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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송이보약큐티 / 23년 2월 9일 : 민10장~12장. 광야에서 인도함을 받다

작성자스티그마|작성시간23.02.09|조회수30 목록 댓글 0

<꿀송이보약큐티 1년 1독 성경통독학교, 23년2월9일(목)>

*오늘의 읽을 말씀: 민수기 10장~12장
광야에서 인도함을 받다

*묵상자료들

1. 광야에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네 가지 방식 (민10장)


민수기 9장에서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에 관한 내용만을 다루지만, 민수기 10장으로 넘어오면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인도하시는 네 가지 방편을 동원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 은 나팔 소리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은 나팔은 오늘날의 ‘트럼펫’이다. 트럼펫 소리는 아주 멀리 가기 때문에 이백 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의사를 전달하기에 아주 좋은 악기이다. 그러면 왜 하필 금속 중에서도 은을 사용했을까? 그것은 ‘은’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구원을 상징하는 금속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전에 생명의 속전을 낼 때도 은 반 세겔을 낸 것이다. 은은 구속의 상징이다. 그런데 은 나팔은 주물로 틀에 넣어 만드는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은덩어리를 쳐서 만드는 것이다. 이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겠는가? 오직 성령의 능력을 받고 재능이 있는 사람만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이백 만 명이 넘는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정확한 뜻을 전달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있기는 했지만, 장막에서 잠을 자다가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고, 시각 장애가 있어서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시각적인 방법으로만 인도하지 않으시고, 청각적인 방법으로도 인도하신 것이다.

(2)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

은 나팔은 인간 제사장이 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은 나팔은 결국 인간적인 의사소통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철저히 하나님이 백성들과 의사소통하시는 수단이었다. 인간 제사장은 나팔을 불다가 착각해서 실수로 잘못 불수도 있고, 박자를 맞추지 못할 수도 있다.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백성들을 인도함에 있어서 제사장의 은 나팔에 모든 것을 맡기지 않으신 것이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결코 실수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직접 인도하시는 신적인 의사소통 수단이기 때문이다.

(3) 깃발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민10:13~28절까지는 진영 깃발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라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진할 때, 선두에 서는 사람들은 법궤를 어깨로 멘 제사장들이었다. 언약궤가 선두이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과 법궤는 어느 정도의 간격을 두고 행진했을까? 여호수아 3장 3~4절에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 곳을 떠나 그 뒤를 좇으라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상거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천 규빗은 약 900m이다. 900m의 간격을 두고 행진하라고 하신 이유는 뒤에서 따라오는 사람들도 선두와 간격을 둔 법궤를 보고 따라갈 수 있도록 배려하신 것이다. 법궤 뒤를 따르는 지파들은 유다, 잇사갈, 스불론 지파이다. 그리고 성막의 앙장, 휘장, 기둥 등을 수레에 싣고 이동하는 게르손, 므라리 자손들이 그 뒤를 따른다. 그리고 남쪽 진영의 지파들인 르우벤, 시므온, 갓 지파가 이동한다. 그리고 행진 대열의 한 가운데 고핫 자손들이 지성물과 번제단을 어깨에 메고 그 뒤를 따라간다. 그리고 서쪽 진영의 지파들인 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 지파, 그리고 마지막으로 북쪽 진영의 지파들인 단, 아셀, 납달리 지파가 따랐다.

중요한 사실은 선두에 법궤가 있다는 것과 순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앞뒤의 순서를 임의로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이다. 앞에서 가는 지파가 매일 앞서 간다고 뒤로 가고 싶다고 해도 순서를 바꿀 수 없으며, 뒤에서 따르는 지파가 왜 매일 우리는 뒤에서 따라가야 하느냐고 불평해도 소용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질서이다. 하나님이 지시하신대로 이동해야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교회이도 질서가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각 진영의 대표 지파에게 진영 깃발을 하나씩 만들라고 하셨고, 각 진영에 속한 지파들은 그 깃발을 보고 따라가야 했다. 그래서 유다지파에는 사자 형상의 깃발, 르우벤 지파는 사람 얼굴 모습의 깃발, 에브라임 지파는 송아지 형상의 깃발, 단 지파는 독수리 형상의 깃발을 각각 세워 백성을 인도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구름을 보지 못한 사람, 나팔 소리도 제대로 듣지 못한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서 자기 진영의 깃발을 보고 따라가면 되는 것이었다. 중요한 사실은 이 네 가지 깃발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다양한 모습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짐승의 왕 사자는 예수님의 왕 되심을 상징한다. 그래서 왕으로서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복음서가 마태복음이다. 그래서 마태복음을 다른 말로 사자복음이라고도 한다. 사람의 아들, 인자로 예수님을 묘사하고 있는 복음서도 있는데 바로 누가복음이다. 그리고 소처럼 섬기는 종으로 오신 예수님을 보여주고 있는 복음서가 마가복음이다. 마지막으로 신성을 가지신 예수님을 상징하는 독수리의 모습은 요한복음이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태복음을 사자복음, 누가복음을 인자복음, 마가복음을 송아지복음, 요한복음을 독수리복음이라고도 부르는 것이다.

네 개의 깃발을 따르라는 것은 곧 신약적인 의미로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라는 의미가 된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 은 나팔과 진영깃발로도 부족해서 사람도 붙여 주셨다.

(4) 사람들을 통해 인도하시는 하나님

민10:29~32절에,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사람 르우엘의 아들 호밥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주마 하신 곳으로 우리가 진행하나니 우리와 동행하자 그리하면 선대하리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복을 내리리라 하셨느니라 호밥이 그에게 이르되 나는 가지 아니하고 내 고향 내 친족에게로 가리라 모세가 가로되 청컨대 우리를 떠나지 마소서 당신은 우리가 광야에서 어떻게 진 칠 것을 아나니 우리의 눈이 되리이다 우리와 동행하면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복을 내리시는 대로 우리도 당신에게 행하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모세는 하나님이 백성들을 인도하시므로 사람의 도움은 필요 없다고 말하지 않았다. 모세에게 호밥은 처남이다. 본문에 ‘그 장인 미디안 사람 르우엘의 아들 호밥’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그런데 사사기 4장 11절에 보면 ‘모세의 장인 호밥’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문제는 히브리어로 장인과 처남은 한 단어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문맥에 따라서 장인이 되기도 하고 처남이 되기도 한다.
모세는 처남인 호밥에게 우리와 함께 광야로 가서 살자고 제안했지만, 호밥은 그 제안을 거절했다. 호밥은 내 고향 내 친족에게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누구라도 누나의 집에 얹혀 사는 것이 쉬울 리가 없다. 매형과 함께 한 집에서 먹고 사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 않는가? 그래서 호밥은 매형인 모세의 제안을 거절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세가 재차 간절히 부탁했다. 31절에 “모세가 가로되 청컨대 우리를 떠나지 마소서 당신은 우리가 광야에서 어떻게 진 칠 것을 아나니 우리의 눈이 되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호밥에게 당신이 우리의 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모세는 광야 사막의 지리에 밝은 처남인 호밥이 우리 모든 백성들의 눈이 되어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전문 안내자가 되어 달라는 모세의 간청을 호밥이 마침내 받아들였다. 성도는 다른 사람에게 호밥과 같은 사람이 되어주어야 한다. 영적인 문제의 전문가들이 되어서 다른 사람들의 문제를 도와주는 호밥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백성들을 인도하시고, 제사장이 부는 은 나팔을 통해 인도하시고, 그것도 부족해 족장들의 깃발을 보고 따라가라고 명하셨으며, 광야 생활의 전문가를 붙여주셔서 자기 백성을 철저하게 인도하셨다.

하나님은 광야 같은 인생길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구름기둥과 불기둥뿐만 아니라, 은 나팔, 깃발, 지리를 잘 아는 호밥과 같이 다양한 방편으로 갈 길을 인도해 주시는 자비로운 분이시다.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편으로 자기의 뜻을 계시해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설교자를 통해, 환경을 통해, 친구를 통해 다양한 방법으로 자기의 뜻을 가르쳐 주시며 우리를 인도하신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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