었다. 다시 범죄하면 또 다른 짐승의 피가 흘려져야 사함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 흘리심은 단회적이었지만 영구한 효능을 나타내는 피였다. 히9:11절부터 15절까지 천천히 읽어보자.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는냐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이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히9:11~15)” 아멘.

결국 새언약(신약)의 관점에서 보니 레위기의 모든 제사와 제물은 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의 모형이었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나답과 아비후가 다른 불을 드리다가 심판 당한 것처럼 예수 외에 다른 이름을 의지하면 안 된다. 신천지나 통일교 하나님의 교회 같은 이단들은 한결같이 예수외에 다른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다가 멸망할 어리석은 자들이다. 오직 예수! 그 분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다. 다른 이름은 없다. 아멘.

https://youtu.be/5AAWuLGp76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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