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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송이보약큐티 / 23년 2월 2일 : 레17장~19장. 동물의 도축에 관한 규례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3.02.02|조회수27 목록 댓글 0

<꿀송이보약큐티 1년 1독 성경통독학교, 23년2월2일(목)>

*오늘의 읽을 말씀: 레위기 17장~19장
동물의 도축에 관한 규례

*묵상자료들

1. 동물의 도축과 피에 관한 규례(레17장)


레17장은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9절까지는 가축의 도축 또는 희생과 관련한 규례를 다루고 있고, 10절부터는 피를 먹는 문제에 대해서 다룬다.

소, 양, 염소를 식용으로 먹기 위해 도살할 때는 먼저 회막에서 화목제를 드려야 한다. 만일 이것을 어긴다면 그 사람은 피 흘린 자, 곧 살인자로 여김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 중에서 끊어지는 형벌을 받는다. 왜 회막 밖에서 도축하는 것이 그렇게 큰 죄가 되는가? 성경은 그 이유에 대해서 세 가지를 말한다. 하나는 하나님 중심, 회막 중심의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시는 것이고, 두 번째는 피를 다루는 문제 때문에 그렇게 명하시는 것이고, 세 번째는 우상숭배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6절을 보자.

“제사장은 그 피를 회막문 여호와의 단에 뿌리고 그 기름을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할 것이라”(레17:6).

기름을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로 드려야 한다고 명하고 있는데 기름은 가장 귀한 부분이다. 우리가 맛있는 것을 먹을 때는 항상 윗사람을 먼저 챙겨야 하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에게 생명을 주시고 먹이시고 입히시는 하나님께 마땅한 예의를 지켜야 했다. 그래서 자신들이 먹기 전에 먼저 고기의 기름을 하나님께 드려야 했던 것이다. 다시 고기를 돌려받을 때도 가장 귀한 부분인 기름은 하나님께 드리고, 그리고 제사장에게 그 다음 귀한 부분을 드린 후에 나머지 허락된 부분을 먹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 대한 공경을 표현하였던 것이다.

고기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소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곡식을 수확할 때도 첫 곡식단을 하나님께 바치고, 모든 소득의 첫 열매를 바치고, 십분의 일을 가장 최상품으로 준비하여 하나님께 바쳐야 했다. 이런 삶의 습관들은 모든 면에서 하나님을 최고의 우선순위에 두는 ‘하나님 최우선’ 신앙의 표현인 것이다. 사람들이 첫 월급을 탔을 때 제일 처음 생각나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우리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내 인생의 한 부분일 뿐이다.
신앙생활이란 이 땅에서 돈 벌고 먹고 살기 위해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은 후 남은 시간과 여력으로 하는 종교적 취미생활에 불과하게 된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 주님 채워주실 것을 믿고 사는 것이 아니라, 먼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면서 돈을 좇아 살다가 시간 나고 여유가 생기면 그제야 하나님 생각하고 신앙에 신경 쓰고 헌금을 해도 자기를 위해 쓸 거 다 쓰고 남은 거 하나님께 드린다면 우리는 회개하고 돌이켜야 한다.

이 규례의 두 번째 이유는 우상숭배에 대한 예방의 목적이었다. 이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염소에게 제사한 일이 있었다. 이것은 아마도 그들이 이집트에 있는 동안에 행한 우상숭배를 누군가 행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러한 습관들이 아직 남아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그런 습관을 따라 수염소에게 제사하지 말라고 명하시며 회막 안에서만 도살하도록 명령하셨다. 만일 수염소에게 제사하려면 가축을 도살해야 하는데, 도살이 오직 회막 안에서만 가능하다면 도무지 수염소에게 제사할 수가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상숭배에 빠져들 수 있는 길을 원천 봉쇄한 것이다. 우리도 매일 죄와 싸우며 살 때에는 그때그때 생겨나는 유혹과도 싸워야 하지만, 더 나아가서 아예 유혹이 일어나지 않도록 유혹이 일어나는 환경으로부터 자신을 원천 차단하는 것도 신앙의 지혜이다.

하나님께서는 화목제뿐만 아니라 모든 희생제사를 회막에서만 드리도록 명하셨다. 이것도 역시 우상숭배를 금하도록 하기 위한 하나의 조치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우상숭배는 항상 회막 밖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장소를 잘 지키는 것이 우상숭배에 빠져들지 않는 좋은 길이다.

대개 이방인들은 높은 산에서 신들에게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거기에 `산당’을 지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점령해서 살면서 원주민들의 산당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다. 심지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왕이 지배할 때에도 이 산당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정해진 장소가 아닌 다른 곳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우상숭배와 다를 바가 없다. 그리고 그 선한 왕이 죽으면 이 산당이 바로 우상숭배의 진원지로 바뀌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산당을 헐고, 오직 정해진 장소에서만 희생제사를 드리도록 명하신 것이다.

여로보암이 벧엘과 단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했어도, 그것이 우상숭배인 이유는 (물론 금송아지 형상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그 장소가 예루살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희생제사와 예배는 오직 하나님이 택하신 한 곳에서만 이루어져야 했다. 그래야만 그들이 우상숭배의 유혹에서 보호받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막을 중심으로 모이고 예배하며 교제 나누는 신앙공동체가 되어야 했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레위기 말씀도 모든 도축을 회막 안에서만 하도록 하신 것이다. 물론 구약에도 특별한 경우에는 회막이 아닌 곳에서 제사를 드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말씀하시고 허락하신 경우에 한하여 그렇게 했었다.

신약의 말씀에는 장소가 예배의 정통성을 결정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요4장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여기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오직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라고 명하셨다. 성령 안에서 나의 영으로, 그리고 진리이신 예수님 안에서 진리의 말씀을 따라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이 받으시는 진정한 예배이지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닌 것이다. 성령 밖에서 그리고 진리이신 예수님 밖에서 드리는 예배는 바로 우상숭배와 다를 바가 없다.

신명기 말씀은 레위기 17장과는 다르게 제사를 위한 도축과 식용을 위한 도축이 구분된다. 레위기의 경우는 그 목적이 식용이든 제사이든 모든 도축은 회막 안에서만 이루어져야 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광야에서만 적용되는 법이었다. 만일 가나안 땅에서 그것을 지키려면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져서 사는 사람들은 채식주의자들이 되어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거할 때에는 각 성에서도 도축이 가능하도록 하셨다. 다만 이 때 피 처리를 잘 하라고 명령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피를 먹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피는 곧 생명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창세기 9장에서 하나님께서 육식을 허용하실 때 이미 말씀하신 것이다. 피가 생명이기 때문에 피를 먹으면 안 된다는 사실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첫 번째는 생명존중사상을 가르치시기 위해서였다.

피가 생명이기 때문에 피를 먹으면 안 된다는 사실의 두 번째 의미는 피를 오직 속죄를 위해서만 사용되도록 하신 하나님의 깊은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레17:11에 이렇게 적혀 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17:11).

이 구절의 포인트는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이다. 하나님은 이제까지 고기는 주셨지만, 피는 허락하지 않으셨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 피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피를 주신다는 것은 곧 생명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왜 생명을 주시는가? 그것은 사람이 지은 죄를 속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생명의 속전이 지불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는 죄를 지으면 그 죄가 크지 않은 경우에는 벌금을 물어서 석방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지극히 작은 죄라도 그 죗값이 그 사람의 생명이다. 생명은 그 가치가 천하보다 귀하기 때문에 천만금을 주어도 속죄할 수가 없다. 하나님의 공의에 의하면 마땅히 각자가 죽어 지옥형벌 받음으로써 죄값을 지불해야 하지만,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셔서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들 대신 동물의 생명이 지불되도록 하신 것이다. 이것은 모형이고 예표인데 우리를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독생자를 “보내셨다”고 표현하지 않고 “주셨다”고 표현한다. 이것은 정확하게 오늘 레위기의 의미를 보여주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의 속전으로 지불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고, 그렇게 우리에게 허락되신 분이시다. 예수님의 생명의 속전은 한 사람의 영혼뿐만 아니라 모든 택자들의 죄를 다 속죄하고도 남음이 있는데, 왜냐하면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무한한 가치를 지니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바로 이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피를 흘려주시고, 이제 그 피를 우리에게 허락하시면서 받아 마시라고 하셨다.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마 26:26-27).

그래서 예수님의 피는 우리에게 영생을 주는 참된 음료이다. 우리가 그 허락된 피를 받아 마심으로 구원받고 영생을 얻는 것이다. 할렐루야!!!

오늘날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이야기를 귀가 닳도록 들어서 이제는 이 십자가를 묵상해도 별로 감흥이 없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영원한 우리의 찬송 제목은 예수의 십자가이다. 존귀하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의 피가 나를 위해 흘려져야 했다는 것은 나의 죄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무서운 형벌을 초래하는 큰 죄인가 하는 것을 보여 준다. 우리가 이것을 깊이 깨달아 안다면 주님의 보혈을 무가치하게 대하거나 욕되게 할 수가 없다.

https://youtu.be/1p1yTPdD8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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